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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록 칼럼] 남·북·미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재정의 할 때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khr6440@naver.com | 2021.05.16 08:11:28
[프라임경제] 4월 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골간이 밝혀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8일 취임 100일 만의 첫 의회연설에서 "미국안보와 세계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이란과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해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외교와 단호한 억제'를 통해 양국의 위협에 대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날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자유주간 행사(매년 4월 마지막 주) 일환의 성명에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 국가 중의 하나"라고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이틀 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강조하면서 비핵화 해법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으로 북한과 외교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바이든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동맹들과 잘 조정하여 실현 가능한 점진적인 접근 방법으로써 외교와 억제를 병행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북한은 5월 2일 기다렸다는 듯이 2종의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하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미 국무부 대변인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최고존엄 모독" "사상과 제도 부인" "인권을 내정간섭 도구와 제도전복 무기로 악용"했다며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미 담당국장 명의로 미국이 발표한 대북정책에 대해 "미국 집권자는 지금 이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면서 "새로운 대조선정책의 근간이 선명해진 이상 부득불 상응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우리를 심각한 위협으로 걸고 들고, 외교와 단호한 억제 운운한 것은 이미 예상했던 그대로"라면서 "첫 시정연설에서 대조선 입장을 이런 식으로 밝힌 데 대해 묵과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자신들의 억압체제와 인권문제는 최고존엄과 연계시켜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 대응하면서도 미국이 발표한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실무 담당국장을 통해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반응했다. 그 이면에는 급이 높은 김여정 부부장이나 최선희 부상급이 아직 나설 때가 아니며 때가 되면 다시 비난의 전면에 나설 여지를 남겨 놓은 계산된 전술로 보인다.

때마침 미국은 안보 최고수장인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직접 나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적대(hostility)에 목적이 있지 않고 해결(solution)에 있다"며 "잘 조정된 접근법은 북핵프로그램이 야기하는 도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대시 정책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뜻을 북한에게 에둘러서 전해보려는 선의의 표현이다. 

외교수장인 블링컨 국무장관도 "대북정책은 외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북한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기회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향해 전진할 방법이 있는지 살펴볼 기회를 잡길 바란다"면서 "다가올 며칠 간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겠다"며 북한에게 줄 당근이 있는 것처럼 슬쩍 공을 넘겼다.

이후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결과를 북한 측에 전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왔다. 지난 3월 중순 최선희가 미국이 접촉을 해왔지만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무시하겠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던졌듯이 설리번 보좌관과 블링컨 장관이 직접 북한과의 대화를 손짓함에 따라 북한이 이를 선의이자 명분으로 간주하고 미국과의 손익을 따져보고 있을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금번 북미 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기싸움은 북한의 판정승이다. 핵을 거머쥔 북한에게는 사실상 핵군축 협상의 전략적 호기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여정이나 최선희가 답할 차례다.

물론 손익 판단의 변수는 역시 제재해제 여부와 코로나 상황이다. 북한은 미국의 선의를 명분 삼아 코로나와 비핵화를 가장한 시간을 끌면서 먼저 바이든 정부의 제재완화에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다. 이 시기 우리정부는 한미 정상회담과 미북의 접촉에 앞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개념에 대한 일치 작업을 해야 한다.

북한은 트럼프와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를 다음처럼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조선반도(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를 북핵 비핵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그릇된 인식이다.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다."

이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정의에 대해 남북, 북미, 한미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북한이 공개적으로 알려준 대목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한 남·북·미의 일치된 개념 정립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향후 남북 및 한미관계는 물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시기, 범위, 방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명지대학교 북한학 초빙교수 /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미국 상대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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