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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키자니아와 손잡은 '1등' 윤선생의 무한변신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19 11:48:39

[프라임경제] 2011년 5월19일, "윤선생영어교실이 영어교육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언론 기사가 교육면을 장식합니다. 당시 조사기관은 '이데일리EFN'이었는데요. YBM시사영어는 2위로 이 부문 리딩브랜드로 나타났습니다. 여러 분야 프랜차이즈 랭킹을 매기는 조사였는데, (지금은 교육 서비스라는 개념을 입에 올리는 게 자연스럽지만) 영어교육을 서비스업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순위를 매긴 것이 당시로서는 약간 이채로웠습니다.

아, 이름이 좀 생소한 독자들도 계실 텐데요. 젊은 독자층에서는 윤선생영어교실보다 '윤선생'이라는 지금 명칭이 더 익숙하실 겁니다. 

참고로 2015년 11월5일 '튼튼영어'에서 조사의뢰한 유아영어교육 브랜드 선호 및 인지도 조사 결과가 보도됐는데, 이 기사에선 "가장 선호하는 (유아)영어교육 브랜드는 무엇인가를 묻는 선호도 조사에서 튼튼영어가 18%의 응답을 얻어 가장 높았으며 윤선생이 17%로 2위"였다고 해 윤선생이라는 새 명칭 이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죠.

"(유아)영어교육 브랜드 중 알고 있는 브랜드를 모두 고르라는 인지도 조사 항목에서는 89.1%가 윤선생이 1위, 튼튼영어가 86.8% 소비자들에게 선택되어 2위에 랭크됐다"고 나왔는데, 이렇게 여러 다양한 각도의 조사에서 윤선생(윤선생영어교실)은 업계 최상위 브랜드로 위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이 브랜드 조사 못지 않게, 윤선생발 도발적인 뉴스가 나오는데요. 바로 "윤선생영어교실(당시 명칭)이 어린이 직업 테마파크인 키자니아에 ‘윤선생 키자니아 대사관’을 오픈한다"는 것이었죠. 

키자니아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현실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에듀테인먼트 테마파크입니다. 도쿄와 두바이 등 글로벌 도시에 많이 개장돼 있고 지금은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윤선생과 손잡던 시절을 생각하면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키자니아의 경우 2010년 2월 오픈했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 영어 문제의 1위 브랜드가 낯선 어린이 놀이공간과 협력하는 조금 어색한 선택이었던 셈이지요. 아울러, 영어라는 것이 어떤 손에 잡히는 것으로 구현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당연한 관념이 있었고, 교육을 어떤 재미로 표현한다는 것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은 전통적인 생각도 남아있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인 협력이었다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선생은 '외국에 나간다' 혹은 '외국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우리 공관을 경험한다'는 각도를 잡고 대사관을 오픈함으로써 영어 사용이라는 '업의 세계'와 '아이들의 관심'을 접목했죠.

특히 이 체험관에 AR(증강현실) 컨텐츠, 즉 현실 세계와 3차원의 가상 물체를 서로 합성하여 보여주는 앞선 교육 기술을 활용해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키자니아 안에 대사관이 경찰서나 소방서, 과학수사대 등과 함께 자리잡았던 배경은 이렇습니다. 

윤선생의 다양한 교육 방식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시스템 영어공부방 개념을 알리는 광고. ⓒ 윤선생

이런 2010년 5월의 두 가지 도전은 윤선생의 무한변신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윤선생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통의 영어 명가 자리에만 만족하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 업계의 부침에도 여전히 건재한 저력이 돼 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 윤선생영어교실이라는 곳을 만들고 '파닉스 학습법' 개념을 처음 한국에 이식한 윤균 창업회장이 타계했습니다. 고인은 1944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어교육 분야에 투신, 그야말로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다양하고 많은 기부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요. 영어교육 사업으로 얻은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회공헌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고인의 주변에서는 설명합니다. 

윤선생영어교실이라는 간판을 처음 걸던 때만 해도, 문법에 집착하고 글을 읽는 것에 매달리던 종이 위의 활자 영어 시대였고 영어 발음이란 사전의 '발음기호'에 따라 읽으면 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요.

그러던 때에 어떻게 하면 쉽고 원어민처럼 읽을 수 있을지 법칙을 깨치게 하는 파닉스를 과감히 내놓은 정신은 영어교육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식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친 일이었습니다. 무한변신을 추구해 온 윤균 선생과 교육기업 윤선생의 이름은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고 조명할 가치가 있는데요, 앞으로도 교육 역사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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