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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 응옌 지압과 휘문고 A 교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6.13 18:59:26

[프라임경제] 친애하는 휘문고 A 교사 친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마음 고생 심하실 선생님의 행보에 몇 자 적습니다. 천안함에 대한 막말은 일단 잠시 접어 놓고, 당초 기껏 사과문을 써서 올려 놓더니 그걸 내렸느니 프로필 사진을 변경해 놨느니 네티즌들 논란이 되었던 기억부터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처음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사과의 진정성 여부에 대한 부정적 짐작이 들었다는 점, 자기 신변에 대한 걱정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냐는 의혹이 피어올랐다는 점 먼저 고백합니다. 다만, 2차 사과문을 올려 "사과의 뜻을 전하고자 최원일 전 함장이 계실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한 만큼, 선생님이 직업적 기준에서는 몰라도 문명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도의는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조차 "악어의 눈물" 운운하며 비판하거나, "예전에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SNS로 말하길 '파리가 싹싹 빌 때는 봐 줄 게 아니라 때려 잡아야 한다'더라"라고 인용하면서 '2차 사과의 노력' 따위 무시하고 선생님을 완전히 '사회적 추방'해야 한다는 징벌론자들도 존재합니다. 다만, 선생님은 물론 이들 강경파들에게도 뭔가 할 말이 있다 싶어서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교사가 정치적 견해를 남발하는 일에 대해 우리 사회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교사 나부랭이'와 '지엄한 교수님' 사이의 간격 때문이라고 행여야 자해성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만 보더라도, 굳이 평균적 중등 및 초등 교사들에 비해 식견이나 인품이 높은지 대단히 의문이 든다고 많은 국민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등을 두는 이유는, 제 부족한 생각으로는, 교수 혹은 교사가 상대하는 피학습자가 문제적 지식이나 의견이 전달될 때에 이를 걸러들을 능력이 되는 성인인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앞으로 그 해악을 장기간 겪게 될 미성숙한 인격체인지에 좌우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선 선생님의 이번 발언 즉, 천안함 및 세월호 관련은 정파적으로 보수에 대한 심각한 가치관 왜곡 우려가 있고, 진보에서 추앙해 마지않는 세월호는 신성시하도록 호도한 것이므로 퍽이나 잘못되었습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인생의 사표로서의 사회적 기대치를 스스로 몰각하고 가볍게 천안함 관련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주둥이를 놀린다'라든지 '짜져 있으라'든지 하는 발언을 한 점입니다. 천박한 표현도 문제겠으나, 비단 욕설을 자제해야 한다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회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다고 믿어지는 이들에게도 물론, 검증이나 의혹 제기 등은 필요합니다.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냉엄한 평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에 적에게도 못 할 막말을 우리의 부친, 삼촌 혹은 형제들에게 하도록 학생들에게 이상한 모범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교사도, 때로 자신이 녹을 먹는 집단(소속집단)이 아닌 다른 준거집단을 위한 발언을 하고 싶고, 하는 게 역사적 책무에 부합한다고 유혹받을 일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만 해도 일제 시대 교사들이 민족 의식을 은연 중에 고취시켰다든지 하는 걸 대단히 모범적인 교육자 태도로 이야기합니다.

한국만 그러한 게 아니고, 식민 지배 등 모순을 겪은 많은 나라에서 교사 같은 식자층에게 이런 위험한 역할을 요구하는 예가 적지 않았음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보낸 외인부대의 대병력을 문자 그대로 '썰어버린' 베트남의 보 응옌 지압 장군 같은 독립 투사도 한때 교사였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현재의 사회적 상황에 굴하지 말고 할 도리를 다하는 인간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전제 범위 안에서 가능한 일이고 칭송받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압 장군만 해도 교사 시절에 '프랑스인들의 멱을 따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식으로 과격한 독립론으로 제자들을 가르친 바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독립의 필요성과 불가피한 전쟁을 가르치는 일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페이스북을 스스로 돌아보기를, 논란이 됐던 가림 처리된 해당 글의 저주에 찬 평가가 지금 제자들에게 어떤 삶의 밑천이 될지 평가해 보기를 바랍니다. 사회 공동체가 마음에 들지 않든 제자들이 이를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어떤 사회에 속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저주의 언어와 인간관을 함양한 제자들은 제 짧은 식견으로는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구성원으로 살 수 없을 겁니다.

문명 제국이든 가난하고 척박한 곳이든, 자유 시민주의가 보장되는 곳이든 전제주의 사회든, 행여 논리상 모순이 많아 이제는 거의 없어진 공산주의 국가라 해도 이런 인간형이 환영받는 곳은 글쎄요, '주체사상 같은 논리가 지배하는 한반도 북쪽 특정 구역을 빼곤' 지구상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대관절 무슨 고매한 사회관과 문제 의식으로 그런 글을 쓰셨던 건지 이해가 도저히 안 가는 일이지만, 다만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물론 선생님의 형사적 처벌은 물론 교직에서의 영구적 제명 혹은 공민권 제외라고나 할 법한 각종 징계를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에게 공통된 제안입니다.

이 글이 그저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100% 저주와 조롱이 아닌 한에는 온당한 수정이나 제련을 거쳐(단순히 글의 퇴고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금 사회에 제안될 기회까지는 한 번 주어져도 어떻겠는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동화작가 권장생 선생의 이야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처절한 가난과 외로움이 그의 삶을 평생 짓눌렀고 미국식 자본주의나 분단 현실 등에 정말로 철조망 가시처럼 뾰족하게 비판적이었던 그가 동화라는 형식의 글들을 대거 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글들의 울림이 우리 자본주의 사회가 곪지 않도록 두고두고 보약이 되어주고 있는 것을 지금 선생님의 눈엔 어떻게 보입니까? 

행여 '가식적'으로 보이거나, 숨어서 어떤 대의를 지향한 '암약'으로만 보인다면 그건 좀 오해라고 생각되고 그런 시각에 일말의 변화가 올 길을 스스로 조금 걸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A 교사를 공공의 적 평가를 넘어서서 찢어죽이자고 덤비는 많은 분들에게도 조금 생각을 고쳐 보기를 요청드립니다.

한국을 공격하는 적에게 반드시 폭탄을 안고 자폭 공격을 하라는 식으로 (일명 화랑 교육) 교육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와 가족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옳은 폭력과 그른 폭력을 구분할 수 있는 것, 때로 패배나 항복이 오더라도 감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대신, 여기엔 어떤 체제가 와도 인간으로서 올바른 최소한을 지키면서 살라는 당부가 있어야겠지요(이는 수위조절의 문제인데, 글쎄요, 어렵네요. 아무튼, 인공기 나부끼는 세상이 올 위기가 목전에 왔다고 치면 '형식적으로 저항 한 번쯤' 해 보고 바로 '팡파레 불고 부화뇌동해서' 살라고 고등학생 애들한테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글 속 표현을 빌려 오자면 '짜져 있는' 삶을 가르치는 정도라면, 한국의 어느 누구도 선생님을 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교직을 떠나지 말고 한동안 혹은 평생 노력해서 언젠가 보다 많은 제자들을 위해 들어볼 만한 말, 언젠가 곱씹어 볼만한 교훈들을 던져주는 이가 되어 보시길 바랍니다. 

추신1: 제도적으로는 어려운 것으로 아는데, A 선생님이 도시의 휘황한 환경과 고교 교사 직분을 떠나서 '중국 공산당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방 차원'에서 낙도나 산간 오지 같은 곳에 가서, 더 순수하디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봉사하며 스스로도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추신2: 개인적으로는 A 교사의 두번째 사과문을 계기로 이런 편지를 기자수첩을 통해 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퇴직 신청을 하고 대기 중인 상황에서 마지막 글의 소재로 반성없는 신종 교사 A씨가 아닌, 사과와 염치의 의미를 아는 A 교사를 만나고 다룰 수 있었음은 행운이라 생각됩니다. 

독립 정신과 사회 저항 정신의 명문 사학 휘문고 위상에 조금이라도 걸맞은 행보로, 휘문이라는 밥그릇에 매인 직장인 A씨가 아닌 휘문 정신을 아는 A 교사의 용기로 그의 사과와 재사과를 보고 싶습니다. 

회사 내부적 사정이 8할이겠지만, 나머지 2할은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 최소한의 상식이나 교양에도 눈과 귀를 닫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이들이 너무도 늘어나 버린 사회에서 과연 속칭 기레기가 무슨 소리를 한들 무슨 도움이 되고 수용이 될지 하는 이제는 가야 할 때 생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A 교사의 연이은 사과처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열린 생각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길, 한국인들의 기본 성정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추신3: A 교사가 행여나 뜻한 바 있어 교직을 떠난다 해도, 균형잡힌 '사람'으로서, 적에게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도록 하는 인격을 가진 '위대한 적'으로서 또다른 모습이 있기를 축원하고자 합니다(아, 월북해서 붉은 군대 장교 되라고 자꾸 등떠미는 것이 결코 아님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오랜 전쟁에 인간성이 휘발돼 버린 월맹군과 베트콩의 야멸참이 아닌, 응 우옌 지압 장군 같은 '인물'을 언젠가 우리 사회가 A 교사를 통해 찾고, 논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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