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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들러리 사건' 굴욕 대우건설, 신나는 매각설 버진로드

'비자금 논란 박용만 일가는 싫다' 눈물의 매각 반대…재벌 운영 폐단 극복하고 새 매각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05 09:59:01

[프라임경제] 2011년 5월5일, 대우건설(047040)은 벽산건설과 짜고 대구시 죽곡2지구 케이스에서 담합을 했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습니다. 5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벽산건설을 소위 '들러리 입찰'로 세우고 자신들이 차지하려 획책했다는 것인데요. 

특히 대우건설은 입찰에 참여할 벽산건설에 컨소시엄 구성업체와 설계용역업체까지 소개해 주고 가격 지정 등 전반을 모두 감독해 주는 치밀함을 선보였습니다. 공정위는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도 하기로 했다는 점을 휴일(어린이날)임에도 언론에 강조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대우건설 주변에서 이 사건을 초대형 굴욕으로 평가하는 것은 비단 들러리 입찰 같은 담합 논의가 처음 자행되고 또 적발됐기 때문은 아닌데요. 

삼성물산(028260)이든 현대건설(000720) 같은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들도 담합 시비를 크게 빚은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두 업체는 2004~2005년 서울도시철도 7호선 연장구간 입찰 때 대우건설과 손받을 맞췄다는 의혹을 받아 법정에도 손잡고 불려들어 갔었죠. 이 사건은 정말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무려(!) 2020년 가을에야 완전히 끝났는데요, 이는 저 업체들과 7호선 비리를 공조했던 GS건설(006360)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서, 저때 비로소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저 벽산건설 들러리 사건의 문제는 '너희는 이제 김우중 시절처럼 건설계 1등이 아니다'라는 세간의 냉정한 평가를 사법부에서조차 판결로 공식적으로 박제해 버린 자충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항소나 상고는 그야말로 안 하느니만 못한 거죠.

공정위 과징금에 형사처벌(벌금)까지 맞게 된 대우건설은 다급함에 재판 과정에서 "애초에 실질적인 경쟁입찰이 이뤄질 수 없었고 설령 예정대로 입찰이 유찰됐더라도 입찰조건이 변경될 가능성이 없어 결국 수의계약으로 대우건설과 계약이 체결됐을 것"이라는 필사적인 호소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무죄 주장에 1심 재판부는 물론 항소심에서도 "유찰됐더라도 대우건설이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수주했을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유죄 판결이 나왔죠. 2013년 여름, 결국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인정해 버립니다.

'김우중 신화'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던 대우건설로서는 "너희가 내면 무조건 된다는 착각을 이젠 버려라"는 사법부의 신랄한 지적이란 정말로 피눈물날 일이었죠.

대우건설은 정말 대단한 업체였던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남가일몽 혹은 화무십일홍의 허무였죠. 오히려 한창 때보다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마저 없지 않습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대우건설을 가리켜 재벌 경영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언론에 재벌 문제를 논평하는 자리에서 대우건설의 예를 김우중의 전횡과 개입, 간섭으로 (오히려) 시공능력에 비하면 제대로 못 했던 케이스로까지 분석했었지요.

대우그룹이 넘어지면서 당국이 떠받치고 새 주인을 찾고, 다시 산업은행이 떠안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대우건설. 그 과정의 지난함을 기록하자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빨대를 꽂고 피와 기름을 모두 빨아먹어버린' 잔혹한 기억은 어찌 보면 '양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11년 1월 민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CEO 교체설이 나왔는데, 당시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민주당 일부 인사 등이 펴는 경영 악화 책임을 묻자는 논의의 저변에는 '낙하산 인사 욕심'이 있었다고 짚었습니다. 

사실 2010년 주택사업부문이 어려워지면서, 대우건설은 이 영역을 극심히 다우어트하는 등 나름대로 업계 전반 대처에 비해서도 최선을 다했었는데, 이런 굴욕적인 이야기를 정치인들에게서 들었던 것입니다(위의 저 벽산건설 들러리 건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처절한 생존 몸부림을 치다보니 일어난 일로 분석됩니다). 실적 핑계로 자기 입맛 맞는 인사를 내려보낼 생각말라고 강하게 반발, 겨우 브레이크를 걸었죠.

2006년 당시 대우건설 인수 검토를 위해 두산그룹 관계자들이 대우건설을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 대우건설 노조는 당시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었던 박용만 일가 비자금 문제를 거론하면서 실사에 극렬하게 반대했다. ⓒ 연합뉴스

이보다 조금 앞인 2006년 3월에는 대우건설 노조가 두산그룹 인수실사단의 방문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비자금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용만 일가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시국이라, 대우건설 노조의 이런 공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갔는데요. 

과거 1등 기업이었던 대우건설을 두산 쪽에 넘기면 또다른 비자금 창구가 될 것이라는 눈물겨운 호소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대우건설 구성원들에게는 치욕스런 일이었죠. 

그런 대우건설이 이제 2021년 가정의 달, 새 가족을 갖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저 길고 긴 고생의 길이 이제 끝나는 것일까요? PEF인 스카이레이크가 대우건설에 관심이 있고, 그외에도 대우건설을 인수하고픈 의향을 가진 원매자가 2곳 정도 더 있다는 설이 나돕니다. 

대우건설은 깜짝 실적에 매각 문제를 집중 대응할 최고수뇌부를 하나 더 뽑는 일명 투톱체제까지 4월 이래 가동 중이어서 순조로운 매각 스토리 완성의 기대감이 높습니다. 이렇게만 굴러가 준다면야, 2017년의 전례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죠. 

대우건설은 대우그룹 해체 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됐다가 2011년 산업은행의 핸들링을 다시 받게 됐었고, 2017년 공개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이때 호반건설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끝내 무산됐죠. 일상다반사로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대우건설 쪽에서는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고 '왕년에 우리가 어땠는데'를 와신상담할 일이었죠.

지방 기업에서 출발해 조금 커졌다고 해서 호반 정도가 갖고 놀듯 입질하다 그마저도 결국 없던 이야기가 될 물건이 됐던 셈인데요. 대우건설이 김우중 시절에서 아무리 영락했어도 그런 지경은 아닌데, 세상사 돌아가는 양상이 참 가혹하다는 뒷말이 당시 바깥에서도 있었죠.  

그러부터 햇수로 불과 5년, 이제 당당히 '대어'로 다시금 떳떳한 매각설 주인공으로 '버진로드 밟을 준비'를 합니다. 저 10년 전, 벽산건설 들러리 입찰에서 "왜 너희가 '어쨌든' 됐을 거라는 주장을 하지?"라는 준엄한 판사들의 비판을 들었던 날의 상처도 이제는 아물 수 있을까요? 그러길 기원해 봅니다. 

재벌 병폐 김우중이 미운 것이지, 대우건설이 그리고 거기 몸담았던 일벌레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좋은 반려자감을 만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에게 "이제 꽃길만 걸어"라며 붉은 융단으로 축복해 주듯, 2021 매각설의 버진로드에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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