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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중년의 사랑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6.22 11:08:52
[프라임경제] 나이에 따라 사랑도 다르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랑은 에너지를 듬뿍 받고서 순식간에 쾌락을 분출하는가 하면, 어떤 사랑은 절망의 기운에 압도당해서 연민을 쫓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행동적 사랑은 정신적 사랑보다 늘 월등하고 희열도 견줄 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젊음을 추종한다. 젊음은 날마다 생동하고, 사랑도 그와 함께 성장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강렬한 것들은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젊은 시절을 저마다 떠올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중년의 사랑은 어떨까. 중년의 사랑은 젊은이의 사랑에 비해 조금 어려운 듯하다.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사랑 앞에 조금은 엄숙해질 정도다. 

생각해 보면 중년에는 수많은 의무가 따라 붙어서다. 중년은 사랑마저 지켜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의무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전제일 수 있다. 그렇다고 중년의 사랑을 한여름 밤의 꿈같은 환상에 빗대기도 쉽지 않다. 이 시기의 사랑은 결코 흩날리는 가벼움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년의 사랑은 계속돼야 한다. 또 사랑하기를 멈춰서도 안 된다. 그런 모습이 충분히 아름다운 나이가 바로 중년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겪어온 시간을 책임지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은 들이키는 공기만큼이나 절박하고도 또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중년이 되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기 십상이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해서 아우성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년에는 시간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진중해지고 깊어져야 하며, 정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새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중년의 시간을 살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사랑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중년의 사랑도 젊은이의 사랑만큼이나 달콤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나이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중년의 사랑은 신의(信義) 앞에서 꽁꽁 얼어붙는다. 책임과 의무라는 차갑고도 묵직한 신념 앞에서 사랑의 감정은 순식간에 압도당한다. 그렇게 중년의 사랑은 신의가 된다. 믿음과 의리가 곧 사랑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고로 중년이라면 신의가 있어야 한다.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도 또한 지금의 사랑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믿어야 하거나 믿을 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빛이 돼 스스로를 밝힐 수 있게 된다. 신의로만 뭉쳐진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도 중년의 사랑은 고귀하다. 

그러나 중년의 사랑이 눈에 띄지 않아서, 혹은 덤덤해서 사람들은 쉽게 재단하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은 그 어떤 정의로도 가벼이 가늠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행위라서 그렇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사랑에는 서로를 단단히 엮어주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그 의미가 실로 대단하다. 서로의 정신까지도 강제시키는 힘이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중년이 돼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충분히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나이 덕분이다. 때문에 중년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빛이 난다. 

특히 중년에는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 앞에서 언제든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한다. 자칫 책임, 믿음, 확실성이 결여된 사랑이 중년의 시간을 쌓아온 자신을 흩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에는 신의를 다져서 사랑을 다스리도록 하자. 믿음과 의리로 단단히 쌓아올린 사랑이 있다면 그저 지키기만 하면 된다. 중년의 사랑은 젊은 사랑보다도 결이 단단하고 향이 그윽하고 태가 확실히 정교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한 농염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랑은 품위를 더해갈 것이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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