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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록 칼럼] 당은 '고난의 행군' 하자지만 주민들은 당보다 '장마당'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khr6440@naver.com | 2021.04.18 10:07:16
[프라임경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당 세포비서대회 폐막식에서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당조직들과 세포비서들을 포함한 전 당원이 인민을 위해 목숨 걸고 보답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는 외침이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한 사례는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 이후 5년 만이다. 1990년대 중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최악의 식량난을 겪으며 수십,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구호를 김정은 정권이 당 대회를 개최하는 5년마다 매번 꺼내든 셈이다. 그만큼 내부 경제사정과 민심이 좋지 않음은 물론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발전 정책이 계속 실패했다는 의미다.

북한역사상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 고난의 시기와 정신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1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북한정부 수립 이전인 1938년 김일성이 이끄는 만주유격대(빨치산)가 일본군에 쫒겨 중국 동북지방의 혹독한 겨울과 굶주림 속에서 생존을 위한 100일간(1938년 12월~1939년 3월)의 기나긴 행군을 했던 시련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를 북한은 혁명적 선조들이 불가능한 상황에 맞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투쟁하여 자랑스러운 혁명국가의 초석을 놓았다고 기록한다. 

역사는 물론 예술과 문학에서도 이 시기 고난의 행군 100일 일화는 영웅적으로 묘사됐으며, 심지어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 꽃 피었던 시기로도 미화된다. 2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서두에서 언급한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겪은 식량부족과 기근이 극심했던 고난의 시기를 의미한다.

북한사에서 첫 번째 고난의 행군 정신은 빨치산 혁명세대의 혁명운동 위기와 김일성의 위대성을 주입하고자 할 때 불러들였다. 두 번째 고난의 행군 정신은 김정일 시대 극심한 식량난과 기근을 극복할 때 불러들였고, 경제책임을 면하려고 선군정치로 미화되기도 했다. 이제 3대 세습자인 김정은 시대에 5년마다 불러들인 고난의 행군 정신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기다.

김정은 정권은 김일성 시대의 당 중심 국가체제로 다시 환원하면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희석시키고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체제 공고화에 힘썼다. 병진노선은 국방력을 절약할 것이라며 핵무력을 먼저 완성하는데 올인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경제 총 집중노선으로 단계적 전환을 시도했지만 핵을 무기화한 만큼 제재와 경제난이 가중됐다. 핵무기는 보유했지만 이제 핵 아니면 경제를 선택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1·2차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다행이나 전망은 부정적이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모든 당원이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지만 주민들의 생계와 복지를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김정은이 직접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까지를 문제 삼으며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현상'으로 인민들을 억압하려는 의도 자체가 인간의 기본욕구를 심히 제한하는 것으로써 소위 통치이념이라는 '이민위천'이자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신과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제 3차 고난의 행군 몫은 다시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김 위원장이 인민의 복리를 위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개혁·개방 없이는 조선노동당의 도덕적 권위가 계속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배고픈 주민들에게는 노동당이 당(黨)이 아니라 장마당이 당(黨)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4월15일) 날 북한 주민들에게 인권과 자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먼 이국땅인 미국의 의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주민들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김씨 일가와 노동당원인 핵심세력들이 진짜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도록 국제사회 모두가 함께 머리를 짜내야 할 때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명지대학교 북한학 초빙교수 /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미국 상대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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