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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정글 무장트럭 조중훈 vs 백악관이 사랑한 이재용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22 10:37:55

[프라임경제]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어느모로 보나 참으로 닮은 인물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시기에 몸을 일으켜 전쟁을 딛고 일어난 창업주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3세대 경영의 수성 인물이 어떻게 다른 듯 닮았다고 할 수 있을지 좀 의아하시겠지만 둘은 대단히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글로벌 단위로 인정받았다는 게 둘 사이의 시공간 차이를 꿰는 가장 큰 핵심이겠는데요. 다른 문제들부터 간단히 살피고, 이 '미국 커넥션'은 마지막에 설명드리겠습니다.

◆학문에 열정, 편한 시기 편한 자리에 태어났더라면

조 창업회장은 가세가 기울자,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해원양성소에 진학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실업계고교인 인천 해양고와 마도로스 양성 기구인 부산 국립해양대학교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기관입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 한진그룹

고인께서는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운송 더 나아가 물류 기초 개념을 머릿속에 장착한 것이죠. 돈이 너무 없는데 책은 읽고 싶고 해서 헌책방을 애용했는데, 남의 책에서 묻어 들어온 결핵균에 감염돼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학부 과정은 서울대에서 역사(동양사)를 택했고, 이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에서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박사 과정은 하바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수료한 것도 잘 알려져 있지요. 선친(고 이건희 회장)이 와세다대에서 공부한 것을 생각하면 게이오로 진학한 것은 좀 의외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다만, 게이오 vs 와세다는  한국의 연·고전 같은 '어딜 가도 좋은' 상황이니 넘어가도록 합니다. 그 인맥들이 글로벌 삼성의 엄청난 뿌리를 만들어 준 것만 기억하고 가도록 하지요. 

◆'박정희 신종' 불국사에 내걸고…'최순실'에 접근하고

두 인물은 '권금유착'의 시대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긴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조 창업주는 트럭 하나로 시작, 한진상사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한국전은 한진상사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차량과 장비들은 군수물자로 징발됐고, 식구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나중에 조 창업주는 한진상사의 위치이자, 지금도 그룹의 터전으로 일컬어지는 인천으로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었습니다만 다시 찾은 옛 터에는 쑥대만 자라고 있었고 은행 빚만 번성하고 있었죠.

그럼에도, 한진상사는 한 번 만든 미국과의 인연을 끝내 놓지 않았고 그 도움으로 군에서 수송 물량을 떼어준 덕에 부흥 기회를 잡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월남전에까지 발을 들이게 되는데요. 당시 한진 측이 월남 내 미군 하역 시설을 따내기 위해 미군 고위층에 띄운 서한이 남아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한국전 당시 UN의 깃발 아래 미군이 한국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며, 저는 지금 사령관에게 이 건의서를 쓸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퀴논港의 현장답사와 담당관과의 면담을 통해 하역 인력이 없어 군수물자를 만재한 화물선이 3~4개월씩이나 대기, 작전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한국을 구원하였듯이 월남전에서는 한국이 힘 닿는 데까지 미국을 도와야겠습니다.

퀴논의 운송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원하신다면 한진에 수의계약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한진은 반공정신이 투철한 한국인만을 작전지역에 투입하겠습니다. 퀴논港으로 들어온 모든 군수물자의 하역·운송 책임을 한진이 담당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 속 호언장담은 한진 사람들이 한 손엔 트럭 운전대, 한 손엔 M-16 소총을 거머쥔 '정글의 무장 트럭'으로 현실화됩니다.

한진과 미군의 끈끈함을 잘 표현하는 당시 사진. ⓒ 한진그룹

그런 급성장을 경험한 한진에서는 군 더 나아가 나랏일에 대단히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에도 유착을 시도하는데요. 조 창업회장이 불국사에 (낯뜨거워 여기엔 글귀를 옮겨 적지 않습니다만) 유려하기 짝이 없는 문장으로 치장된 '박정희 신종'을 걸기도 합니다.

대학 교수 생활을 오래 한 사학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타계 직후 눈치 빠르게 이 종 표면의 문장이 깎여 사라졌더라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나중에는 종 자체가 사라졌죠.

'이재용 승계'를 위해 삼성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으로 순환출자의 장악력 유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실세 최순실씨에게 접근도 합니다. 그 딸이 쓰도록 삼성 돈으로 고가의 말을 확보, 주선하기도 합니다.

정몽헌과는 다른 결말, 글로벌 경영인으로 찬사받다

이렇듯 두 사람은 평안한 시대에 편한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도 공부에 평생 매진했을 인물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정경유착'에 깊이 한 발을 빠뜨리지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학자 스타일이었던 점과도 함께 연결돼 연상 효과를 빚기도 합니다.

연세대 출신의 국문학도였던 MH는 경영이 생리에 잘 맞지 않았으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 의해 적통으로 지정됩니다. 하지만 대북 사업의 세부적 문제로 수사에 시달리고 결국 의문사합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갖고 뛰쳐나간 MK가 부각되지요. MK는 이후 정의선 체제로까지 승계 구도를 완성, 적통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역사 물줄기 자체를 상당 부분 변경한 셈이죠.

MH가 두 발이 빠진 것과 조금 다르게 한 발을 빠뜨린 삼성(이 부회장)과 한진(고 조 창업회장)은 그래도 다른 길을 모색하고 턱턱 홰를 치며 날아오를 기회를 얻습니다.

고 조 창업회장의 이런 부흥 실마리는 '수송보국' 그리고 나라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 덕입니다. 아마추어적인 경영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대한항공공사(현재의 대한항공)를 떠안아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이 '미친 기업 인수'를 결국 '한국 경제사의 가장 큰 M&A'로 승화시킵니다. 

조 창업주는 프랑스 정부에서 '레종 도뇌르'를 받은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로 지금도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아들 조양호 회장(얼마 전 별세)도 대를 이어 이 영예의 훈장을 타는데, 이는 프랑스가 은근 자기네 지존심처럼 생각하는 에어버스가 어려울 때 항공기를 대량 발주, 대한항공 날개로 삼아 준 인연 덕으로 풀이되고 있죠.

그야말로 이제 글로벌 기준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경영인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한진 같은 이런 사례는 세계 유력 경영학 교과서 전반을 털어도 예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재용 시대'에 대한 글로벌 찬사도 만만찮습니다. 물산과 모직 논란에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의혹으로 새롭게 재판에 시달리는 등 암울한 전망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시대로 이어지는 긴 세월 동안 쌓은 글로벌 인맥과 경제 전반에 걸친 영향력은 그렇게 간단히 흐르도록 방치하지 않으니, 20일(현지시각) 영국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코암참으로도 부름)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 사면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면을 보냈다는 기사를 낸 것이죠.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 경제인들의 단체인 코암참이 굳이 영국 유명 매체를 통해 보도되게끔 손을 쓴 건, 한국 신문들이 문재인 정권의 눈치를 알아서 보느라 첫 보도를 주저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외국 언론들은 분석했습니다. 

어쨌든 영국 언론의 엄호와 코암참의 밀어붙이기, 거기에 미국 백악관은 계속 회의에 삼성을 부르고 있지요.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우군으로 나서달라는 압박인 동시에, 유사시엔 '이재용 구하기'를 한국 당국에 물밑 요청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G2 전쟁 와중에 반도체를 손에 쥔 핵심 인물로 부각된 JY의 오늘날 위상, 가히 1대의 고물 트럭에서 생전에 프랑스 최고 훈장을 탄 '행운아 조중훈' 정도로 성장한 게 아닐까요? 오늘날 이렇게 대기업들이 클 수 있게 뒷받침한 그 협력업체들 모두가 함께 쌓은 금자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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