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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시, 또다시…위험의 외주화 언제까지

청년·비정규직·안전 관리 부재, 죽음 먹고 자라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김수현 기자 | may@newsprime.co.kr | 2021.05.13 15:32:24
[프라임경제] "노동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

지난해 10월,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위험한 현장에 고 이선호씨가 홀로 내몰린 이유는 '또다시' 위험의 외주화 때문이었다. 원청은 평택항 출입 화물 컨테이너의 세관 검수를 하는 업체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청업체에 맡겼다.

이 씨가 속한 하청업체는 지난 3월부터 비용 절감 차원에서 검역별로 분리 투입하던 인력을 통폐합했다. 업무 조정을 하려면 원청과 하청업체, 하청업체와 노동자 간 계약을 다시 해야 하지만 절차는 생략됐다. 

본래 동식물 검역이나 세관 관리 업무를 도맡았던 이 씨는 업무가 통폐합되면서 사망날짜에 처음으로 해당 업무에 투입됐다.

가장 큰 문제는, 원청과 하청, 하청과 재하청, 파견인력회사로 이어지는 고리 속에 발생하는 물류비용 삭감, 원청의 낮은 도급계약, 그리고 하도급법 위반이다. 하청업체는 경쟁 속 동방의 인력 용역을 따내기 위해 파견 노동자의 인건비를 최소로 책정했다. 

안전을 위한 인력 충원은 애당초 고려되기 힘들었다.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여러 산업 현장에서는 명확한 업무 가이드 라인이 없고, 두 세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도맡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행법상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도급업체 직원을 파견업체 직원처럼 지휘·감독하는 건 불법이다. 원청에서는 작업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씨가 사망 직전 하던 작업은 지시 없이는 하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메트로 하청업체 직원이던 김 군은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혼자 정비하다 열차 사고로 숨졌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고 김용균씨가 혼자 컨베이어벨트 밑에 쌓인 석탄을 긁어모으다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고 이선호씨도 마찬가지로 혼자였다. 이 씨의 죽음 이후 두 명의 노동자가 더 세상을 떠났다. 관계자들은 안전관리자가 단 한 명만 있었어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안전관리의 부재, 상대적으로 어리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자의 죽음. 공통점이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개선점을 찾는 분위기보다는 누군가는 가져가야 하는 짐을 두고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1000명에 가깝던 산재 사고 사망자 수를 임기 내 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하며 관리·감독 인원을 두 배로 늘렸다. 그러나 지난해 전체 산재 사망자 수는 2062명, 이 중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882명이었다. 현장에서 무엇보다 사람 목숨을 우선시하는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다.

위험한 업무를 외주와 하청에 전가하고, 등 돌린다. 용역을 따내기 위해 인건비를 최소로 측정하고, 그 때문에 안전관리에 힘쓰지 못한다. 그로 인한 무고한 죽음이 반복된다.

생명을 앗아가거나 중대한 부상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산업재해를 막아야 한다는 점, 이를 위해 관련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끄러운 것은 쟁위 행위 방법, 즉 그로 인해 따라오는 처벌의 강도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대립이 지속되서다.

실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무려 13년에 걸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제정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단의 정당성을 잃지 않는 점이다. 독일은 연간 근로자당 최대 500유로까지의 안전비용에 대한 세금혜택을 부여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안전 조치 비용을 지원한다.

결국, 중대 재해 발생원인을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 및 기술 부족으로 보고, 도를 넘어선 제재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 원청과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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