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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대사관 "좋아요" 정의용은 '비우호적 인물' 몰라?

1985년 영국 경찰의 리비아 영사관 수색 강행 등 강경 조치 참조 필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25 10:30:59

[프라임경제] 정의용 외교부 장관 부임 후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외교부가 시험에 들었다. 외교적으로 능멸에 해당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지 주목된다.

사건은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 A씨가 옷가게에서 종업원과 시비 끝에 종업원들을 폭행하면서 비롯됐다. 부인 A씨는 옷을 입어보는 등 살핀 뒤 구매 없이 그냥 나갔는데, 도둑으로 오해받아 종업원이 뒤쫒아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분노한 A씨가 되돌아 와 항의하는 중에 결국 분을 못 이기고 충돌로 갔다는 것. 

A씨 측 입장에 최대한 유리하게 전후관계를 종합해 보더라도 지나친 처사이자 주재국 국민을 업신여기는 행보라는 점에는 이견이 생기기 어렵다. 여론이 비등하자 벨기에 대사가 부인을 대신해 사과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주한 벨기에 대사관 공식계정에서 맞은 한국인을 조롱하는(중국인이 한국인을 때려 재미있다는 투의 내용. 대사 부인 A씨는 중국계다) 인터넷 글에 '좋아요'를 누른 정황이 포착돼 세인들의 입길에 오른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범죄를 외교적 분쟁으로 바로 연결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직접적인 뒷처리나 후속 대응 기류 등은 다분히 주재국에 이미지를 남기는 일이라 공식적 외교와 불가분의 상황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외교관 가족은 제네바 협약 등으로 특별히 사절단 수준으로 인신이 보호되는 범주에 들어가는 만큼 반대급부로 상당한 위신 관리와 태도가 요청된다. 이른바 '면책특권'과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복합 문제다.

이런 터에 우리 외교 당국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에서는 물론 대외 교섭 및 통상 정책 등을 관장하고 '재외 한국인 보호'가 주요 업무다. 국내 치안 상황에까지 직접 간섭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일 수도 있다. 

◆본업은 재외 국민 보호? '집행' 어려운 국내 사건 조율론도… 

주한 벨기에 대사관 공식 계정이 대사 부인 폭행에 대한 조롱성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누린 정황 장면. ⓒ 연합뉴스

그러나 면책특권 뒤에 숨어 폭행 처벌이나 민사적 책임(외교관이나 그 가족이 일으킨 분쟁의 배상은 '집행'이 어려워 결국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많다) 추궁이 어려운 주한 타국 외교관 등 관계자의 사건에 목소리를 낼 책무에서 전혀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런 터에 '중국인의 한국인 폭행'으로 왜곡된 포커싱을 하는 글이 돌아다니고, 자숙은 커녕 해당 문제를 빚은 국가의 공관은 공식 계정으로 "좋아요"라고 의사 표시를 한다면 이는 외교 당국이 매섭게 추궁을 하고 수습을 할 문제다.

과연 이런 문제까지 외교 당국이 나서야 하는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으나, 사용 방법이 없지 않은데 일종의 유기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반론도 붙는다. 이런 경우 유용하게 사용할 방안은 비우호적 인물(persona non grata) 지정이다.

◆비우호적 인물이나 1985년 리비아 공관 총격 참조할 만

'페르소나 논 그라타’의 의미는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다. 즉 어떤 외교관의 주재국은 그의 파견국에 그 외교관이 비우호적이라고 통고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통고는 파견국에 그 자를 소환 또는 사절단으로부터 그 자의 임무를 종료하도록 할 의무를 발생시킨다. 

통칭 비엔나 협약은 외교관계에 관한 협약과 9조, 영사관계에 관한 협약이 공존하는데 비우호적 인물 규정은 이들 모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외교관이 아닌 외교사절단의 직원 및 영사관이 아닌 영사기관의 직원에 대해서는 비우호적 인물 개념 대신 '접수 곤란한(not acceptable) 자'로 규정할 수 있다. 어쨌든 양자는 거의 동일하다는 게 국제법학계의 통설이다. 

문제를 거론하는 주재국(접수국)은 외교관을 파견한 국가 측에 '이유를 제시할 필요'는 없으나 예양상 백브리핑 식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다. 

아울러 면책특권 등도 무소불위가 아니며, 경찰 등 해당국 공직자들이 얼마든 실질적 방법으로 외교관 및 영사관 그리고 그 소속 직원들을 압박할 수도 있다.

1985년 영국에 주재하는 리비아 영사관 앞에서 리비아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반카다피 시위가 있었는데, 이때 해당 공관에서 시위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총격을 가했고 엉뚱하게도 치안 유지 활동 중이던 영국 여경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영국 외교 당국은 물론 영국 경찰에서 여경 사망 사건이 외교 면책특권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의 불만을 제시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수사를 개시, 진행해야 한다는 기류가 일었다. 결국 영국 경찰에서는 근무자들이 공관 밖에 모두 나가도록 한 뒤 수색을 하는 식으로 비엔나 협약 정신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살인 사건 수사를 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다(이후 국제사법재판소-보통 그 약칭인 ICJ로 더 유명한-에서도 영국 당국의 조치가 유효하다고 해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한국의 "좋아요" 사건으로 돌아오면, 이런 행보를 보인 주한 벨기에 대사관 총괄 책임자로서 대사를 초치하거나 본인을 비우호적 인물로 지정해 버리는 것조차도 가능하다. 다만 한 법조인은 "실무적으로 해당 대외 채널 문제를 중간관리하는 외교관을 비우호적 인물로 지정하거나, 실무 직원을 접수 곤란 인물로 통지하는 게 적당할 것"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한편, 한 국제법 연구자는 "문제가 심각하고 대사관 측의 가벼운 행동이 문제를 키우기는 했지만 비우호적 인물 같은 심대한 개념으로 보복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한 벨기에 대사관이 채용한 현지 직원(한국인)이라면 문제가 어떻게 될까? 또다른 법조인은 "답이 명쾌하다.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아니겠나?"라며 간단명료하게 문제를 접근하면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아울러, 명료하게 국제법적 정의에 따라 접근하면 되지 외교적 사안이라는 식으로 자꾸 불필요한 저자세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백신 스왑 실패 등 장관 초반부 난맥 만회할 기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연이은 외교 관련 난제로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안보실장 시절 현안을 고심 중인 모습. 그 왼쪽에는 암담한 듯 천장을 올려다 보는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보인다. 김 실장은 이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영전했다. = 임혜현 기자

출항 직후인 정의용호가 어떤 태도로 이를 대처할지 주목된다. 다만 정 장관은 다른 행정기관 등과의 조율, 심지어 자신이 근무했던 청와대(그는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냈다)와의 교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가 "미국과 백신 스왑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내놨지만 이후 코로나19 방역을 관장하는 기관에서는 스왑 추진에 대해 통지되거나 협의한 바 없다는 반응을 보여 언론에 대서특필됐는가 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국에서 쓰기도 백신량이 충분치 않다는 발언을 해 결국 스왑 구상은 초기부터 무산됐다느 지적이 나왔다. 

결국 논란이 가중되자 익명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나서서 "바이든 대통령의 백신 발언은 미국 국내용 발언"이라고 정 장관을 엄호하는 해명성 발언을 해 주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이는 결국 '쿼드 참가국'에게만 백신 공유를 해 주려는 미국 정책이 보도되면서 빛을 바로 잃었다. 청와대 및 실무 기관들과 긴밀한 협력이나 조율 없이 백신 외교 등 엄중 사안에 잡음을 만들었다는 것.

이런 장관 부임 초반부의 실책을 만회하는 차원에서라도 정 장관과 외교부가 이 주한 벨기에 대사관 문제를 엄정하고 최종적으로 관찰, 관리해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당부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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