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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떠맡은 오세훈-여영국 '알보병 투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3.24 11:01:13

[프라임경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에게 결례인 표현이지만 육군의 기초를 이루는 보병 전력을 '알보병'이라는 속칭으로 종종 부르는 게 현실이다. 모든 것을 차량으로 이동·운반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인 작전을 최대한 안전하게 수행하는 게 목표인 미국식 '기계화보병'에 비해 우리나라 옛날 보병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에 생긴 개념이다.

별다른 대책없이 마냥 걸어다니고 소총 하나지만 직접 돌격해서 부딪히는 역할. 그런 알보병의 분투는 역설적으로 전쟁의 가장 큰 부분을 떠받치고, 결정적으로 적의 최종 목표에 우리 깃발을 꽂는 중요한 역할을 여전히 담당한다.

선거에서도 이런 알보병 개념이 있다.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해지고, 선거에 따라서는 각종 대형 이슈가 지배하는 '고공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가가호호 방문해 사람을 만나고 지지를 부탁하는 일명 '벽치기'는 여전히 선거의 ABC에 해당한다. 

이번에 보수와 진보, 정반대 대척 진영에서 알보병 정신으로 땀흘린 이들이 좋은 중간 평가를 받아 눈길을 끈다.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이 어깨에 올라갔다고 할 수도 있다. '오세훈'과 '여영국', 범야권 단일화 서울시장 후보와 신임 정의당 대표 이야기다. 이 두 선출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이뤄지기도 했다.

◆'선반공 정신'으로 늘 정밀하면서도 '부지런'떨어온 여영국 

정의당의 새 대표로 여영국 전 의원이 선출됐다. 여 전 의원은 근로자 출신으로 공업도시 창원 정치무대를 누벼 온 인물. 일각에서는 '홍준표 저격수'로 기억한다. 

낙선을 종종 겪으면서도 도의원과 국회의원 등 다양한 활동을 치열하게 이어온 여영국 신임 정의당 대표. ⓒ 연합뉴스

그는 경상남도 도의회에 진출해 활발한 지역의정활동을 폈고, 이 점을 인정받아 2번 연거푸 도의원을 지냈다. 당시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경상남도 지사였는데, 홍 당시 지사는 진주의료원 이슈 등 다양한 문제로 호불호가 갈렸다. 여 당시 경남도의원이 비판을 많이 제기했다. 

어느 행사장에서는 여 당시 도의원이 "공무원들 괴롭히지 말고 사퇴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홍 당시 지사쪽에서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맞받아치는 촌극이 연출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맥락에 강하고 입심이 센 이슈 메이커로만 그를 기억한다면, 정치적 능력 중 빙산의 일각만 보는 셈이다. 대단히 부지런하고 지역에 정통하다는 평이다. 그래서 3번째 도의원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그 바로 다음해에 국회의원 보선으로 화려하게 부활, 2년간 여의도 정치를 했다. 

21대 총선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야인이 그에게 걱정 대신, 야생초처럼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가 더 높았던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전임 당대표 성추문'으로 혼란한 상황을 떠받칠 특급 소방수로 그가 적임자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실제로 추대되다시피 새 대표로 등극했다. 현재 당의 존립은 물룬 진보 정치 전반이 흔들리는 점은 비단 대표의 성추문이라는 충격적인 뉴스에 크게 좌우되기도 하지만, 그것에 모든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

지난 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듯, 진보 진영은 비례대표 몫을 늘려보려는 전략적 계산에 더불어민주당이 보수계에 맞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 때 거의 무비판적으로 동참하는 패착을 저질렀다. 그 연결 맥락에서 '조국 사태'에서도 불공정과 비리 의혹에 제대로 견제 목소리를 내지 못 해 존재 의의 자체를 지적당하는 상황이 왔다.

단순히 고 노회찬 전 의원이나 심상정 전 대표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한 발 물러나는 상황에 당 위상이 추락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의당 같은 경우는 여성주의 중에서도 편협한 여성주의에 기울어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표심을 잃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도 숙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성추문은 결정타에 불과할 뿐 문제의 전부는 분명 아니므로, 새 대표가 떠안을 짐은 그야말로 비상체제라는 표현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

이럴 때일수록 초심을 강조하고 그런 태도가 자기 생활과 일치하는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강하다. 여 의원에게 그런 평가, 그런 기대감이 몰리는 것은 엄연한 사실. 여 의원은 2019년 보선 당선 직후 국회 인삿말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창원에서 선반공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면서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서 있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선반공 초심 그대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역설했다.

고급 지식인 정치로 변질돼 버린 게 아니냐는 '진보 전반'에 대한 우려를 알보병 정치와 선반공 초심으로 보기 좋게 반박할 때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제기되는 이유다.

◆'결재해지하라' 알보병 누비기 끝에 허락받은 오세훈  

국민의힘은 이번에 범보수 서울시장 보선 후보 단일화를 치르면서 적잖은 내적 고심을 겪었다.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 내 제1야당이라는 지위에도 비전형적으로 큰 여당 때문에 온갖 대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서러운 지경을 겪어 왔다.

잠재적 대선 후보군마저 별로 눈에 뜨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지리멸렬한 보수 상황에 비상등이 켜졌다. 심지어, 이번 보선 국면에서 국민의당이 내세운 안철수 후보(이번 단일화로 퇴장)가 돌풍을 일으킨 점은 그런 초라한 당 상황과 표심이 떠난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풀이가 제기됐다.

이런 터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사표를 던지고, 먼저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이기고 화제몰이를 한 점은 상당히 신선했다. 결국 안철수 현상으로 흘러갔던 일부 보수나 중도표가 다시 국민의힘 표로 돌아오는 현상이 일어났다. 

여기에 부동산 실패와 각종 경제 혼란에 대한 염증이 높았으며 거기에 결정적으로 'LH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여당과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비등해 범보수로 여론이 상당히 돌아서기에 이르렀다.

이런 터에 단일화 방법론을 놓고 안 후보와 오 후보간 대결이 볼썽 사납게 연출된다는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대승적으로 전격 합의가 도출되고 이 와중에 화합이 이뤄지면서 해피엔딩이 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연합뉴스

그런 상황에 오세훈 캠프에서 최종 승리를 거머쥔 비결로 알보병 같은 현장 누비기가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정가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오 후보는 이달 초·중순부터 서울 자치구를 전부 도는 격으로 속칭 뚜벅이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는 최종 적수가 될 박영선 캠프가 지지층 결집에 대단히 강하다는 평가 때문. 민주당은 과거부터 국민의힘 대비 현장 활동과 지지층 결집에 비교우위가 있었다는 평이 나온다. 여론조사에서는 각종 악재 때문에 밀리더라도, 이런 막판 변수가 있으니 결국 바닥 누비기엔 바닥 누비기로 대결 구도를 일찍이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셈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상대는 공중전을 할 것으로 보이니, 우리는 보병전에 치중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는 민주당이 바라보는 오세훈 캠프나 안철수 캠프의 성향 그리고 그에 대한 내부적 평가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오 후보는 명문대-변호사 출신의 귀공자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면모 덕에 정계에 입문하고 또 국회의원에 이어 서울시장에 선출되는 데 덕을 보기도 했으나, 막상 치열하게 이런 점을 단점화하려는 프레임 전쟁에 걸릴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상황과 선입견 문제에 보란 듯이 뚜벅이 행보로 나서서, '오세훈도 벽치기를 할 수 있다'는 경악을 민주당 진영에 던진 셈이다.

특히 이런 선택과 결단의 백미는 이번 오-안 단일화 여론조사 직전에 두드러졌다. 오 후보 측에서는 21일 마포·은평구, 22일 강남·서초·도봉구 등에서 간담회 혹은 현장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21일에 홍익대 쪽에서 2시간30분을 거리를 몸소 도는 식으로 시민과 인사하는 시간낭비식 할애를 한 점, 그리고 강남과 서초 등 전통적 보수 지역에 얼굴을 내민 부분이다. 

젊은층을 두루 접하고, 왜 재선 시장 자리를 그렇게 허무하게 스스로 내놔 민주당 3선 상황을 빚었느냐는 보수 지지층의 질타를 마지막까지 겸허하게 수용하고 진심을 알리는 '쌍두마차 전략'이었던 셈이다.

한편 안철수 캠프에서는 이 시기 거리 일정을 소화하는 한편 우파 성향의 유튜브 출연에도 나서는 안분전략을 택했다. 유튜브 '이봉규 TV'와 '조갑제 TV'에 연이어 얼굴을 비치고 그 다음날엔 '펜앤드마이크 TV', 17일 '신의 한수', 21일 '전옥현 안보정론 TV'에 출연하는 등 고공 전투에 적잖이 애를 쓰는 전략으로 임해 비교된다는 소리가 없지 않다. 

막판까지 싫은 소리 행여 나올 자리마저도 피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임했기에 '결자해지'하라는 '출격 허가'가 떨어진 격으로 이번 단일화 승기를 거머쥐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서울시장 후보와 당대표, 서로 위치가 다르다. 그럼에도 오세훈과 여영국 두 이름에 땀젖은 보병이 연상되고 있다. 항상 치열하게 발로 현장을 걷겠다는 알보병처럼, 자기 정치관을 실현하는 깃발꽂기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떤 출발점에서 시작했든 서로 많이 다른 이들 두 정치인의 행보에 작은 유사점이 엿보이는 상황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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