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올림픽 회의 제외된 오미 회장의 반란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06.09 08:47:11
[프라임경제] 지난주 도쿄올림픽 최대 이슈는 감염증 대책 분과위원회 오미 시게루(尾身茂·72세) 회장 '모반(반란)사건'이다.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아에라(AERA)는 "어용학자로 곁에 둔 오미가 모반을 일으켜 스가 총리가 격노하고 있다"라고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 분과위원회 수장인 '오미 회장'은 그동안 총리 회견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설명을 돕는 캐릭터로 전 세계 시청자에게 친숙하다. 코로나 상황에 있어 내각에 자문과 조언하는 게 그 책무지만, 지금까진 주로 정책을 추인하고 옹호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런 오미 회장이 태도를 바꿨다. 

오미 회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팬더믹 상황에서 올림픽을 하겠다는 건 보통 있는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회를) 하는지 명확한 목적, 리스크 최소화를 패키지로 설명하지 않으면 국민은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음 날 3일에는 "올림픽은 보통 이벤트와 규모, 주목도가 다르다. 사람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경기장 안 감염 대책만을 논의해도 의미가 없다"라며 "선수보다 언론인과 스폰서 등 대회 관계자가 제대로 매뉴얼에 따라 줄 지 걱정된다는 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우려 근거를 설명했다. 

한 걸음 더 나가 4일에는 "축제 분위기에 쏠려 평소 만나지 않던 사람과 술잔을 나누거나 하면 감염자와 중증환자가 발생해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라고 경고하면서 시일 내 관계자들 생각을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다무라 후생노동대신은 이에 대해 "자주적 연구성과 발표라는 형태로 받아들이겠다"라며 "참고할 것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오미 회장 발언은 일개 대신이 단순히 참고하는 수준에 끝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올림픽 개최 여부에 스가 정권 명운이 달렸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는 측근을 향해 "(오미가) 입 닥치도록 하라. 전문가 입장을 넘어 착각하고 있다. 수상이라도 됐다는 건가"라고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코로나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라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스가 총리와 오미 회장간 공조가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대회를 목전에 둔 지금, 우호적이었던 둘 사이에 파열음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달 14일 긴급사태 연장 및 쇼핑몰 휴업 완화 문제를 두고, 대립이 노골화되면서부터다. 

결국 총리 의중을 반영해 기간은 연장하되 조치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긴 했지만, 이때부터 오미 회장은 스가 총리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독자 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실 오미 회장은 의사·연구자보단 WHO 등에서 권력 게임을 해온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전문가로 올림픽에 대한 의견은 제시할 순 있지만, 총리와의 권력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최근 일본올림픽조직위원회가 개최한 '코로나19 대책 전문가 원탁회의'에서도 그동안 코로나 대책을 주도한 오미 회장이 배제되기도 했다. 마치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과 파우치 소장 '일본판 데자뷰'를 보는 느낌이다. 

이처럼 스가 총리는 어떻게든 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전혀 물러설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얼마 전 시작한 야구나 축구 경기에서도 집단감염이 나오지 않는다"라며 "전문가 의견은 듣겠지만, 올림픽 개최는 내각에서 정한다"라고 주변을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무모하게 돌진하고 있는 스가 정권에 대해 저명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아오누마는 매체 기고문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현 상황을 2차 세계대전 중 최악 선택으로 꼽히는 임팔(Imphal) 작전'에 비유하고 있다. 기고문 중 일부를 옮겨 싣는다(의역 포함).

"이미 올림픽 개최를 결정해 놓고, 정부가 선임한 전문가 과학적 지식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건 전시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다무라 대신 발언은) 국민 1억이 불덩어리가 돼 도쿄올림픽에 돌진하자는 참모본부 결정사항을 따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대 의견을 제시한 현지 막료를 경질하면서까지 밀어붙인 임팔 작전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일본 패전을 앞당기고 말았다. 스가 총리가 올림픽에 매달리는 건 지지율을 끌어올려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그는 하시모토 조직위원장 발언(스포츠 힘으로 다시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지금 사회에 필요한 올림픽·패럴림픽 가치)에 대한 비난도 아끼지 않았다. 

"스포츠 힘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격퇴할 수 있다면 이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데에도 이런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것은 정신론만을 강조하는 '올림픽 바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토에 공격해오는 폭격기를 죽창으로 떨어뜨리자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다음 단계로 감염상황 개찬(改竄·고쳐 씀)이 염려된다. 숫자를 뜯어 고쳐 놓고 올림픽을 안전하게 개최할 수 있다고 국민을 속일지 모른다. 과거 전황이 불리한데도 좋은 상황만 골라 내보이며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발표했던 대본영처럼. 불과 몇 년 전 아베 정권은 학원용 국유지매각을 놓고, 재무성이 공문서를 맘껏 개찬한 적이 있다. 또 다시 이런 일을 저질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정권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도 일본 신규감염자가 최근 2주간 전주대비 매일 1000여명씩 계속 낮아지고 있다. 접종률이 일본보다 높고 '모범 방역국'으로 소문난 한국도 500명 안팎에서 들쑥날쑥 하는데 말이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