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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정몽구의 '원피스'…현대로템 '브라질의 꿈'

미운 오리 국내 철도 사업서 개선 기세 덕에 '밑빠진 독' 브라질에도 증자 단행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18 08:26:27

[프라임경제] 10년 전 2011년 5월18일, 현대로템(064350)은 멀리 남미에서 온 귀빈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는데요. 당시 서울에선 'G20 국회의장 회의'가 열렸고, 브라질 의장단이 이 행사 참석차 방한한 것이죠. 이들은 한국을 찾은 길에 자기 나라의 산업 관련 아이템도 챙기는 꼼꼼함을 과시했습니다.

이들은 현대로템을 방문해 고속철 생산설비 기술을 확인했는데, 당시 이를 보도한 우리 회사 기사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의장 일행은 KTX 산천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완성조립된 내부 시설을 살펴봤다. 연구시험 설비를 견학한 후 브라질 고속철 사업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기사는 엄청나게 큰 건이 달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브라질과 한국 양측이 모두 관심을 가질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브라질 정부가 추진중인 고속철도 사업은 내년 하반기(편집자 주: 즉, 2012년을 의미)부터 시작해 오는 2018년 중 완공을 목표로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로-깜삐나스'를 잇는 511km 구간에 건설되며 사업비는 약 23조원에 달한다"고 당시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는 긴장감을 고조했는데요.

이어서 "오는 7월로 예정된 입찰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프랑스·독일·스페인 등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중략)…현대로템이 개발한 고속철에 대한 브라질 기대와 관심을 보여준다"고 분석도 했네요.

브라질 국회의장 일행이 방한해 현대로템 공장을 직접 둘러봤음을 전하는 2011년 5월 당시 기사. ⓒ 프라임경제

현대로템을 거느린 현대차그룹에서는 정몽구 당시 그룹 회장이 직접 브라질 의장 일행에 저녁을 대접하는 등 예우에 극히 신경을 쓰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현대로템의 브라질 투자는 남미 교두보 확보라는 큰 그림 아래 진득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이렇게 공들인 보람이 있어서일까요? '신기루' 같다 혹은 '밑빠진 독 아니냐' 우려를 샀던 현대로템 해외법인 사업은 2018년 828억원 규모의 전동차 유지 보수 사업을 따내는 등 지속적인 먹거리 창출 낭보를 얻어냅니다.

금년 봄, 본사 차원에서도 '완전자본잠식'이라는 끔찍한 타이들의 브라질법인을 위해 용단을 내립니다. 지난해 얻은 영업 흑자의 상당분과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연 자금 흐름을 어디 쓸 건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었는데요. 5월 초 현대로템 브라질법인의 유상증자 단행(951억원)이 공식 발표됐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1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저 기간 동안에 MK는 백전노장으로 현대차그룹의 100년 번영 기틀을 진두지휘했지만, 올해 3월 여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은 이제 정의선 시대로 완전히 넘어갔죠.

2015년 현대로템 브라질 상파울루주 아라라꽈라시 공장 착공식. ⓒ 현대로템

현대건설 인수나 삼성과의 삼성동 초고층 빌딩 부지 쟁탈전 등 굵직한 이슈를 치러낸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 저 2011년 브라질 손님들이 로템 공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던 기자는 이제는 부장으로 후선에서 업무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기간 현대로템이 시달린, 그리고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재무구조와 실적이 꼽히는데요. 두 문제가 모두 개선되면서 과감하게 해외의 물빠진 독에 비로소 물을 채울 수 있는 두꺼비를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현대로템은 한때 철도사업 부문을 떼어 매각하려 한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방위산업은 국가를 상대로 하기에, 일정한 규모와 수입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는데요(국가에서 국방상 이유로 방산 관련사가 지속적 유지와 발전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즉, 일정한 영업이익률을 제시해 둡니다). 철도는 '수지가 안 맞는' 이유가 있다고 회자됩니다.

일명 '저가수주 문제'인데, 지방별로 경쟁입찰에 뛰어들어야 하므로 이익이 박하고 그러다 보니 골치아픈 분야에 머문 것이죠. 2019년에 철도 부문은 2600억원의 영업손실을 단독 드리블하면서 회사 내 다른 사업 부문은 물론 그룹 지도부의 경악을 자아냅니다.

아직 MK가 그룹을 지휘하던 2019년 연말, 결국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증권 사장으로 명성을 쌓은 이용배씨를 현대로템에 내려보내는 등 경영내실화 초강수를 둡니다.   

이후 계속된 노력으로 저가 수주 전쟁의 진흙을 닦아내는 길을 걷는데요. 저가 수주 등 이상한 판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철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철길 등 기반을 닦는 건설사에서 '담합'을 하는 등 판세를 흐리는 것도 주목해 볼 일입니다. 건설사 담합이 타영역에까지 전반적으로 간접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가 없지 않습니다.

잠시 벗어나 살펴 보자면, 대우건설(047040)이 철도 관련 담합으로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고요. 더 이전 사례로는 삼성물산(028260)과 현대건설(000720) 등이 2004~2005년 서울도시철도 7호선 연장구간 입찰 때 짬짜미를 한 바 있죠. 이 7호선 사건은 정말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무려(!) 2020년 가을에야 완결됐는데요, 이는 저 업체들과 7호선 비리를 공조했던 GS건설(006360)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서, 저때 비로소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현대차그룹에서는 전체적인 판세에서 대처를 하는 결단으로 해외에 진출한 법인의 구멍을 메우고, 현대로템 자체의 상황도 개선해 냅니다. 이른바 '수뇌부의 인사이트'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요.

현대로템이 2017년 제작한 상파울루 교외선 전동차. ⓒ 현대로템

이제 본격적으로 브라질 더 나아가 남미 철길에 다른 나라 전동차 아닌 한국 전동차가 달리게 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3세 경영 시대로 배턴터치를 하는 양상이지만, 전반적인 기틀을 닦고 위기관리의 모든 X레이 사진을 챙긴 상황에서 안심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 전동차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차세대 먹거리' 차원에서 보는 것이지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완성되는 것을 마치 초장기 연재 만화 '원피스'를 보는 팬심처럼 기다리면 될 일입니다.

10년 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저 '남미발 노다지의 꿈' 기사를 썼던 당시의 많은 산업부 기자들 그리고 MK,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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