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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록 칼럼] 주적 잃은 한국군…아군이 적이 됐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khr6440@naver.com | 2021.06.13 09:52:32
[프라임경제] 대한민국 군이 흔들리고 있다. 작년 7월에는 서부전선 교동도에서 경계망 허술로 탈북민이 유유히 월북하고, 11월에는 첨단경계시스템이라고 자랑하던 DMZ 철책이 북한 주민에게 뚫리는가 하면 올 2월에는 동해로 수영 침투한 이른바 오리발 귀순사건이 발생했다. 

마치 남북의 비무장지대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가듯 전 전선지역에서 나타난 우리 군의 경계 실패와 총체적 부실 대응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했다. 군 기강을 확립하겠다며 철저한 조사랍시고 군조직은 오히려 피로해지고, 장비를 보강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예산만 더 투입하겠다는 스토리는 반복됐다. 

얼마 전에는 병영 내 부실급식이 문제가 되자 다시 내년 급식비를 19.5% 인상하겠다고 한다. 부족하면 마땅히 올려야 한다. 하지만 금번 부실급식 문제가 급식비가 적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부대별 급양급식 관리체계가 부실해서 그랬는지가 궁금하다. 떡 본 김에 굿한다는 속담처럼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자꾸 엉뚱한 데로 가지 말라.   

최근에는 군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참모총장이 발 빠르게 사의를 표하고 군내 검찰부의 부실 대응으로 확대돼 군 사법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정치권은 젠체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성추행이 군의 폐쇄적 악습 때문이라고 몰아부치며 이른바 적폐형 병영문화 개선 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한다. 당연히 잘못된 점은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대책들이 진중하지 못하고 쇼같이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돼야 한다. 

이참에 정치권에서 발생한 성추행은 어떤 조치와 대책을 마련했는가 묻고 싶다. 위력에 의한 권력형 성추행 방지 위원회는 왜 만들지 않고 있는가가 가칭 군내 성추행 방지 위원회와도 연계된다는 본질을 망각하지 말라. 성인지력의 문제는 정치권과 군, 여와 야, 유전 무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다. 국가 차원의 시책이지 정부나 정치권의 군에 대한 정치성 정책이 아니다. 군은 자정능력을 갖춘 조직이다. 숱한 제도개선 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정신 재정립이 훨씬 더 시급하다. 왜 기강이 해이해졌는지가 문제의 본질이다. 폐쇄적 군 문화가 아니라 군의 정치화, 다시 말해 정치군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 근원적인 문제다. 

과거 쿠데타 정치군인들은 적폐대상일지라도 당시의 군과 현재의 군 및 관련 없는 군인들은 적폐대상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 군이 폐쇄적이라고 정치 프레임화하지 말고 오히려 폐쇄적으로 만들지 말라. 그들은 과거 정치군인들의 후예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 군인들은 국가관, 주적관, 사생관, 사명감, 희생정신 등 모든 면에서 혼돈스러워 하고 있다. 경계가 뚫려도 잘 모르겠다면서 왜 너가 책임져야지 내가 책임져야 하냐고 말하면 어찌할 것인가? 계급이 낮은 군인들이 아니라 정치화된 군수뇌부 모두의 책임이다.  

헌법 5조 2항에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정치권이 그러한 여건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정치권이 현역 군인들에게 정치권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그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은 현충일이 있고 6.25남침 발발일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김정은이 작년 7월 정전협정 67주년 노병대회에서 "6.25와 같은 전쟁 방지를 위해 핵보유국의 길로 걸어왔다"면서 "당시 총이 부족해 남해를 지척에 둔 낙동강가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동지들의 한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다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며 헌신하고 있다. 부실한 급식비가 문제 되는 것도 아니고 정로군불(정치권에서 성추행하면 모르는체하고, 군에서 성추행이 발생하면 폐쇄적 집단으로 매도하며 위원회 설치하는 것)도 아니다.

경계해야 할 적도 불분명하고, 싸워야 할 적도 불확실하며, 설사 우리 땅으로 넘어오는 적을 발견하더라도 훈장보다 눈총 받는 문제의 본질을 재정립하지 않는 한 군복 입은 군인들은 빈총만 든 영혼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위선의 정치가 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비로소 정치군인들이 사라지고 군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명지대학교 북한학 초빙교수 /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미국 상대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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