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동력, 파벌의 태동과 위력③

2021-04-02 13:36:26

- 아베 총리 만든 '아소'…총재 선거 도전 공헌한 고노 타로 지원 나서나

[프라임경제] 아소파의 회장은 현직 부총리 겸 재무대신 아소 타로(麻生太郎)다. 아소는 후쿠오카에서 중의원 13선을 기록 중인 원로급 정치인으로 2008년 9월부터 1년 간 총리를 지냈다. 

아소파의 뿌리는 1955년 자민당 결성 시 주요 세력이었던 고치카이(宏池会) 계열의 요시다(吉田)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시다파는 이후 이케다파→마에오파→오히라파→스즈키파→미야자와파로 계보가 이어진다. 

아소파는 미야자와파의 중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가 라이벌 가토와 마찰을 빚고 갈라서며 역사가 시작된다. 1995년 총재 선거는 현직 총재였던 고노의 당선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가토가 오부치파의 하시모토를 지지해 고노의 연임을 막는다. 

그 대가로 가토는 간사장이 되고 나중에는 파벌 회장에까지 오른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노는 가토에 비판적이던 아소 등 15명의 의원과 함께 미야자와파를 탈퇴한 후, 1999년 1월 새로운 파벌 다이유카이(大勇会)를 세운다. 고노 요헤이는 미야자와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1993년 일본군이 조선 위안부 모집에 간여했음을 최초로 인정한 '고노담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소는 2006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사의를 표하자 후임 총재 선거에 뛰어든다. 당시 아소가 속한 고노파는 역사도 짧고 의원 수도 적었지만, 그럼에도 136표를 획득해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선거 후 파벌의 오너인 고노는 아소에게 회장 취임을 요청, 아소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아소파가 탄생한다. 아소는 파벌의 명칭을 이코카이(為公会)로 명명했다. 

2007년에도 아소는 총재 선거에 도전한다. 상대는 세이와켄(淸和硏)의 후쿠다 야스오. 이 선거에서 아소는 거의 모든 계파가 후쿠다를 지지하는 가운데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표를 획득해 유력한 차기 총재 후보로 약진한다. 새로 출범한 후쿠다 내각이 여소야대 참의원의 비협조로 흔들리자 후쿠다는 아소를 당의 핵심요직인 간사장에 기용한다. 그러나 후쿠다는 끝내 민심을 되돌리지 못하고 1년 만에 내각 총사퇴와 함께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마침내 아소는 2008년 총재 선거에서 여유롭게 승리하고 대망의 총리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이듬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역사적 패배를 기록했고,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이로 인해 수많은 비난의 화살이 아소에게 쏠렸다.

2012년 9월 치러진 자민당의 총재 선거는 정권 탈환에 대한 기대감으로 5명의 후보가 난립하는데, 아소는 고무라(高村)파와 연합해 아베를 지지한다. 아베는 당원이 참여하는 1차 투표에서 이시바에게 크게 뒤지고도 의원만 참여하는 최종투표에서 역전승을 거둔다. 아소의 지지가 아베의 당선에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이 선거를 통해 아소는 그동안의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고 자민당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한다. 3개월 후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도 예상대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고, 아베의 두 번째 정권이 출범한다. 

아소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으로 입각해 아베가 퇴임하는 2020년까지 약 7년 9개월 간 그 자리를 지킨다. 아소파의 중견급 의원들도 개각 때마다 중요 포스트에 속속 진출하며,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2017년 아소파는 이전 5년 간 정책을 공조해온 산토파(구 고무라파)와 통합을 이뤄내고 파벌의 명칭을 시코카이(志公会)로 바꾸었다. 이로써 56명의 의원을 보유하게 된 아소파는 호소다파에 이어 당내 제2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확실한 총재 후보의 존재는 소속파벌의 위상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아소파에는 고노 타로(河野太郎)라는 카드가 있다. 아베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입각한 고노는 방위대신을 거쳐, 스가 내각의 행정개혁대신과 백신접종담당대신을 맡고 있다. 고노는 화려한 스펙과 가문, 그리고 대중적 인기를 무기로 곧 다가오는 총재 선거에 도전을 공언하고 있다. 

고노의 조부 이치로는 1950~1960년대 수 개 부처의 대신과 부총리를 지냈고, 아버지 요헤이는 최장수 중의원 의장을 역임하며, 아소파의 모체인 다이유카이를 만들었다. 

호소다파에 마땅한 총재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고노의 총재 등극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배경은 핏줄과 인기, 그리고 아소의 든든한 지원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음 편에 계속.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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