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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역외탈세' 차용규 수사 망쳤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설욕

 

임혜현·추민선 기자 | tea·cms@newsprime.co.kr | 2021.05.17 08:32:16

[프라임경제] 10년 전인 2011년 5월17일, '역외탈세'라는 평소에는 일반인들이 별로 관심 가질 주제가 아닌 이슈가 신문지상을 장식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업에 성공해 1조원 넘는 부를 축적한 글로벌 자산가로 평가받던 차용규씨를 상대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시작한 것인데요. 명목이 바로 역외탈세였죠. 

경기고등학교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028260)에 입사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던 차씨는 왜 거부가 됐고 또 탈세 논란으로 정조준 당했던 것일까요?

◆역외탈세는 무엇? 선박왕과 완구왕도 함께 도마에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던 그는 1995년 카자흐스탄의 최대 구리 채광·제련업체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맡게 됐습니다. 2004년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에서 철수하자 지분을 대거 인수한 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 큰 부를 축적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샐러리맨 신화' 내지 '국위 선양'인 것 같은데요, 역외탈세라는 명목으로 당국의 정조준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금을 정확히 부과하는 건 쉽지 않은데요. 첫째로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거나 재산을 두게 되면 세금을 이중으로 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외교적 노력으로 이를 풀기로 각국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실무상 두 번 세금을 물리고 내는 문제점은 해소하고 있는데요. 

반대로, 다른 나라에 적을 두고 실질적인 거주국에선 세금을 내지 않는 문제에는 많은 나라가 여전히 골치를 썩이고 있죠. 이른바 '세금 망명 논란'이죠. 숀 코너리가 영국의 높은 세율을 피해 세금 천국 바하마로 이주해 버렸던 일이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나라로 적을 완전히 옮겨 버리면 그나마 모를까, 많은 시간은 한국에서 보내고 세금은 다른 나라에서 싼 세율로 낸다면 그건 정의관념에 반하겠죠. 실질적 연고국이 여전히 세금 부과 권한을 행사해야 하지 않냐는 게 복잡한 역외탈세 논리의 기틀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선박왕' 권혁씨, 미국에서 장난감으로 크게 성공한 '완구왕' 박종완씨나 '구리왕' 차용규씨 등이 모두 세금이 적거나 없는 곳에 거주하면서 한국 당국에 내는 세금을 줄였다는 비판을 받았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국세청의 겨냥 더 나아가 검찰 수사를 받는 등 고생을 했지요.

권씨의 경우 작년 12월, 국세청이 고액·상습체납자로 지정, 공표해 버렸죠. 고액·상습체납자 6965명과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등의 명단을 발표할 때 그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인데요. 

미국에서 '비니 베이비'로 명성과 부를 얻었던 박씨의 경우는 당국의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명예를 회복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세무 당국에 이어 검찰의 강공 드라이브로 밀리는 듯 했지만(일선 법원에서도 탈세 혐의에 유죄로 인정, 실형 선고가 나오기도 했죠) 2018년 1월, 2000억원대 조세 소송에서 이기면서 길고 복잡한 소송 전쟁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차씨의 경우 이들보다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치열한 인수 자금 성격 전쟁, 결국 무혐의

심지어 '비자금' 문제까지 엮여있다는 의혹이 부각됐었거든요.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원이 일약 기업체 인수 후 거부를 쌓은 경우라서, 과정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잘 이해 안 될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인수 자금을 놓고 '헐값 매각'과 '삼성 비자금'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지요. 

차씨는 문제의 업체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조세피난처 등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국내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인과 자녀도 역외탈세 문제가 불거진 당시에 한국에 함께 거주를 했다고 하고요. 그런 점에서 세무 당국과 수사 당국이 그를 주시하게 됩니다.

국세청에서 단순히 세금 문제로 건드리고 이를 검찰에서 법리적 재판 단계로 가져 간 게 아니라, 국세청부터 이 전체적인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덮쳤다는 소리가 없지 않았죠.

검찰 역시 이를 들여다 보는데요. 그러나 이 같은 다양한 공무원들의 노력에도, 결국 차씨의 세금 문제나 비자금 논란을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갑니다.

당시 삼성물산 사람들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카자흐스탄 실력자의 압력을 받고, 자칫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주식을 손해 보고 팔 정도로 서둘러 빠져 나온 것"이라고 매각 상황을 항변했습니다. "우리도 엄연한 피해자인데, 해외 비자금 의혹이 계속되니 답답하다"는 게 논리의 핵심이었죠.

반면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삼성이 삼성물산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비춰볼 때 카작무스 사건은 삼성의 전형적인 비자금 조성 수법으로 의혹을 살 만하다"며 진상 규명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결국 사건의 열쇠는 해외 비자금이나 탈세 여부를 확인하는 정교한 조사를 벌였어야 하는데, 국세청이 2011년 차씨에게 역외탈세 혐의로 16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하려다 실패할 당시 '자금의 흐름'을 전부 깊이있게 캐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었죠.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우회 자금 등을 모두 규명하기엔 인력과 물리적 한계가 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결국 유야무야됩니다. 이를 두고 2014년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그 분이 맞습니다)는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한 언론사에 자기 이름을 걸고 신랄하게 이 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내기도 했습니다.

말 바꾼 삼성물산, 김상조 절규 그리고 바이오로직스

김 교수는 "솔직히 나는 검찰의 수사 결과(편집자 주: 무혐의 조치를 말함)에 승복하지 않는다. 경제개혁연대의 고발 이전까지만 해도 삼성은 이른바 '카자흐스탄 마피아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철수했다는 식의 변명을 암암리에 퍼뜨렸었다. 그러나 장장 15쪽에 이르는 검찰의 불기소결정서 어디에도 협박 운운하는 내용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록 협박에 의한 것일지라도, 회사에 손해가 될 줄 알면서 헐값 매각했다면 배임죄를 면할 수 없기 때문"으로 칼을 들이댔습니다. 

그는 이어서 "따라서 삼성은 정상적인 가격으로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했다는 주장을 폈고, 검찰은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 말을 바꾼 부분도 매섭게 짚는데요. 그 자신도 "항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카작무스 건은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삼성과 검찰의 논리를 뒤집을 증거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라고 무혐의에 반발, 공식 조치를 밟는 것을 포기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그 기고를 내던 때 기준으로 "이제 사흘 후면 공소시효 10년이 완료된다"고 소개하면서 통탄을 했었지요. 김 교수는 나중에 공정거래위원장이 되면서 '재벌 군기 잡기'의 칼자루를 잡게 됩니다. 그때 분루를 삼킨 건, 김 교수만이 아니었고 국세청과 검찰의 여러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일을 뭉갠 것도 조세와 수사 당국 아니냐고 한꺼번에 비판할 수도 있지만 장기간 문제를 끌고 가면서 내부에서 강행 의견을 냈던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현장을 찾은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삼성 직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이재용 승계의 든든한 버팀목에서 현재 수사의 단초로 전락한 상태다. ⓒ 연합뉴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오늘날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문제를 파헤칩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 이슈 못지 않게, 삼성바이오로직스 값어치 문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 문제에서 큰 쟁점이 됐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 문제에 관여한 임원이 비자금 문제에도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잘 걸린 것이죠.

검찰의 오랜 숙원이자 아픈 손가락이었던 비자금 문제가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풀릴까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길고 긴 수사 끝에 기소된 이 문제는 바로 그 시간 지체 때문에 JY 사냥에 묘수로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재상고 포기로 JY 사면 추진론의 그림이 그려지는 와중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는 여전히 계속되는 '웃픈 풍경화'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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