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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또박또박…박영선의 '앵커 선거'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3.31 10:12:52

[프라임경제]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그야말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후보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분투 중이다.

여당 책임으로 치러지는 '성추행 보선'이라는 점, 부동산 문제 등 각종 정부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싸늘한 반응 더 나아가 정권 심판론이라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원래 같으면 짐이 지워지지 않아도 될 거대 담론까지도 모두 몰리는 불행한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와중에도 박 후보는 열심히 상황을 대처해 나가고 있다. "어려운 선거에서 해 볼만한 선거로 바뀌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정도로, 박 후보로서는 초반 불가능한 구도에서 그래도 조금 더 나은 구도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각종 공약이나 대응 태도 등이 눈길을 끈다. 박 후보는 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정치인이지만, 그 이전에 MBC 경제부장까지 오른 바 있는 언론인 출신이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방송국 보직인 '앵커' 스타일이 박 후보에게서 묻어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전달에 치중하는 아나운서와 달리 맥락을 짚어주고 뉴스 전반을 꿰어주는 이만을 앵커라고 따로 부른다.

일례로, 여당 후보로서는 좀처럼 청와대나 중앙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침과 엇갈리는 공약을 내기 어려운 구석이 있음에도 과감히 오 후보와 마찬가지로 층고 제한 완화를 시사하거나, 강남 재개발·재건축의 경우에도 공공주도 형태를 고집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끈다.

그런데 그저 표만 의식해서 문제의식 없이 미투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만큼 풀어주는 구석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민주당식' 부동산 정책, '박영선이기에' 할 수 있는 부동산 색채를 보여주고자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박 후보의 이런 색깔있는 정치의 대표적인 공약이 바로 중소기업 종사자 특별공급 이슈다. 박 후보는 지금의 부동산 상황에 대해 "청년들에게 좌절을 주고 있다"고 반성하면서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한편, 우수한 인재가 중소기업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근로자, 그 중에서도 사회 초년생을 끌어 안겠다는 뜻이다. 포인트를 명확히 짚어서 공략을 하는 뉴스 가이드로서의 역할, 즉 아나운서가 아닌 앵커 진행 스타일이 정치에 접목된 예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토론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무턱대고 말싸움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토론에 특화된 모습이 아니라, 또박또박 포인트를 짚어주는 태도로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29일 첫 TV토론회에서 오 후보와 박 후보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정과 오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및 2차 가해 등을 놓고 치열한 '주고받기'를 벌였다. 이런 와중에 박 후보의 '기자 정신'이 빛을 발했다.

박 후보는 내곡동 땅 관련 36억5000만원 외에 추가 보상을 받았는지 물었고 오 후보가 "없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모른다"고 말하자 "또 말을 바꾼다. 오늘 SH에서 답변서를 받았는데 단독주택용지를 특별분양 공급 받았다고 왔다"며 "계속해서 말 바꾸기가 세 번째"라고 제대로 외통수로 몰아붙였다. 

박 후보는 또 "(당시 측량 현장에 있던) 세 사람 증언이 똑같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키 크고, 하얀색 옷을 입었고, 생태탕을 먹었다고 했다"며 "추가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추궁해 티비 영상을 보여주듯 '그림'을 그려냈다. 앵커링(필요한 포인트에 닻을 내리는) 기능으로 필요한 점에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풀이되는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구멍난 운동화 유세를 벌이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뒤축이 터진 낡은 구두 콘셉트로 이미 인기몰이를 한 바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대단히 작위적인 연출 논란이 일어날 수 있고 보수 일각에서는 실제로 비판을 그렇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열성적으로 현장을 누비는 상황임을 다각도로 인정받는 상황에 운동화 구멍 논란이 겹치다 보니,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잦아드는 상황이다. 밋밋하거나 식상할 수 있는 부분을 살려내고 부각해 새로운 뉴스로 만들어 주는 앵커 스타일의 형국 운영 기법이다. 

민주당이 어렵게 헤쳐나가는 보선 국면에서 박 후보는 그런 앵커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앞서 BBK 정국에서도 치열하게 MB를 파고드는 일에 나선 박 후보에게 큰 빚을 졌다. 다시금 이번에 그런 그의 앵커 정신, 기자 정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보선의 승패를 떠나, 그런 '박영선의 역할'이 부각된다는 재발견만 해도 여당으로서는 소중한 자산을 손에 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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