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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경부고속도로와 오세훈 '공시가격 재조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10 12:11:30

[프라임경제]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짓고 싶어 동분서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독일 아우토반을 둘러보고 온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로 대표되는 물류망 건설이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사업을 추진하는데요. 

가난한 나라였기에 예산을 마련하는 자체도 난관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대규모 토목 경험 자체가 부족한 우리나라는 '그림'을 그리는 자체도 어려웠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추진되기 몇해 전인 1965년, 현대건설이 처음으로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에서 짧지만 고속도로 공사(구간 공사)를 해 보는 등 막 기초를 쌓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정부 관련 기관 등에 예산 의견을 널리 구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없어서 그야말로 중구난방 결과가 나왔는데요. 먼저 주무부처인 건설부가 650억원, 예산 전문 관료들의 집합체인 재무부에서 330억원을 추산했습니다. 큰 경제정책을 그리는 곳인 경제기획원은 기권을 했고요. 

육군 공병감실도 군사도로 등 공사 경험을 많이 쌓았다는 이유로 추산치 제출 요구를 받았는데, 공병감실은 440억원을 예상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역시 당당하게 이 대역사의 추산치 제출 요구를 받았는데요. 서울시는 수도권 도로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이리저리 골몰한 끝에 180억원을 적어 냈습니다. 

민간 업체인 현대건설이 280억원(380억원을 추산했다는 설도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구상은 한국 경제의 대동맥으로 평가된다. 1969년 연말 서울~대전 구간이 완성됐고 최종 공정은 1970년 7월7일 종료됐다. 기념 테이프를 끊는 자리에 고 육영수 여사(가운데)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오른쪽 끝)이 함께 보인다. ⓒ 연합뉴스)

결국 현대건설 안에 약간 넉넉하게 보태서, 즉 재무부 추산치처럼 330억원으로 결정됐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최종 430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서울시 위상과 조직의 능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한 특별시로, 흔히 1000만 대도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경제와 정치 중심지를 제대로 굴리기 위한 조직도 대단히 발달해 있습니다. 

타 광역단체장이 차관급인데 비해, 서울만 장관급 시장으로 예우받죠. 아울러,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오세훈 시장, 문재인 대통령은 축하 난 보냈을까' 같은 최근 보선 당선 직후 기사에서 보듯, 서울시장은 중앙부처 장관들과 나란히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기도 합니다(장관이 회의 참여자라는 점과 배석은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경부고속도로 시절부터 서울시장이 국가 중대사에 의견을 개진해 온 점은 이처럼 분명한데요.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그 여파는 전국에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은 아직 없었지만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은 실제로 나오기도 했고, 서울시장 후보감은 그 자체로 잠룡군으로 당연하게(?) 분류되기도 합니다.

최근 보선 직후 정부와 여당에서 서울시장 견제 움직임을 보인 것은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데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8일 주택 정책은 서울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오세훈 체제로 바뀐 서울시 쪽도 가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시 차원에서 (올해) 공시가를 조사해 시장 상황과 불일치하는 사례를 찾아내겠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흘리고 있는 것이죠. 

이른 바 '주택 공시가격 재조사', 이는 서울시에서 재조사한 결과를 들이민다고 바로 수정이 될 것은 아니나, 이를 통해 (내년) 공시가 동결을 압박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오세훈 체제에서 올해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가 19% 넘게 오르면서 서울 아파트의 24%에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상황을 대단히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재미있는 일입니다. 잘못 산정된 사례를 밝혀내 공시가 산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또 그 방향을 틀겠다는 자신감은 오 시장이 자신이 내건 공약 기조, 즉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바탕을 둔 부동산 정책을 믿는다는 뜻만은 아닐 겁니다. 

국민의힘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믿음보다도 어찌 보면 더 큰 뒷줄이 있다고 기자는 봅니다. 즉, 그 바탕엔 든든한 서울시 조직의 능력을 전제로 깐 것이지요. 

사실, 오 시장은 이번에 처음 시장실에 입성하는 게 아닙니다. '45살짜리 젊은 시장'이던 과거엔 공무원 조직에 쇄신 바람을 일으키고자 많이 채근해 인기가 별로 없었다고 알려져 있죠. 

긴 세월의 간극을 두고, 오 시장도 서울시 조직 '전반'의 능력만큼은 인정하게 된 것인지, 이번 공시가격 재산정 압박 조짐에 여러 함의가 있다고 밑줄 그어 보고 싶습니다. 서울시 공직자 중 많은 인재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는 점은 우수한 예비 정치 참모들을 대폭 얻는 것으로도 연결해 볼 수 있죠. 

정치인 오세훈의 무한질주가 가능할 가도가 이로써 열릴 참이니, 박통의 경부고속도로 효과에 비견할 만한 일이지요, 

공시가 조사와 산정 즉 국토부 고유 권한을 서울시장이 사실상 교열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를 통해 보유세 등을 하향 조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의 부동산 및 주택 정책을 펼치고 시민들의 환심을 사겠다는 오 시장의 행보는 물론 서울시 공직자들의 능력도 함께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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