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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광풍, 불똥 튄 은행 "해외 송금 막아라"

'시중은'행 가상화폐 사고시, 책임 부담·자금세탁 리스크 노출 '우려'

설소영 기자 | ssy@newsprime.co.kr | 2021.04.29 13:53:29

최근 뜨겁게 몰아치는 가상 화폐 투자 시장에 잇따라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 직장인 14년차 A씨(43)는 어렵사리 모은 2억7000만원을 지난해 가상화폐 채굴에 모두 쏟아부었다. 은행 빚까지 내서 2억원을 더 투자했지만 결국 남은 건 없었다. A씨는 "(주변 지인이) 가상화폐로 2000만원 투자해서 100억정도 벌어 작은 빌딩과 외제차를 샀다는 말에 투자했다"며 "정작 투자한 곳은 이미 상장 폐지돼 없어졌다. 이제 어떻게 돈을 벌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뜨겁게 몰아치는 가상 화폐 투자 시장에 잇따라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정부 당국과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잇따라 시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내·외국인들이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 차액을 남겨 해외로 빼내는 행위를 막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은 '가상화폐 관련 해외송금 유의사항' 공문을 일선 지점 창구로 내려보냈다. 대체로 해당 은행과 거래가 없던 개인 고객(외국인 포함)이 증빙서류 없이 해외로 보낼 수 있는 최대 금액인 미화 5만달러 상당의 송금을 요청하거나, 외국인이 여권상 국적과 다른 국가로 송금을 요청하는 경우 거래를 거절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같은 조치는 내·외국인이 국내보다 싼값에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돈을 보내는 행위, 그렇게 들여온 비트코인을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차액을 남긴 뒤 해외로 빼내는 행위 등을 막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은 '김치 프리미엄'(한국의 거래소에서 다른 나라보다 가상화폐가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이용해 차익을 노리는 해외 송금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비대면 중국 서비스 '은련퀵송금 다이렉트 해외송금'에 월 1만 달러 한도를 새롭게 설정했다.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도 비슷한 규정을 내걸었다. 각 은행은 지점 창구에 '과거 거래가 없던 고객이 5만 달러에 맞춰 송금을 요청할 경우 거절하라'는 요지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최근 '해외송금 이용 시 주의사항'이라는 게시글을 띄웠다. '해외계좌송금 보내기'와 'WU빠른해외송금 보내기' 서비스 이용 시 주의 거래로 판단될 수 있는 사례를 고객에 제시하고, 유의하라고 안내했다. 분할송금 등이 의심될 경우 카뱅은 전화로 상세 사유를 확인한 후 결과에 따라 서비스 이용 제한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상화폐를 사기 위한 해외 송금이나 차익 거래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증빙 서류 없이 가능한 건당 5000달러, 연간 5만 달러 내 송금은 은행이 목적을 확인 할 의무도 없다. 

이 때문에 은행들을 중심으로 관련 규제 법규나, 정부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은행연합회는 이달 안에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본적 프로세스와 평가요소들을 담은 참고자료를 은행권에 배포할 예정이다. 

참고자료 작성을 위한 외부 컨설팅 용역이 현재 마무리 단계로 이달 안 배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관련 업무는 이달 3월 은행연합회 조직개편 때 신설된 법무지원부가 맡았다.

이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를 결정한 은행들은 은행연합회에서 배포하는 참고자료를 토대로 각자 상황에 맡는 세부적인 내부지침을 만들어 적용할 수 있게된다. 은행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금법을 반영해 금융당국에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당국은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항목이라며 거절했다.

개정 특금법은 가상화폐 거래소들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24일까지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신고 절차를 거쳐야만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은행권에 맡긴 셈이다.

현재 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4개 대형 거래소만 NH농협·신한·케이뱅크 등 은행들과 실명계좌를 트고 있다. 나머지 100곳이 넘는 중소 거래소들은 9월말까지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을 위해 은행들과 접촉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이미 거래하고 있는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도 까다로워진 내부심사기준을 적용해 더 보수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입출금계좌 발급을 꺼리는 것은 사고시 책임 부담과 자금세탁 리스크에 노출 크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법 안에서 은행들이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문제인데, 당국은 대략적인 지침도 없이 은행들에게 '잘 막아보라'고 주문만 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은행들은 내부통제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던 은행들이라 할 지라도 추가로 그 대상을 늘리는 것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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