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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조언을 얻는 것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7.06 16:08:33
[프라임경제] 조언(助言)은 과연 득(得)인가 실(失)인가. 사전적 의미의 조언이란,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줘서 도움 또는 그 말로서 도움이라는 전제가 바탕이 된다. 조언은 득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본래의 성질이 그렇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언의 힘은 달리 적용되기도 한다. 

조언이 도리어 상처가 된 적이 많지는 않았는가. 타자를 깨우치려고 도와주는 말이 타자의 마음을 깨트린 적은 없었는가. 조언은 예민하고도 날카로운 것이어서, 분별력이 없을 때 번뜩이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곤 한다. 이처럼 확실한 의사결정을 위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경험했거나 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종종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그들의 조언은 결정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이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앞서거나 높은 시야에서 바라본 한마디의 말은 넓고도 개방적인 사고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조언이야말로 사고 확장의 득이 될 뿐 아니라 말로써 상대를 도와주는 진정한 의미의 조언이라 할 수 있다.
 
조언을 건네려면 먼저 조언을 구하는 자의 상황과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의미 있는 말로써 도움을 주려는 간절함을 갖춰야 한다. 혹시라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우월이나 자만한 마음을 갖고 조언을 해서는 안 된다. 평등하게 눈을 맞춘 조언만이 듣는 자의 귀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혹여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오가는 조언은 지시나 힐난이 될 수도 있다. 평등한 위치의 조언만이 환한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된다. 그야말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나 값진 조언을 얻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조언이랍시고 흘려드는 말에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생채기를 당한 적이 있다. 아니면 어려움에 처한 나를 깎아 내리며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나의 잘못을 질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같은 조언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순식간에 폭격을 당한 마음은 쑥대밭이 돼서 곧장 어둠속으로 가라앉는다. 이것이야말로 조언의 끔찍한 폐해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습관처럼 조언을 자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말로써 남을 쉽게 도우려면, 본인 역시 말로써 스스로를 쉽게 도와서 먼저 성인이 돼야만 한다. 내뱉은 말에 일치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다시 말해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타자에게 기꺼이 조언을 건네도 된다. 

하지만 말과 달리 무책임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조언도 타자의 마음에 가닿을 수 없다. 그런 조언은 폭언이나 실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듣는 자라면 마땅히 거부권을 사용해야 한다.

참된 조언은 내 부모와 가족처럼, 내 편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은 듣는 이의 귀를 활짝 열어준다. 말보다는 마음을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언은 무거운 돌을 옮기는 작업과 같다. 힘들여 무거운 돌을 든 상태에서는 허투루 하는 말조차 아끼게 된다. 무게의 책임을 인지해 아무데나 휙 던져서도 안 된다. 무거운 돌을 옮기듯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조언도 그런 자세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참된 조언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 내가 듣고자 하는 말을 타자를 통해 듣는 순간, 가장 좋은 조언임을 확인한 적이 많지 않았던가. 그러니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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