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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김의겸과 박범계, BBC와 '젖꼭지' 사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28 08:56:13

[프라임경제] 현재 열린민주당 의원인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단히 부지런하고 공평무사하려고 노력하던 모습으로 두루 인기가 좋았습니다. 

자기 실명으로 특정 매체명을 거론해 강하게 비판한 일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재임 기간 중 한 번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자의 질문에 곤혹스러워 하며 답을 주지 않은 일도 "당사자도 기억이 정확치 않은 것 같더라"고 얼버무린 한 번에 불과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일명 '한상도 논란' 즉 드루킹 논란에서 청와대에 해외 공관장 인사청탁을 청와대 인사가 정말 전달했느냐 의혹이 일었을 때였죠.

어느 언론사는 운이 좋아 전화 취재가 되고 어디는 전화를 못 받아주면 안 된다는 지론에 따라 새벽 같이 공평하게 현안 브리핑을 하면서 '일어나서 나오면 듣고 아니면 못 듣는' 걸로 하자는 제안을 내놨었습니다. 

도봉이나 노원 같이 먼 데 사는 기자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하철 첫차를 타고 나와 시청역에서 내리면 가능하니 불평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삼청동까지 올라가는 마을버스는 아직 첫차가 운행하지 않을 시간대라 시청에서 경복궁을 끼고 걸어 올라가면 브리핑 시작 시간에 댈 수 있었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근무 시절 새벽 간이 브리핑으로 공평무사한 기삿거리 접근 기회 제공을 시도했다. 사진은 대형홀에서 진행된 오후 정규 브리핑 장면이다. = 임혜현 기자

그런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언론 개혁은 내 사명"이라고 인생 3모작을 시작했습니다. 기자와 청와대 참모에 이어 입법 전문가로 변신한 건데요.

그가 27일 한 세미나에서 알고리즘 방식으로 배열되는 인터넷 포털 뉴스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 기금으로 별도의 뉴스 포털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공평한 새벽 브리핑과 화를 거의 내지 않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양대 포털이 사용하는 알고리즘 방식의 뉴스 편집에 대해 "개인의 선호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아 정보 편향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인간 본성의 취약한 측면, 자극적 유혹에 대한 호기심에 알고리즘이 결합돼 포털 뉴스 공론장을 어지럽힌다"는 것이죠. "거대 보수언론의 헤드라인 노출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도 들어볼 만한 구석입니다.

그런데 "정부 기금으로 '열린뉴스포털'을 만들고 시민단체와 학계, 언론사 등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각 언론사가 선정한 뉴스를 검토하고 게재하도록 하자"는 주장에는 걱정이 앞섭니다.

"정부는 지원만 하고 운영과 편집에는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나 "열린뉴스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에 정부 광고를 우선 집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구상도 상당히 오랜 시간 '저런 선의와 소신'에 바탕을 둔 고심 끝에 나오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그러나 '과연'이라는 걱정이 없을 수 없는데요. 아마 저런 구상이 전부 공평무사하게 가동, 집행된다면 그건 영국 정부와 공영방송 'BBC'의 건전한 긴장 모델 이상으로 획기적인 것이 될 밑거름이 돼 줄 겁니다.

영국이 독일과 치열한 대결을 펼칠 때 BBC는 승전 소식은 물론 패전도 숨김없이 객관적으로 전달해 당국의 불만을 샀습니다. 전쟁에서 국민적 사기 문제가 중요하다는 우려에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신을 고집한 것이죠(그렇다고 군사기밀을 특종 경쟁으로 모두 까발린 보불 전쟁 당시의 프랑스 언론 같은 실책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당국에서 지분을 갖고 있거나 엄청나게 큰 광고권을 갖고 있게 되면 또 언론 중에서도 각종 제도적인 규율이 막강한 분야에서는, 정부의 직접적 압박이나 간접적 부담감을 전혀 의식치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없는 눈치도 만들어서 본다는 게 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요.

비근한 예로 경기방송이 문을 닫은 것에도 김예령 전 기자(지금은 국민의힘 대변인으로 가 있습니다)가 문재인 정부에 불쾌한 질문을 던진 여파 아니냐는 음모론이 뿌리뽑히지 않는 상황을 들 수 있죠.

조금 먼 예로는, '워터게이트 의혹' 당시 당국의 불만과 언론을 좌우할 수 있다는 압박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닉슨이 당국자들과 비밀 대책 회의에서 헌법을 위배한 증거를 신문에 싣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캐서린 그레이엄의 젖꼭지를 비틀어버리겠다"고 발언한 게 나중에 알려지면서, 그는 '부정 선거 획책자'로서 대통령직 사임은 물론 영구적으로 '언론 탄압 사범'으로 매장됐죠.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그 계열 방송국이 있었는데 방송사 면허 기간 연장을 무기로 기사 추진을 막으라는 발상, 그리고 경영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그 부인이 갑자기 준비가 모자란 상황에서 회장직을 맡은 데 대한 성차별적인 태도가 반영된 발언이었죠.

BBC와 워싱턴포스트 사이에서 과연 우리 당국은 어느 손쉬운 상대를 선호할까요? 이건 이번 정부 관료들이 언론과 기사를 바라보는 관점, 더 넓게는 공평무사한 기구에 대한 인식을 엿보면 짐작을 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 문제에 대해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천명했습니다. 여당 내에서조차 "말 잘 듣는 검찰총장을 뽑자는 것이냐"며 곤혹스러워 할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언론관이야 말해 무엇할까요? 발언상 문제점을 꼬집는 불리한 기사가 연달아 나오자 "거론하기 적당치 않다"는 류의 태도로 대처하고, 때로는 "누구 작품인지?(이건 이성윤씨 기소 움직임에 대한 발언 중 나온 것)"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외눈박이 언론, 두 눈 언론" 운운하며 'TBS'에서 DJ로 활약 중인 김어준씨를 지나치게 옹호한 일은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권력 감시 기구인 검찰에 대한 장악 의혹이나 불편한 내용을 자꾸 캐는 감사원에 대한 압박 등은 문재인 정부가 과연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게 맞는지 회의하게 만들죠. 언론이든 정부 기관이든 '감시견' 안 키우는 기류라 하면 근거 없이 서운하기만 한 소리일까요?

정부가 광고를 집행하면서 과연 '인디펜던트'에 큰 광고주 자격으로 불리한 기사 빼기 압력을 가했던 '브리티시 에어웨이' 이상으로 고상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요?

공평무사하게 외부 터치 없이 위원회 조직이 꾸리게 보장한다고 하지만, 글쎄요,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자기들끼지 '만고강산'이 되고 마는 건 아닐까요? 아니, 만고강산만 해도 좋은데 '무소불위'가 돼 버리고 마는 건 아닐지요? 

과거 가장 좋은 시스템, 선진적 견제와 균형 도구로 추앙받던 KB금융그룹(105560)의 '회장후보 외부 추천위원회'의 양상을 기억해 봅니다. 그 기구가 결국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추천하고 임기도, 일하는 내역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외부인사들끼리의 놀이터'라는 비판 대상이 된 바 있습니다. 

과연 제가 과문한 탓인지, 저만 불운하게 이런 문제들만 너무 보고 듣고 기억하는 불행한 상황을 겪어서 그런 것일까요?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문제를 취재해 불의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 김 의원이 과연 저보다 그런 점을 몰라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그런 선의와 문제 의식으로 구상을 그렸다고 믿어 봅니다. 다만 허점이 너무 많고, 과연 인간은 선하고 권력은 자정이 가능한 걸까 근원적 물음이 떠오른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게 기우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실제 입법 추진과 통과까지 많은 고심과 보완을 해 보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내 편에 불리한 작품이 나오는 경우(이는 정말 외람된 걱정으로, 김 의원의 위와 같은 공평무사하고 온화한 상황에서는 그런 불측한 기획의도는 거의 전혀 없다고 본다는 점을 부기해 둡니다)조차도 단호히 밀고 나갈 수 있는, 내 편에만 유리한 작품이 나오는 경우라면 '절벽에서 오히려 가지를 잡고 매달린 마지막 손을 놓아버리는' 심경을 발휘해 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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