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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연금, 여론 눈치 보기 멈추고 원칙 고수해야

 

이정훈 기자 | ljh@newsprime.co.kr | 2021.04.13 18:08:05
[프라임경제]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액 중 국내주식 보유 비중 상한을 1%p 높여, 국민 노후를 위한 안정적 자산운용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투자자 원성에 못이겨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66거래일(지난 12일 기준) 연속 순매도를 보이며,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등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이 같은 불만은 '국민연금 대량 매도 이유가 궁금합니다', '국민연금은 당장 국내 주식 매도를 중지하기를 청원합니다' 등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개인투자자 연합단체인 한국투자자연합회는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을 침체시키는 과매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해외 주식 목표비중을 35%가 아닌 25% 규모로 줄이고, 국내주식 비중을 15%에서 25%로 늘려야 한다"고 규탄 회견을 가졌다.

이들의 원성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9일 국내주식 보유 상한선을 18.8%에서 19.8%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결정된 주요 내용은 국내주식 전략적 자산배분(SAA) 비중을 기존 ±2%p에서 ±3%p로 늘리고, 전술적 자산배분(TAA) 비중을 ±3%p에서 ±2%p로 변경한다는 것. 

이는 지난 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SAA는 주식 투자 시 장기적인 비율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방법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며, TAA는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을 반영해 때 마다 비율을 조정하는 기법을 말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원칙은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지속가능성 △운용독립성으로 총 여섯 가지다. 이 가운데 기금위의 이번 결정은 안정성과 대비된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이 기존 밸런싱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산 운용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SAA 비중 증가는 기금위가 이러한 원칙을 뒤로했다는 점에서 주식 투자자 요구에 백기를 든 것과 같다.

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의 매도 행진에 주가가 하락했다며 비난하지만, 국민연금은 증시를 부양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맡겨진 돈으로 주식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야 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안정적 운용과정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계적 매도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다.

또한 주식 비중 비율을 두고 국민연금에게 비판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국민연금 위에 기금운용위원회가 있고, 기금위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즉 주식 비율 상한선에 대한 의사결정은 기금위이기에 국민연금을 향한 비판은 공허한 외침에 속한다. 

이에 더해 주식 보유 비중 상한을 높인 결정도 투자자들이 원하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투자자들 원성에 따라 SAA 기준을 변경해도 국내주식 보유 비중 축소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1월말 기준 국민연금 공시 내역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국내 주식 규모는 총 179조9689억원으로 기금 전체 운용액 855조7280억원의 21%를 차지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당초 계획했던 올해 국내 비중 목표치인 16.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며, 수정된 SAA 기준에도 허용범위를 초과했다. 증권업계 전문가도 국민연금의 매도세가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SAA 상단인 19.8%까지 국내주식을 축소하려면 지금부터 0.7%p만큼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며 "연초 이후 자산가격 상승을 고려해 국민연금 투자자산이 856조50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SAA 상단까지 6조원의 매도세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12일 코스피 시장에서 1220억원의 물량을 내놨다. 기금위가 지난 9일 국내주식 비중을 늘리겠단 발표에 매도 행진을 멈출 것이란 투자자들 기대와 대비된 행보였다. 

결국 국민연금이 SAA 비중을 확대해도 현재 보유 중인 주식 규모가 워낙 높아 더 팔아치워야 한다는 것.

물론 개인투자자 주장대로 국민연금의 매도가 주가를 하락시키는 데 일정부분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로지 국민연금 때문에 증시가 발목 잡혔다는 주장은 억측에 가깝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증시 방향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지수 레벨 상승에 연관성이 높은 주체는 외국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비율 변경은 여러 측면에서 다각적 검토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장기적인 운용 관점에서 국내주식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투자자 원성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다면 시장참여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국민연금이 여론에 눈치 보지 말고 원칙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직 국민의 노후 자금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한 곳만 바라볼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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