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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희망과 집착 사이, 묘한 신경전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6.18 15:42:58
[프라임경제] 희망과 집착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있다. 단지 마음이 가중된 따위에 경계가 나눠지는 것만은 아니다. 집착도 희망과 같은 마음이 존재하지만 그 목적이 순수하지만은 않다. 집착에는 오롯한 절망이 절실함과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착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후에는 절망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집착과는 다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희망은 절망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희망은 무조건적인 가능성을 확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은 집착처럼 절박한 모습을 띠지 않는다. 희망 안에서는 조급함이나 절박함과 같은 절망의 가지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일까. 희망의 위편에 가능성이 가닿으면 으레 사람들의 자신감은 솟구치기 마련이다. 그 자신감의 몸집이 점점 커지면 금세 고착돼 생각으로 쌓이고 만다. 다시 말해 희망이 신념을 얻으면 집착으로 변질되는 건 한 순간이다. 때문에 희망과 집착 사이에는 날마다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단지 눈길이 닿는 것들에게 작은 관심 하나 내줬을 뿐인데 마음은 금세 힘을 얻는다. 곧이어 마음이 한쪽으로 쏠려 순식간에 생각이 기울어져 버린다. 이렇게 집착은 위험하다. 삶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어서다. 그렇기에 고착된 생각의 방향대로 시간을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희망은 가뿐하다. 무겁지 않아서 쉽게 이동하기도 한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희망의 생각들은 행동에 기분 좋은 동력을 선사한다. 희망은 절망까지 포용한다. 그래서일까. 희망은 뿌리 깊은 자신감이나 괴팍한 자만심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이 집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관찰해야만 한다. 

제안의 관찰력이 부족하면 집착에 둘러싸인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희망에 찬 눈빛이 아니라 긴박한 눈빛을 발산한다. 한결같이 '이것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희망은 과연 어떤 걸까. 

희망은 그렇게 절박하거나 아슬아슬하거나 불안하거나 유일하지도 않다. 희망은 시간을 삼키지 않지만 집착은 시간을 삼키며 성장한다. 희망은 유연하지만 집착은 단단하다. 그러한 집착에 최후를 기대하니, 목표를 제외하면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없는 것만 같다. 결국 최후 순간에 내가 있고자 하는 곳에 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매 순간 집착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집착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단념이다. 곧 생각이 차단되는 것이다. 집착에서 잠시나마 멀어진다고 해서 나의 이상이 외면당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때때로 집착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이것이야말로 자신과의 도박이 아닌가.
 
모든 것을 걸어서 무엇 하나를 얻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뤄야 하는 대상들에게 삶을 내어줄 필요가 없다. 온전한 성공이라 함은 성취가 아니라 성장이다. 

집착이 성취의 편에 서서 끝내 삶을 비관하게 하는 반면, 희망은 성장의 편에 서서 스스로를 돕는다. 곧 이 둘은 자신의 삶을 구속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이다. 구속의 사전적 의미는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하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그 풀이만 보더라도 구속의 어두운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구속하자마자 삶은 고립된다. 그 안에서 성취를 이루더라도 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집착이야말로 또 다른 당위를 낳을 뿐 근시안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자신을 옭아매는 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도랑에 갇히는 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위를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이란 없다. 무조건 이뤄야 할 것도, 가져야 할 것도 없다. 자신이 만든 감옥에 본인을 집어넣고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구속된 시야와 집착의 시선으로부터 우리는 당장 벗어나야만 한다. 

그에 대한 해답으로, 절망이나 좌절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하면 어떨까. 성취하는 것이 없더라도 그게 끝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집착에서 벗어나고 절망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올곧게 살아갈 수 있다.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기권표를 던질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그래야 그 손에 다시 희망을 쥘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삶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가벼운 희망이 넘쳐나는 삶이야말로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빛을 품을 수 있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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