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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국(小國) 잡으려는 대국(大國)이 보여준 '기품'

 

오유진 기자 | ouj@newsprime.co.kr | 2021.05.24 21:15:58
[프라임경제]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냐."

이는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어 있을 당시 방한 일정 중 하나였던 한국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서 이 같이 발언해 논란을 샀다.

이처럼 자신들을 대국이라 칭해오던 중국이지만 "소국이라 부르기에는 땅이 넓고, 대국이라기엔 속이 좁아서 '중(中)'국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건 어느 국가에든 따라붙는 농담 같은 거라 한번 듣고 웃어 넘길 안줏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더 이상 단순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일이 23일 발생했다. 

중국의 게임기업 텐센트가 100% 지분을 보유 중인 라이엇 게임즈는 최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자사가 서비스 중인 PC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글로벌 e스포츠 대회 '2021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을 개최했다. 

MSI는 매년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e스포츠 대회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대회로써, 각 지역 스프링 스플릿서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 모여 단 하나의 트로피를 두고 경쟁을 펼쳐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이로 인해 국가 대항전으로 보는 시각도 다수 존재하는 등 MSI는 글로벌 e스포츠 팬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대회 중 하나다.

이번 MSI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왕관을 빼앗긴 중국과 그 왕관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양국을 대표하는 팀 간 나아가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MSI는 한국팀 담원 기아가 2020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롤드컵서 중국팀 쑤닝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직후 열린 국제대회라 의미를 더했다.

당시 이 대회는 중국 e스포츠 팬들에게 최악의 기억 중 하나다. 자국에서 열린 만큼 관중은 중국인들로 가득 찼었지만 한국팀 우승이 확정되자 장내는 침묵만 흘렀고, 이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돼 '상하이 라이브러리(library·도서관)'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탓이다.  
 
중국에게는 '승리'가 절실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2020 롤드컵에서 자국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한국팀을 발 아래에 두고 우승을 하는 게 목표였을 것이다. 

너무나 간절했던 것이었을까. MSI 대회 운영사 라이엇 게임즈는 일정 조정이라는 악수를 뒀다. 

4강전에는 1위로 진출한 한국팀 담원 기아를 비롯해 △2위 중국팀 로열 네버 기브업(RNG) △3위 대만·홍콩·동남아시아 대표팀 PSG 탈론 △4위 유럽팀 매드 라이온스가 진출한 상태였다.

담원은 1위로 4강에 안착했기에 상대 선택권이 있었고, 매드를 택해 21일 4강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라이엇 게임즈는 돌연 22일 열릴 예정이었던 RNG 대 PSG와의 경기와 담원 대 매드 경기 일정을 서로 뒤바꿨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결승전은 23일 열릴 예정이었는데, 담원이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해도 바로 다음날 경기를 치러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간 4강 1등 진출팀이 먼저 경기를 치룬 다음 상대팀의 경기를 충분히 분석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게 '1등 팀의 특권'이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 이 같은 일정 조정은 담원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던 일방적 통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이에 라이엇 게임즈 측은 일정 조정에 대해 "RNG가 중국으로 귀국하려면 출국 전 48시간 이내에 코로나19 관련 채열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순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설득력은 크게 부족해 보였다.

결국 담원은 22일 매드로부터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쟁취한 뒤 취침 시간을 제외한 10시간여 만에 결승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하루의 휴식과 분석할 시간이 주어진 RNG와 또 다시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우승 트로피 주인을 최종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서 '집중력' 저하를 극복해내지 못한 담원은 결국 RNG에게 다소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면서 우승 타이틀을 내줬다. 

담원이 일정 그대로 경기를 했어도 RNG에게 오롯이 '실력 차이'로 졌을 수도 있다. 다만, 마땅히 공정성이 투영돼야만 하는 스포츠 정신에서만큼은 그들이 말하는 '소국'이 한국인지 중국인지는 되묻고 싶다. 

끝으로 '대국' 중국의 텐센트 자회사 라이엇 게임즈에게 묻고 싶다.

"소인(小人)이 아뢰옵기 송구스러우나, 대국의 대기업 맞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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