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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LH 부자되라고 우리는 백사마을서 무슨 짓을 한 거죠?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29 12:39:19
[프라임경제] "4월까지도 연탄을 쓰는 집이 많습니다. 동네가 추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르신들이라 추위를 워낙 타셔서 그래요. 이렇게 집 앞까지 날라다 주니 봄까지 따뜻하고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프라임경제'에서는 창간 10주년을 맞는 해인 2015년 벽두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 연탄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 1월19일 진행한 이 행사는 현대모비스(012330)의 재기발랄한 몇몇 직원들과 맞손을 잡고 자선 콘서트를 열면서 군자금을 마련한 것인데요. 현대모비스 사내 밴드가 실력파여서 자선 콘서트임에도 완성도가 대단히 높았다는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비스 홍보팀에서 근무하던 모 과장님의 정열적인 연주가 기억납니다. 그렇게 마련된 돈으로 연탄을 대량 구매해서 백사마을 가가호호에 직접 지게짐을 날라서 선물했는데요.
 

프라임경제는 현대모비스 등 여러 기업과 함께 연탄 봉사 등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해 왔다. 사진은 2015년 벽두에 펼쳐진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연탄 나르기. ⓒ 프라임경제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을 누비며 짐을 나르는 데 일손이 꽤 필요했는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이 행사 외에도 '릴레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종종 진행한 바 있는데요. 이 행사에는 총 3000장의 연탄과 이불 등 생활소비재며 라면 등 식품 등 다양한 선물을 선정해 사용했습니다.

당시 내부기록에 따르면, 서울예대 출신 개그맨 모임인 '개그클럽'과 비영리 봉사모임 '더좋은세상' 회원 및 전국대학생재능기부운동본부 소속 학생, 일반 독자 등 80여명이 참여했던 걸로 나옵니다. 

당일 영하 10도 언저리의 악조건에서 참석자들은 한파에도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참가자 중 최연소(당시 10세)이자 연탄배달 봉사를 위해 대구에서 달려온 남효인·남효리 쌍둥이 자매는 "TV에서만 보던 연탄을 처음 봐서 신기했고 어렵게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백사마을이 요새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이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데요.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에 관여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직 직원 등이 가족 명의로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일선 본부의 사업소장급 직원이 자녀 이름으로 백사마을 토지 4곳을 사들였다는 사례 등, 입에 담기도 거북한 작태들이 서울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일어난 것이죠.

심지어, 그냥 집이나 땅도 아니고 우물이 있던 자리 등 일반적 투자 감각으로는 별로 좋다고 하기 어려운 곳까지 건드렸다고 하니, 일단 확실히 뭔가 된다는 확신(즉 내부정보의 악용)으로 일을 벌인 것이라는 비판들이 나옵니다.

이런저런 필터링 끝에 보상을 못 받는 LH 직원 관계자 투기 사례도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요. 그 중 몇몇은 2025년 완공될 아파트 분양권을 받게 될 것이 확정적이고, 당국에서도 이는 어찌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관측이 나돕니다.

2015년 백사마을에서 연탄을 옮기는 일에 소중한 개인 시간을 할애해 준 자원봉사자들과 프라임경제 당시 근무 직원들. ⓒ 프라임경제

미공개 정보 이용 및 알박기 투기 의혹으로 누비는 욕망의 공간에, 온갖 공사다망한 일을 혹은 달콤한 휴식을 제치고 연탄이나 나르러 오라고 사발통문을 돌렸으니, 우리는 그때 과연 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LH 사람들 목돈 만지려면 개발이 돼야 하고, 동네의 불쌍한 이미지 극대화했으면 좋겠다는 데 부지불식간에 부역이나 한 건 아닐까요?

백사마을에 평생 거주하며 늦봄까지도 연탄을 써야 하는 추운 인생을 살아 온 현지 거주민들은 이 뉴스를 들으며 무슨 생각들을 할까요?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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