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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싸움꾼' 오규석 기장군수, 한전 이면합의설에 '버럭'

"산 속에서 1년 6개월 동안 싸운 내게 할 소리냐"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21.05.29 18:40:22

2011년 당시 오규석 군수와 정관 지역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장으로 진입하는 길을 막아서고 한전 측과 대치 중이다. ⓒ 기장군

[프라임경제] "이면합의서가 어디 있나, 황당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오규석 군수는 최근 떠도는 한전 측과 이면합의설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버럭 화를 내면서 펄쩍 뛰었다. 지난 5월24일 기장군의회 임시회에서 맹승자 의원이 제기한 '765kV 기장송전선로 의혹'에 대해 "일고의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잘라 말했다.

오 군수는 지난 28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2010년 8월20일부터 2012년 3월8일까지 568일 동안 단 5일만 빼고 휴일, 명절도 없이 새벽과 밤마다 정관신도시 송전탑 설치현장에 달려갔다"고 말했다. 또 "이곳에서 직원들이 가져 온 결제서류를 검토하면서, 정관 주민들과 함께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전에 맞서 몸으로 막아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민들과 포크레인 밑에 드러눕기까지 한 제가 한전과 뒤에서 짜고 이면합의서를 작성했다는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니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10년 전 일에 오 군수가 이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가 있다. 페이칭 보고서에 따르면 765kV 고압 송전선로 80m 이내에는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이 3.8배 높아지는 3mG(밀리가우스자기장 세기 단위) 전자파에 연중 노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맹 의원은 5월 임시회 군정질의에서 "한전이 잔여 철탑 5기 인허가를 신청할 경우 기장군은 적극적인 처리를 다하고, 한전은 간접강제금과 손해배상청구를 일괄 취하 하는 이면합의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고압 기장송전선로(765kV)는 신고리원자력 발전소 터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거대한 송전탑을 세워 밀양시를 지나 경남 창녕에 걸쳐 실어다 나르는 국책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한전 측이 지난 2006년 전임 최현돌 군수시절 인구 5만~10만명을 계획했던 정관신도시를 관통하는 14기 철탑노선에 동의를 얻고, 이듬해인 2007년 산자부 고시가 내려지면서 공사가 진행됐다.

이 같은 정부 결정에 정관 주민들은 극렬히 반발했고,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대응해 나섰다. 2010년 7월 기장군수 자리에 오른 오군수는 임시도로 불허 행정조치를 감행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이미 철탑이 설치 중이었다. 오 군수는 "주민동의서 없이는 절대로 길을 열어줄 수 없었다. 임시진입로에 바리게이트로 길을 차단하고, 몸으로 막으며 한전 측과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한전 측이 트럭과 중장비를 몰고 와 공사를 강행하려하자 군수인 나를 밝고 지나가라고 하며 흙바닥에 드러누운 적도 있었다"고 상황을 돌이켰다.  

당시 송전탑은 아파트 기초공사가 한창이던 신도시 외곽으로 얼마든지 우회해 설치 가능했다. 하지만 한전 측이 자재와 공사비절감 차원에서 도심을 가르는 최단 노선계획안을 동의했고 이것이 사건에 발단이 됐다. 올해로 7주기가 되는 '밀양송전탑 765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기장군청 공무원이 오 군수에게 업무 결제를 받기 위해 송전탑을 찾는 모습. ⓒ 기장군

◆'오 군수 · 기장군 각각 5억, 간접강제 1일 500만원' 판결…한전·주민대표 소송취하 합의

결국 이 일로 오군수와 기장군은 한전 측이 제기한 민·행정 소송전에서 1심과 2심 모두 패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정부가 확정고시 한 국책사업을 일개 지방관리가 고작 임도 불허 조치로 1년 반씩이나 지연시켰으니 논란이 컸다.

법원은 오군수 5억, 기장군 5억에 손해배상과 함께 간접강제 1일 500만원씩을 원고 측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즉각 진입로 허가를 안 해주면 하루 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뜻.)

당시 언론은 '법 위에 굴림 한 오규석 군수' '송전선로 버티기, 오규석 기장군수 피소' '기장군 송전선로 공사 2년만에 재개' 등으로 보도했다. 

그는 판결이 나온 뒤에도 한 달을 더 버텼다. 이후 2012년 3월9일 주민투표 개표가 무산되자, 결국 이에 승복하고 막았던 길을 열었다. 투쟁 568일 째였다.

오군수는 "그때는 법 위에 주민들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보면 간이 배밖에 나온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당시는 철탑에 목매달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고, 감옥소에 갈 각오로 싸웠다"고 회고했다. 

또 "국정원, 감사원 조사도 받았다, 한전 현장직원들이 아침에 우리집과 군청 앞으로 몰려와서 농성하고 규탄집회로 압박해왔다'는 게 오 군수의 설명.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쳐 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당시 사찰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국정원이) 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군수실에서 3시간가량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피소됐더라면 직권남용으로 단체장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던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군수는 "제게 죄가 있다면 1년 6개월 동안 주민들의 편에 서서 거대 공기업 한전에 맞선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일부 군 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저와 한전 측 간에 '이면계약서 합의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른 건 몰라도 송전탑 문제 만큼은 정쟁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고 군의회를 향해 경고했다. 

한편, 주민대표들과 한전 측은 2012년 3월11일 '정관면 미허가 잔여철탑 12기 허가 완료 후 본 합의에 따른 지역지원사업비를 지급하고 기장군(수)를 상대로 제기한 모든 소송은 취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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