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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구수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홍준표 vs 김웅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10 08:17:12

[프라임경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가끔 유효하다. 적당히 눙쳐서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자뷰(라는 우려 내지 영광)' 단어를 쓰는 게 낫겠다는 느낌도 든다.

검사 대 검사, 홍준표 무소속 의원 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벌이는 입씨름의 이야기다.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두 저격수의 대결을 그린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는 사슴 사냥을 즐기던 귀족 출신 독일 장교와 늑대를 잡던 시베리아 목동 출신의 소련 사병의 치열하게 대결 구도다. 이 두 인물 간의 상호존중과 그러면서도 서로 겨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홍 대 김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것. 

일찍이 '딴지일보'의 인터뷰를 통해 방송인·언론인 김어준씨는 홍 의원을 해부한 바 있다. 

그는 홍 의원을 검사(그 자체)로 규정하고 정계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검사처럼 조사하고 기소하듯 일(의정활동)한다'고 짚었다. 김 의원도 마찬가지. 보통 못 듣고 못 읽은 척 넘길 일을 굳이 새삼 거론하고 자기 의견을 명토박는 데 일가견이 있다. 

못 말리는 두 '공익의 대변자(검사를 부르는 다른 대명사이자, 모든 공직자의 가장 큰 직무)'는 그러나 근래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김 의원이 홍 의원 복당 문제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서다. 

홍 의원은 바로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진다"고 김 의원이 조명 받는 세태를 난타했고, 김 의원은 바로 "꽃은 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희대의 명언으로 맞받아쳤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과거 한나라당 입당 시절. 그는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얻었으나 검사 사임 후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결국 정치권에 입문한다. 사진 왼쪽은 강삼재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 ⓒ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모래시계 검사' 홍 의원이 요새 들어 '막말' 캐릭터처럼 이미지가 변질되는 양상이라 김 의원 대비 적자지만, 둘 다 모두 입심과 재담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만한 인물들이다. 

홍 의원이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김 의원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온 것에서 보듯 학맥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거친 설전이 이어질 수 있는 전제 조건인 셈이다.   

홍 의원은 부친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이사를 거듭한 여파로 수시로 전학을 다녔다. 땅콩 농사부터 안 해 본 것 없이 식구들 모두 고생한 집안에서 상급학교 진학을 꿈꾸기는 어려웠으나, 대구 영남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니면서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김 의원의 집안은 홍 의원 대비 상당히 나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에서 초임 검사 시절을 보낸 홍 의원은 일찍부터 지방 간부 공무원을 잡아넣는 등 기개를 자랑했다. 한편 김 의원은 초임 시절 부장과 선배들의 고민거리였다고 스스로 밝힌다. 실적이 별로 안 좋은 터라 좋은 자리로 발령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매번 고비를 뚫고 초임 시절 일했던 인천지방검찰청에서 공안부장을 하는 등 발군의 실력자임이 차차 드러난다.

김 의원을 부각시킨 매력은 다름아닌 꼼꼼함과 위트. 거품을 물고 쓰러진 피의자 입에서 수상한 '세제 냄새'를 감지하고 "이건 쇼(show)다"라고 간파한 뒤 오히려 백전노장 피의자를 압박해 두고두고 회자됐다("옥시크린은 언제 넣어 드릴까요?"). 

홍 의원이 '물 먹인 소'를 엄히 처벌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당시에는 동물학대 혐의가 극히 미미했다) '불특정 다수'의 고기를 사가는 사람에 대한 '사기죄' 이론구성을 해낸 적이 있는데, 미묘한 부분을 캐치해 내고 파고들어서 정의를 쟁취해 내는 모습은 분명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홍 의원과 김 의원 부득이 법복을 벗었다는 점, 두 사람 모두 큰 인물에게 발탁돼 정계에 발을 들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홍 의원은 일명 '슬롯머신 사건' 수사로 현직 고등검찰청 검사장, 안기부 출신 병무청장 등 다수의 공직자들을 잡아넣었다. 김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업무 추진 방향에 불만을 갖고 있던 중 마찰 끝에 결국 물러났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초선 당대표감으로 거론된다. 사진은 옛 미래통합당 시절 공천 심사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우측에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가 친근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눈에 띈다. ⓒ 연합뉴스

그런 뒤 홍 의원은 'YS'의 직접 연락을 받고 출마했고, 김 의원은 '유승민 라인'으로 당시 새로운보수당(바른미래당 등으로 변경을 하던 중, 현재의 국민의힘으로 합쳐짐)에 입당했다.

상관과의 불화, 그리고 그럼에도 거기에 눈도 깜짝 않는 담대함도 두 사람의 공통 분모다.

홍 의원은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에서 당시 5공 실세 친척 연루설을 무시하고 수사를 강행해 결국 지방 좌천을 당했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문재인 정부와 불편했다는 점만 기억하는 이들에겐 약간 의외겠으나, 김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도 썩 원만한 편은 아니라는 평.

윤 전 총장이 과거 상당 기간엔 현 정권과 두드러지게 척을 지지 않은 때가 있었는데, 당시 김 의원이 대검찰정 형사정책단장으로서 곤란한 소리를 종종 해서 결국 좌천성 이동(법무연수원 교수 발령)이 됐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나름대로 악연인 윤 전 총장 및 그 휘하 사단을 위해 '검찰 내 권력형 비리를 건드린 검사들의 인사발령상 불이익 문제점'을 정면으로 거론하다 결국 법복을 벗었으니, 자기 이익이나 호불호 문제보다는 대의에 충실하다는 평이 나온다.   

홍 의원은 재치있는 입담으로 오래도록 관심 대상이 돼 왔다. BBK 국면에서 난처한 상황이 되자 "식사했어요?"라며 기자들의 입을 막은 점은 (비판도 받았지만) 그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김 의원 역시 유머러스한 가운데 뼈있는 말을 잘 하는 재담꾼 기질이 있다. 김 의원이 결국 문재인 정부와의 불편한 상황에서 옷을 벗자, 윤 전 총장이 잠시 면담을 했다고 하는데, 김 의원은 자신을 위로하는 윤 전 총장에게 "어차피 총장님도 오래 못 계실 것 같은데…"리는 우스갯소리로 답했다고 알려졌다(그리고 결국 그 예언은 실현됐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이라면 홍 의원은 정치권에 투신한 이래 늘 '일선 저격수'나 '특무상사' 역할에 상당히 오래 시달렸다는 점 그러나 김 의원은 초선인 지금 너무도 빨리 당대표감으로 부각되는 정치 지형상의 차이가 있다는 부분이다.

홍 의원은 저격수 노릇을 너무 열심히 해 DJ 정부의 미움을 사기도 했고, 결국은 그런 문제가 음으로 양으로 미친 마이너스 효과 덕에 각종 재판에 시달리고 또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고대 선배'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바로 뒤를 이을 서울시장감으로 자신을 밀어주지 않아 서글픈 심경을 곱씹기도 했다.

그러나 홍 의원은 그야말로 '실력을 닦아' 그런 상황을 돌파하며 하나씩 사다리 계단을 올라왔다. 

그 증거 내지 결실 중 하나가 '홍준표의 반값 아파트 가능 주장'은 정치권은 물론,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계에까지 치열한 공방거리로 떠올랐었다. ‘아파트 반값 주장’은 결국 법안 추진 국면까지 갔었다. 이 주장의 실효성을 놓고 홍 의원과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 관계자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논리 전쟁을 벌인 바도 있다. 

김 의원은 당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 즉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내부적 성격 부여와 의견 통일이 어렵고 다시 그 여파가 차기 대선 구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게 우려되는 현 정국에서 유용한 카드로 꼽힌다. 일명 초선 당대표론에 가장 부합하는 인사로 거론되고 있는 것.

다만 그 와중에 과거나 내부적 이견을 끊고 가는 문제에서 홍 의원과 대척점에 서게 됐다는 해석이 대두된다. 일찍이 부각될 기회를 얻었는가의 경력상 특이점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아니라, 향후 당의 정체성을 잡고 미래를 그리는 데 있어서의 서로간의 스탠스가 라이벌처럼 부각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홍 의원은 늘 주류가 아니었고 '변방'만 겉돌았다는 한탄에도 당의 원내대표와 대표, 대선 후보까지 역임했다. 빠른 당대표감 부각 구도가 입방아 소재이긴 하나 김 의원 역시 그런 홍 의원이 부럽잖은 길을 걷고 있다. 이런 급격한 띄우기에서 혹시 급전직하를 하더라도 다시 홍 의원처럼 딛고 올라올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초임 시절의 고생과 저평가에도 결국 부장과 법무부 보직 등 검사들의 꿈을 이루어낸 김 의원의 저력이 한국 정치 풍토에서도 적잖은 수확을 얻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머나먼 길의 끝에 홍 의원 같은 '자수성가의 꿈' 그리고 '어려운 와중에 돌파구를 맨몸으로 찾아낸 특무상사의 혼'이 있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을 뽑는 큰 잔치 2개의 이벤트가 있는 내년까지, 김 의원과 홍 의원은 각자 어떤 길을 걸을까? 하나는 차기 당대표 도전 의사를 갖고 있고, 다른 한 인물은 지난 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유력 잠룡 중 하나로 거론된다. 복당은 당연히 시켜줘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그래서 이들이 지금은 문 안팎에서 서로 적으로 싸우지만, 언젠가 문에 서서 같은 방향을 보며 이야기할 날이 올지 주목된다. 이 닮은 꼴들 사이의 화해 여부도 2020년대 한국 정치의 숨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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