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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처칠의 맥주와 '2021 국민방위군 돈가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30 09:14:19

[프라임경제]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엄청난 고집에 불 같은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이 배겨 나기 쉽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지독하게 목표를 향해 매달리는 데다, 창의적으로 기획안을 쏟아내 전쟁을 지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 덕에 중용됐다.

그런 그는 기발한 행각을 많이 선보였다. 암살 위협에도 북아프리카 전선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국군 장병들을 위로했고(독일 첩보당국의 살해 시도를 막으려고 닮은꼴 인사를 여럿 움직이기는 했다), 폭격이 쏟아지는 중에도 런던 시내를 유유히 산책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맥주는 일선부대부터 보내 줘라"라는 사소한 명령까지도 챙겼다. 여기서 맥주는 그저 보급품의 하나가 아니라, 본국에서 부족한 와중에도 일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상징쯤으로 당시에 인식됐다. 

후선부대나 높은 장교들이 좋은 걸 오히려 독차지한다는 의심을 떨쳐내는 것도 필요한 전시상황이기에 이런 발언은 단순한 프로파간다 의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총리로 그를 꼽는 영국인들이 지금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 역설적으로 이런 맥주 한 병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방부가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국군의 급양 수준이 처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이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빵을 쪼개고 돈가스를 잘라서' 60명분으로 110명을 먹이는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소식을 접한 국회 내부에서도 상당한 술렁임이 있다는 후문. 

네티즌들은 '오병이어냐?"고 성경 속 일화를 빗대어 비웃지만, 그 웃음은 '웃프다(웃기면서도 슬프다. 웃으면서도 아프다)'는 반응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많은 예비역 남성과, 애인이나 동기들을 군에 보낸 경험의 여성 등 많은 이들의 상처 공감대를 건드린 대형 사건으로, 문민 통치 이후 일어난 사건 중 군대 사건 중 최고봉이라는 '훈련소 똥 먹기 강요'와도 견줄 만하다.

북괴의 침공으로 3년이나 전쟁을 치르는 중에, '국민방위군'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정규 한국군을 지원하는, 지금 편제로 따지면 '제2국민역' 같은 역할의 부대다. 워낙 일선 정규 부대도 무기나 식량 보급이 쉽지 않았던 누란의 위기였고, 심지어 군 간부들이 부족한 보급 중에 상당 부분을 착복까지 했다.

나중에 국회가 이 사태를 규명했을 때엔 많은 국민방위군 소속원들이 굶어죽고 얼어죽은 뒤였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격노해 관련 비리 혐의자들의 총살을 직접 입에 담았다는 후문도 있다.

삼성이 일본 소니를 꺾고,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대만을 넘어선 것도 이미 오래 전이다. 군 장성들이나 고급 장교들은 군이 갖고 있는 골프장에서 고급 스포츠를 연마한다. 그런 나라에서 돈가스와 빵을 쪼개 먹이고, 또 먹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2차 대전 당시 나라가 망할 위기에서도 공평한, 오히려 고위층보다고 더 좋은 보급품을 강조했던 처칠 같은 위정자는 바랄 수도 없다. 일선 부대에 캔맥주라도 보내주자는 국민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쪼개진 돈가스에 맥주라도 같이 먹여야 2021년판 국민방위군 병사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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