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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명예총영사가 된 조선 도공의 후예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05.18 11:24:57
[프라임경제] 15대 심수관(沈壽官)이 지난 3월16일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임명됐다. 앞서 명예총영사였던 14대 심수관이 2019년 6월 작고하면서 공석이었던 자리를 아들이 이어받은 것이다. 

심수관요(窯, 가마)에서 4월6일 거행된 개관식에서 15대는 "한일 간에 여러 정치적 문제가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문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며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고 취임 포부를 밝혔다.

심수관가의 역사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로부터 시작된다. 명문가 청송 심 씨의 후손이었던 그는 남원성에서 일본의 최정예 시마즈(島津)군과 싸우다 포로가 돼 사쓰마(현재 가고시마)로 끌려간다. 당시 지역 연합군이었던 일본군은 자신의 영지에 선진문물을 이식하고자 도공 외에도 △장뇌 △양봉 △토목 △의학 △자수 등 조선의 첨단분야 기술자를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조선의 도공을 데려온 사쓰마 영주는 그들이 도자기 제작에 전념하도록 택지를 제공하고 사무라이 신분을 하사했다. 한편으로는 성을 바꾸지 말고 고유 풍습을 유지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이후 세월이 흘러 도공 대부분이 자신의 성을 버리고 현지에 동화됐지만, 심수관 가는 많은 불이익 속에서도 430년 넘게 자신들의 성을 지키고 있다.

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는 12대 심수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뒤숭숭하던 1873년, 심수관은 일본을 대표해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 180cm짜리 화병 등을 출품해 절찬을 받는다. 

서양인들은 사쓰마 도자기의 투각과 부조를 조합한 현란한 기법에 매료돼 'Satsuma'를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12대는 1906년 작고할 때까지 각종 박람회의 상을 휩쓸고 그 공로로 메이지 천황에게 '료쿠쥬(緑綬)포장'을 받는다. 이후 심 씨 가계는 12대를 기리기 위해 가업을 상속받을 때 "심수관"을 습명하고 있다. 

역사소설 <고향을 어이 잊으리오(故郷忘じがたく候)>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14대 심수관은 명문 와세다대학을 나와 정치에 뜻을 두고 국회의원 비서로 취직하지만, 선대의 부름이 있자 미련 없이 낙향해 1964년 가업을 이어받는다. 14대가 명예총영사이던 1998년, 그는 사쓰마 도자기 400주년을 기념해 남원에서 불씨를 채취해 심수관요로 가져와 보존하고 있다. 이 행사 후 한국 정부는 일본 국적의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4대는 이듬해 장남 가즈테루(一輝)에게 심수관요를 상속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부친과 같은 와세다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15대 심수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젊은 시절 자신이 왜 가업을 이어야 하는지 고심이 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제2의 삶을 일군 선대들의 고난을 떠올리며 "가문의 전통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이자 이어나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라고 말한다. 

15대는 1990년 한국의 한 토기 공장에서 8개월간 김칫독 제작 연수를 받았다. 이 연수를 통해 문화와 언어의 벽을 넘어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얻게 됐다고 칼럼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준비된 명예총영사다. 민간교류조차 소원해진 양국 관계가 그의 훈풍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2019년 8월 동호인들과 함께 심수관요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한 적이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불매운동이 맞부딪혀 분위기가 뒤숭숭했기 때문이었다. 

송구함과 아쉬움을 담아 보낸 필자의 메일에 15대는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그는 작은 만남도 소홀히 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장 선생님. 이럴 때일수록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동조 압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군요. 실제로는 두 국민 모두 대환영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이 전달되지 않는 점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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