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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동력, 파벌의 태동과 위력⑥

64년 역사의 기시다파, 외곽그룹과 통합이 선결과제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04.20 12:10:05
[프라임경제] 패전 후 치러진 194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자유당 총재 하토야마가 총리 지명을 눈앞에 두고 GHQ(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공직추방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정권 이양을 준비 중이던 시데하라 내각의 외무대신 요시다가 천황의 명을 받아 총리에 오른다.

군벌에 부역했던 의원과 당료를 불신했던 요시다는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행정조직의 엘리트를 발탁해 국회에 대거 진출시킨다. 이 과정에서 정치사관학교인 '요시다학교'를 설립, 관료를 정치인으로 변신시키는 양성소 역할을 담당했다. 이 학교 출신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 기시다파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이케다(池田)다. 

요시다의 오른팔로 불리던 이케다는 1957년 동문이자 경쟁자였던 사토와 갈라서며 정책연구모임 고치카이(宏池会)를 결성한다. 이 연구회에는 △마에오(前尾) △오히라(大平) △스즈키(鈴木) △미야자와(宮沢) 등 후일 정계를 이끌어가는 인재가 모여들었고, 대장성 출신 당료가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대장성은 현 재무성과 금융청의 전신으로 2000년까지 일본의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부처다. 

고치카이는 4명의 총리와 2명의 총재를 배출한 명문 파벌이다. 그러나 정책에 밝고 정쟁에 어둡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고치카이 계열의 미야자와·아소 총리 때 정권을 내줬고, 이케다·오히라 총리는 지병으로 중도 하차한 데 대한 야유성 평가다. 그러나 코치카이는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다른 곳과 달리 결성 당시의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자민당 내 유일한 파벌이다. 

이케다의 뒤를 이어 수제자 마에오가 2대 회장에 오르지만, 사토의 총재 4연임을 대가 없이 허락했다는 비판 속에 1970년 자리에서 내려온다. 이후 회장직은 오히라와 스즈키를 거쳐 미야자와로 넘어가는데, 3명 모두 총리를 역임한 당대의 거물이었다. 

단단했던 고치카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6대 가토(加藤)회장에 이르러서다. 라이벌 고노를 밀어내고 1998년 회장 자리를 꿰찬 가토는 고치카이의 프린스로 불리며 오부치 총리의 후임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오부치가 재임 중 돌연사하면서 뜻밖의 인물 모리가 총리에 취임한다. 밀실야합이라는 비난과 함께 모리 내각의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지자, 가토는 이를 쓰러뜨리기 위해 '가토의 난'을 일으킨다. 매스컴에 당위성을 홍보하고 자파 의원을 동원해 야당의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사전에 계획이 누출되어 무위에 그친다. 

이 사건으로 가토의 입지는 크게 위축되고 대권의 꿈도 사라진다. 파벌도 가토를 반대하는 호리우치파→니와&고가파→고가(古賀)파, 지지하는 쪽인 오자토파→다니가키(谷垣)파로 분열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계보를 이탈하지 않고 각자 고치카이 명칭을 사용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다. 두 세력은 오랜 협상을 통해 2008년 고가를 통합회장에 추대하기로 하고 7년간의 불편했던 관계를 청산한다. 

그러나 여당 복귀가 확실했던 2012년 총재 선거에서 다니가키의 지원 요청에 대해 고가가 세대교체를 이유로 거부함에 따라 내분이 발생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고가가 다니가키 쪽에 회장직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파벌은 다시 분열된다. 코치카이를 떠난 다니가키 세력은 유린카이(有隣会)를 결성해 중·참의원 16명과 타 그룹과의 이중등자 7명이 활동 중이다. 현재 유린카이는 이전처럼 계보를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파벌보다 한 단계 느슨한 외곽그룹으로 남아있다.                    

고치카이에는 2012년 회장에 취임한 기시다(岸田)를 필두로 중의원 의원 34명, 참의원 의원 13명이 각각 소속돼 있다. 지난해 9월 아베 사임으로 치러진 총재 선거에 기시다가 출마했지만, 타파벌이 연합해 지지한 스가에게 큰 표 차로 뒤졌다. 

8선의 기시다는 한때 아베의 후계자로 지목되며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명도나 중량감에 있어 아직은 역부족인 느낌이다. 

기시다가 총재가 되기 위해서는 10선 이상 중진이 포진한 유린카이와의 재통합이 필요조건일 것이다. 여기에 아베의 지원이 더해지면 그 꿈이 의외로 빨리 이뤄질지도 모른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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