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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부부 동성 고집하는 일본, 남녀격차지수 최하위권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06.16 09:42:37
[프라임경제] 일본은 남녀가 결혼하면 동성(同姓, 같은 성씨) 사용하는 법을 강제하고 있다. 

별성(別性)이 인정되는 국제결혼을 제외하고, 일반 국민이 법적으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성씨를 통일해야 한다. 즉 남편 혹은 부인 중 한 명이 상대방 성을 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민법에서는 '남편 또는 처의 성을 칭한다'라고 표현한다. 얼핏 공평한 듯 보이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인구 동태 조사(2017년 기준)에 따르면, 총 혼인 60만6000여건 가운데 남편이 부인 성을 택한 건 불과 4%를 약간 넘는 2만5000여건이다. 여성 95% 이상이 결혼과 동시 남편 성을 따르는 것으로, 일본이 왜 남성 중심 사회인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오늘날 G7은 물론, 문명국 중 부부 동성을 의무화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에서 서민이 성을 갖게 된 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다. 이전 에도시대 당시 전체 인구 중 무사(사무라이) 계급 4.5%만이 성을 사용했고, 대다수 서민은 원칙적으로 성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메이지 정부는 모든 국민이 성을 갖도록 의무화했다. 서양식 국가 관리를 위해선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징병 등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인 남녀가 결혼하더라도 성은 각자 것을 사용했다. 남편 사망으로 여자가 집안을 꾸리거나 상속을 위해 남편 성으로 따르는 예외가 있긴 했지만, 부부 동성 제도를 택한 건 메이지유신 30년 후인 1898년이었다. 

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선진국의 법률을 참고해 여자가 남편 성을 택하도록 민법을 뜯어고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 침공에 성공하고, 청일전쟁까지 승리하며 국력이 급속도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어쩌면 국가를 위해 큰 과업을 수행하는 남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부부 동성 법률은 120여년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이 남성 중심 사회를 지향하고,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된 측면이 강하다. 

미 군정 시절이었던 1947년, 해당 법안은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는지 '남녀 둘 중 한 명의 성이면 된다'로 개정됐다. 그때 남자들이 점령하고 있던 국회가 내놓은 새 민법은 이전 50년간 강고하게 구축된 관습을 재확인 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앞서 설명한 바처럼 대다수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성을 바꾼다. 그러나 성이 바뀌는 순간 정체성은 사라지고 인생 자체가 남자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 남녀격차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인 일본, 그들이 여성 인권을 말하려면 먼저 부부 동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0년 남녀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 156개 국가 중 120위에 랭크됐다. 

G7 중 압도적(?) 최하위일 뿐더러 같은 아시아권인 한국(102위)이나 중국(107위)보다 낮다. 전년도 대비 10단계 하락한 2019년에 비해 1단계 상승했지만 'GDP 세계 3위'치곤 너무 초라한 성적이다.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 분야에서 147위를 기록해 같은 아시아권 필리핀(33위)이나 한국(68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심지어 공산국가인 중국(118위)에조차 크게 뒤진다. 

실제 스가 내각 25명 중 여성이 2명(8%)에 불과하며, 국회의원(중의원)은 465명 중 46명으로, 채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경우 300명 중 57명(19%)이 여성의원이다. 

그동안 여성 인권 최대 장애물인 부부 동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야당 초당파 연합이 십 수차례 민법개정안을 중·참의원에 제출하고 지방의회 여러 곳에서 의견서를 내보기도 하지만, 번번이 자민당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2019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행한 7당의 당수 토론에서도 아베 총재만 "가족간 일체감을 손상한다"라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내세웠다. 중의원 과반의석을 훌쩍 뛰어넘는 자민당의 반대였기에 토론은 그걸로 끝났다. 

하지만 50% 이상 국민이 찬성하는 여론을 계속 무시할 수 없었던 자민당이 내놓은 대안은 결혼 전 구성(舊姓)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국가공무원과 대기업·특정 여권 등에 해당 방식이 활용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운전면허증이나 건강보험증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스가 총리 등장 후 자민당 일각에 '선택적 부부 별성'을 연구하고, 검토하는 모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생색내기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선별적 부부 별성' 법제화까지 앞길은 요원한 것 같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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