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중후해지는 기쁨

2021-04-01 12:00:45

[프라임경제] 앎은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섣불리 아는 것은 슬픔이다. 왜냐하면 섣부른 앎은 지각이 아니라 착각이기 때문이다. 지각은 중후함에서 나오고, 착각은 경박함에서 나온다. 예로부터 중후함은 중년에게나 어울릴 법한 단어이지 않았던가. 

이와 관련해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는 공자의 <논어>에 설명을 달면서, "중(重)은 중후함이요, 위(威)는 위엄이요, 고(固)는 견고함이다. 밖으로 경박한 사람은 반드시 안으로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도 없고, 배운 것도 역시 견고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사전적인 의미로도, 중후함은 태도 따위가 정중하고 무게가 있거나, 학식이 깊고 덕망이 두텁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위엄이 생기고 견고해지기 쉬울 터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중년이 이런 중후함과 어울린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니 청년에게 중후함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여길 만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떠나서 중후함은 세대를 막론하고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1인 미디어에서 그렇다. 손가락이 멈추는 영상마다 중후함보다는 경박함이 눈에 먼저 띄었다. 자극적인 미사여구로 클릭을 유도하려는 콘텐츠가 많아져서다. 그들의 말마따나 '원조', '전문가'는 여기저기에 흔하다. 그들을 꾸며대는 표현도 다양하다. '새벽기상 전문가', '경매·주식 투자 전문가', '재산 증식 전문가', '다이어트 전문가', '정리 전문가', '습관 전문가' 등. 심지어 '막말 전문가'도 있다. 요즘 사회에서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그래선지 주변을 둘러봐도 '잘' 또는 '제대로' 아는 사람, 혹은 전문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마다 생김새는 달라도 그들의 문장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건 내가 좀 알지." 그들은 한결같이 잘 아는 것을 멋들어지게 포장하고 싶어 한다. 알고 있는 것을 애써 드러냄으로써 우월감에 도취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만족감을 얻는다.

설령, 이견이 발생해도 '잘' 아는 나는 변함이 없다. 지식사회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가질수록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능력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무한히 쏟아져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더 많이 아는 것도 기술이라고 치부할 만하다. 

하지만 잘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그에 따라서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앎이 깊어질수록 거기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되기 십상이다. 온통 그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을 전부라고 여긴다. 한마디로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 때야말로 잘 알고도 잘 모르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흘러가는 분위기를 타성에 젖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일에 집중하느라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한 곳에 맞추게 되면 나머지 배경을 유념하지 않는다. 초점이 맞으면 선명해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앎과 무지의 공존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오히려 생각은 잘 모르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확장되기도 한다. 궁금한 것은 여러 질문을 헤아려봄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때, 좀 더 넓은 범위에다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할수록 논리적인 해답을 얻어내기 쉽다. 정답이 아닌 해답을 향한 '앎'에 마지막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앎'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시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후함을 갖춰야 한다. 나이의 중후함이 아니라 태도의 중후함 말이다. 모름을 아는 중후함이야말로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넓은 것을 시야에 넣을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미 있는 판단을 하게 되며, 더 나은 삶을 건설할 수 있다. 너무 잘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전문'이나 '최고'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잘 모르는 만큼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고,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는 것이 된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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