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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동력, 파벌의 태동과 위력①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03.16 13:51:08
[프라임경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는 자민당 양원 합동의원총회가 지난해 9월 열렸다. 결과는 언론의 예측대로 스가 관방장관이 경쟁자를 크게 따돌리면서 총재에 당선됐다. 

스가는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민당의 선거 역학 구조상 파벌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총재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스가는 호소다파 외 3개 파벌의 지원을 받았다. 

3개 파벌은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시바와 아베의 황태자로 불리는 기시다를 총리로 당장 내세우기엔 곤란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따라서 스가가 다음 총선까지 정국을 중립적으로 관리해 주기를 바라며 이 같은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집권 자민당의 총재는 곧 내각의 총리대신이면서 대외적으로는 수상으로 불리는 포스트다. 이러한 중차대한 자리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계파의 이익에 따라 거래되는 것이 일본 정치의 현실이다. 냉혹한 파벌의 위력과 폐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일본의 현대 정치와 파벌이 태동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성 있다. 

세계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은 1945년 9월 GHQ(연합군 총사령부)의 군정 아래 놓인다. GHQ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의 주권이 회복되는 1952년 4월까지 기존 정부의 행정권과 주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일본을 간접 통치한다.

곧이어 사회당과 공산당 계열의 정당이 합법화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보수 정당이 등장한다. 1946년 군정하에서 처음 치러진 총선거에는 13개의 전국정당과 300개 넘는 지역 정당이 난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난맥상을 보이던 정당들은 1955년 사분오열된 사회주의 계열 정당이 사회당 깃발 아래 뭉치자 보수도 단일대오를 형성한다. 

즉,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일본 민주당과 자유당이 연합해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탄생한 것이다. 일본 정치사에서는 이를 가리켜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사회당과 자민당의 등장으로 표면상 양당제가 되긴 했지만 의원 숫자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던 자민당이 정국을 주도해 나간다. 이후 자민당은 중선거구제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선거 때마다 같은 지역구에 수 명씩 후보를 내보내고 당선시켜 주도권을 유지한다.

이에 자연스럽게 영향력 있는 정치인 아래로 의원이 모여들어 파벌이 형성됐고, 그 파벌이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자민당은 1993년과 2009년 선거에 패해 잠시 정권을 내준 4년을 제외하고 60년 넘는 긴 세월을 독주하고 있다. 

현재 자민당에는 96명의 의원이 소속된 호소다파를 비롯한 7개 파벌이 있다. 최근 만들어진 구 이시바파를 제외하면, 대부분 1956년 12월 총재 선거 때 나타난 8개 파벌이 이합집산을 통해 정리된 5대 파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파벌 중 매파의 10일회와 온건파인 목요연구회가 전통적 양대 세력으로 꼽힌다. 이 두 파벌은 각각 하토야마 이치로와 요시다 시게루를 원조로 하고 있는데, 1950~1970년대를 지나며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에 의해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위 4명은 모두 수상을 역임하면서 전후 일본의 부흥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기시는 아베 전 수상의 외할아버지, 사토는 작은 외할아버지다. 기시와 사토는 원래 친형제였는데 사토가의 데릴사위였던 부친이 노부스케를 친가에 양자로 보내면서 성이 바뀐다. 아베가 특별한 업적도 없이 역대 최장수 총리를 지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혈연과 파벌이 존재하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은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물론, 같은 일본 내 야당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정치문화다. 마치 중세 막부시대의 대장군(총리)이 휘하의 다이묘(파벌 회장)를 통해 영지(선거구)를 관리하는 모습을 닮았다. 

한 정치학자는 일본 자민당에 대해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파벌이라 불리는 정당'이 복수로 모인 장기연립정권"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일본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민당의 파벌을 알아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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