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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중증장애인 관리 손 떼겠다는 것" 중증장애인거주시설부모 '벼랑끝 심정'

"돌봄 책임 부모에게 떠넘기는 정책…권덕철 장관 면담 요청"

추민선 기자 | cms@newsprime.co.kr | 2021.07.29 09:46:17
[프라임경제 "운이 좋아 시설에 입소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중증발달장애인들은 정신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병원에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을 수 없고, 입·퇴원을 반복해야 하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시설을 개편·폐쇄 한다고 한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탈시설 정책에 앞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나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굵은 끈으로 묶인 에어컨, 자물쇠가 달린 찬장. 발달장애아를 돌보고 있는 집안의 모습이다. 폭력성이 나타나거나 감정 통제가 안 될 경우 물건을 부수거나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가 성장할수록 가정 내 통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경제활동 등으로 부모 모두 자녀에게 집중하기 힘들고 자녀에게 필요한 '돌봄' 전문성도 떨어진다. 

중증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시설에 맡긴다. 자녀가 시설에 있는 동안 부모는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달부터는 장애인거주시설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오는 8월 정부의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이 발표될 예정이기 때문. 국회에는 국회의원 68명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약칭 탈시설지원법)'을 지난해 12월 발의해 계류 중이다.

"탈시설 정책 장애인 인권 향상" vs "현실성 없어"

장애·인권단체들은 그간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집단감염 예방 등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탈시설을 강조해왔다. 서울특별시 등 여러 지자체가 장애인 주택지원 제공, 퇴소자 정착금 지원, 활동 지원 서비스 확대, 공공일자리 지원 등 탈시설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편에선 이러한 탈시설 지원법이 경증장애인을 위한 정책일 뿐, 중증장애인·중증발달장애인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어 '현실적 대책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에서 중증발달장애아를 돌보고 있는 집안 모습.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에 앞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제공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관계자는 "현재 정부안은 경증장애인 중심의 정책으로 중증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중증발달장애인의 돌봄은 비전문 활동보조인으로 케어가 불가능하다. 결국 돌봄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정부안은 거주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예방 등에 대한 대안만을 제시하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에 대해 지역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없고, 그저 거주시설에서만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탈시설을 두렵게 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우리 아이는 중증발달장애아로 올해 8살이 됐다. 아내와는 아이가 2살이 될 때 이혼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죽이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혼자 돌보며 아내의 마음을 알게 됐다. 지난해 겨우 시설을 찾아 도움을 받고 사람답게 살고 있었는데 탈시설 소식을 듣고 좌절했다. 나는 살고 싶다."

◆"탈시설을 논하기 전, 중증발달장애인 대책 선결돼야"

정부가 제시하는 자립지원 로드맵에는 장애인들에게 거주 아파트와 활동 보조인(주거 코디네이터) 4명이다. 시설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달리 활동 보조인 4명이 돌아가면서 돌봄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관계자는 "경증장애인들의 경우 정부의 아파트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로의 참여가 가능하다. 또, 일반인의 돌봄 수준으로도 생활의 문제가 없다"면서 "그러나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일반인으로 돌봄이 되지 않고, 지역사회 참여 역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26일 폭염속에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 100여명이 세종시에 소재한 보건복지부 앞에 모여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장애인 탈시설' 이행을 반대하고 나섰다. ©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


탈시설을 논하기 전,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자립지원주택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고, 만약 입주하더라도 주변에서 제기하는 민원으로 계속 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중증발달장애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시설을 다 없앤 후에 자립지원주택에서 살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며 "탈시설 정책은 국가가 중증장애인 관리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논하기 이전에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야만적인 사회인가를 직시해 주길 바란다.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이 선행돼야 한다. 특수학교 하나 만드는 것도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하는 사회에서 지역사회로의 통합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는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하고 있다.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그 부모와 형제까지도 무한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사후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는 헌법정신에 부합되는 정당한 요구다."

◆"다양한 선택권 보장" 복지부에 10가지 요구안 전달

이들은 탈시설 정책 철회와 함께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한다. 

현재 노인요양원은 전국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용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크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점점 줄이고 폐쇄하는 쪽으로 진행해 시설마다 대기자가 백여명 안팎에 이르고 있다. 

"정부에 묻고 싶다.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보고 치매어르신들도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가."

한편, 지난 23일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는 보건복지부에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주요 10가지 요구안을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신규시설 설치 금지 및 신규 입소 제한 반대 △무조건적인 거주시설 단위의 지역사회 전환 반대 △거주시설은 무연고 장애인 중심으로 주거서비스를 제공 반대 △인권 침해 시설 '원스트라이크 아웃' 반대 △연차별 탈시설 목표인원 산정 및 목표 이행 반대 △중증발달장애인(고령 포함)에 대한 대책 없는 로드맵 반대 △지역사회생활에서의 인권침해 예방 및 권리보호체계가 없는 로드맵 반대 △자립생활지원센터와의 연계 방안 반대 △현행 시설의 정원 축소 철회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전환 계획에 따른 우려 및 분노 가중 등이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관계자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용자부모대표단과의 면담을 요구한다"며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단, 재검토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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