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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홍남기의 '색, 계', 3기 신도시 강행의 슬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21 15:09:19

[프라임경제] 영화 '색, 계'는 색(성)과 계략(첩보전)을 제목에 직접적이고도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여배우 체모 노출 문제 등으로 입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일본과의 전쟁 와중에 치열한 첩보전과 여간첩의 내적 혼선을 잘 그려냈기에 이런 야한 이슈는 그저 작은 문제일 뿐이었죠.

적진 깊숙히 침투해 교류하는 경우,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은 드물게 일어나거나 비애국이라고 매도할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을 수작으로 꼽는 데 세계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됐었죠. 

흥미로운 점은 일명 왕징웨이 국민당 정부의 복잡미묘한 상황인데요. 심지어 왕징웨이 정부는 일본에 협력한, 중국식 표현으로는 '한간'이면서도 자신들이 올바른 정부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왕징웨이의 한간 정부는 국기마저도 원래의 청천백일기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같은 적끼리 같은 깃발을 드는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까지 일어났죠.

섹, 계의 여주인공은 2차 대전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가 괴뢰 정부 고관에게 붙인 스파이다. 사진은 이 영화의 한국 홍보에 나선 여배우 탕웨이. ⓒ 연합뉴스

일본과의 항전을 외치며 피난길에 오른 정통 국민당 정부로서는 기함할 노릇이었는데요. 어쨌든 장제스의 정통 국민당 정부가 보낸 여주인공과 그의 접근 대상인 괴뢰 정부의 첩보부장 사이에는 두뇌 싸움은 물론 결국 진짜 자기 심리가 무엇인지 뒤죽박죽이 되는 상황이죠. 장제스 vs 왕징웨이의 상황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왕징웨이는 대단한 기린아로, 쑨원의 직계 후계자가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온건해서 국민당 좌파로 꼽혔는데, 공산당에 강경한 국민당 우파와 장제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찬밥 신세가 되지요. 훗날 이 서러움을 자극하면서 일본 침략군이 왕징웨이를 괴뢰 정부의 수장으로 불러들여, 그의 위상을 십분 활용한 것입니다.

영화 결말은 국민당 여간첩이 사랑에 빠져서 온갖 욕을 먹으며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글쎄요. 오늘 아침 한 토막 소식에, 이 영화의 말미가 한 관료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아침 당국 회의에서 "오늘 중에 국토부에서 7월 시행되는 3기 신도시 등 3만호에 대한 사전청약물량을 확정·발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홍 부총리는 "앞으로도 정부는 이미 발표한 주택공급계획 및 일정에 따라 주택공급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못박아 말하기도 했는데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 준비를 위해 급히 자리를 떠나면서 국무총리 대행까지 떠맡게 된 그로서는 불가피한 행보 아니냐는 풀이가 우선 나옵니다. 대정부질문 등에서 원래 업무 외에 정부 통할이라는 총리 몫까지 떠안은 모습이 근래 언론에 많이 노출돼 동정론도 제법 있지요.

다만,3기 신도시 의혹은 일명 'LH 비리'의 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LH 관계자들이 정보를 미리 빼내 치부책으로 악용했다는 논란이 초반부에 불거진 무대가 바로 3기 신도시 추진이었죠. 글쎄요. 3기 신도시는 그 자체에 금융권 자본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 워낙 엄청나게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투기성 비리의 모델을 보여줘 사람들을 경악시켰습니다. 그야말로 국가 시스템을 우습게 알고 덤빈 정황이 많아 엄중한 처리 요청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행법의 한계상, 비리 의심자들을 모두 가려내거나 이를 소급 처벌이나 추징하는 등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해충돌방지법 추진 국면에서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결국 해결책도 마땅찮아 대부분의 3기 신도시 관련 LH 직원 부조리를 눈 뜨고 흘려보내야 한다는 우려도 많은데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일단 3기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 버려서 비위자 전반을 '물먹이는'아이디어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철회까지는 아니어도 상당 기간 냉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헌 시비 없이 사회 통념상 요청되는 징벌을 충분히 가할 수 있다는 절충안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지요.

특히, 3기 신도시 진행 경과를 봐도 이 철회 및 유보론은 무리가 적습니다. 작년 말부터 인천 계양과 하남 교산을 시작으로 토지보상 작업에 착수한 3기 신도시 추진 경과를 보면, 인천 계양 및 하남 교산은 상당 비율의 토지주가 보상 협의를 마쳤지만 나머지 지구는 아직 보상 논의를 시작 못한 경우도 있는 등 진척 공정이 10%도 못 되는 미완성 사업(3월15일 기준)으로 볼 수 있는 상태였다죠. 

여당에서는 지난 7일 치러진 재보선에서 그야말로 대패하면서, 부동산 정책 일부의 수정 움직임을 보이는 양상입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아이디어의 '고갱이'는 살리면서 욕은 덜 먹게 디테일에서 일부 수정을 하자는 두뇌 싸움을 여권에서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홍 부총리가 이 3기 신도시 밀어붙이기를 공언해 주면서 엄청난 우군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이죠.

사정이 이렇고 보니, 홍 부총리가 이런 문제를 틀어 버리지 않고 결국 그대로 굳히기를 하도록 거들면 어쩌냐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그간의 소신 행보가 모두 빛을 잃는 상황입니다. 

여당 정치인 및 지지층에게 여러 차례 얻어맞으면서도 재정 관료 라인의 맥을 잡아주려고 노력했고 '엄정하게 국익만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후배 관료들에게 심어준 것도 바로 홍 부총리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면, 입맛이 씁니다.

그는 부총리 내정자 시절 전임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흔든 정치적 상황을 타산지석 삼을 결기를 보인 바 있습니다. 그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1기팀으로서 잘해왔지만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이 많이 표출되는 문제가 지적됐다"며 "경제는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되어 끌고 가야 한다"며 경제팀 내 의견 표출은 책임지고 통일시키겠다고 부총리 내정자로서의 각오를 밝혔었습니다. 

그는 재정의 속성을 둘러싼 기본적 시각 차이로(예를 들어 재난지원금의 지원 규모를 줄이려 노력해 여권의 반발을 삼) 고생했고, 2019년12월엔 당시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당)을 제외한 여야 '4+1' 예산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극심한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심재철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는 홍 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까지 펄펄 뛰었죠. 심 당시 원내대표는 심지어 "불법 세금 폭거의 하수인으로 부역하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의 국회 입법권 침탈은 묵과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는 극언도 쏟아냈습니다. 

그 많은 고생, 나라 살림을 잘 운영해 준 전임 '김동연호' 못지 않게 성공적 항해를 '홍남기호'가 해주리라 기대했던 국민들의 열망은 결국 특정 사안 추진을 거들어 주는 것으로 단번에 식어 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가 많지만 부동산 정책 전반의 필요에 의해 3기 신도시를 지금 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물론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마음이 허전한 건 왜일까요? 천재도 인격자도, 천운을 잘못 만나면 결국 비정한 운명의 장난에 노출된다는 것이 시대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숙명인 걸까요? 

이렇다 보니, 애국이 무엇인지 무엇이 정말 진실과 도리를 위해 헌신하는 공직자의 길이고 애국자의 길인지 물었던 영화 '색. 계'와 그 시대의 고심, 시대 속 여러 인물들의 번뇌가 오늘날 홍 부총리와 겹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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