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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네버랜드] 차별없는 사회를 향한 도전과 가치추구의 즐거움

레고 마이시티 스케이트공원, 도시 중심가, 우리집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1.08.06 17:46:26
[프라임경제]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전과 달리 '추억'에 기반한 제품 위주의 시장에서 '놀이'가 포함된 제품으로의 확대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SNS와 유튜브 등 스피커의 다양성과 보편성이 이끌어 낸 키덜트 시장의 확대를 따라가기 위해 마련한 코너 '방구석 네버랜드'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진심인 어른의 시각으로 장난감의 가치를 평가해 본다.

이번에는 레고가 창조한 요소를 기반으로 놀이가 사회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는 현장을 조명하려 한다. 고작 브릭으로 무슨 철학과 현실을 논하겠냐만은,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꿀만한 동기를 제공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다른 제품과 달리 제작과정에 대한 충실한 설명보다는 각 피규어와 구조물을 톺아보고, 시티 시리즈의 특징인 '사회와 조화'에 집중한 연출을 통해 제품의 의미를 소개해 본다.

무엇보다 '다인종 다국가의 향연'인 올림픽의 폐막과 '도전의 가치가 성취보다 큰' 페럴림픽을 앞둔 시점에 우리는 나와 남의 다름을 이해하고 결과에 앞서 노력과 도전을 인정할 용기를 갖췄는가? 답을 내리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기위한 고민을 시작해보자.

레고 시티 '도시 중심가(60292)', '우리집(60291)'. = 강경식 기자


레고시티는 다른 시리즈와 달리 조립에 대한 즐거움보다 조립 후 역할놀이를 수행하는 목적에 더욱 충실한 제품이다. 때문에 레고시티는 사회와 공공이라는 '가치'에 주목한 제품이 대다수다. 

다만 어른이들이 역할놀이를 하는 모습은 남사스럽다는 우리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 수 있다. 본의 아니게 목격될 경우 그간 쌓아올린 이미지에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철저한 사주경계는 필수.

시티 시리즈는 보통 우리 사회에서  희생과 헌신에 근간하는 직업들과 이들이 사용하는 '장비', '공간' 등의 요소를 동시에 제공해 아이들이 관심갖고, 역할놀이를 통해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 가운데서도 올해 출시된 레고 마이시티 '스케이트 공원(60290)'과 '도시 중심가(60292)'는 특별하다. 슈퍼히어로나 악당이 아닌 우리 주변의 다양성을 중심에 둔 제품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후술할 피규어들은 역할놀이의 주인공으로 사용돼 자연스러운 사회를 구성해볼 수 있다.

잠시 시선을 돌려보면, 2020 도쿄올림픽에는 서핑과 BMX,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추가됐다. 아직 낯설지만 북미와 유럽에선 일상화된 레저의 일종으로 국내에서도 확산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 중심에 2016 리오 패럴림픽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익스트림 휠체어 스포츠 대부 아론 휠즈 포터링험(Aaron Wheelz Fotheringham)이 있다. 아론은 특수제작 휠체어를 이용한 스턴트 스포츠 WCMX(Wheelchair Motocross)을 창시하고 보급하는 개척자다.

휠즈 포터링험(Aaron Wheelz Fotheringham). ⓒNitro Circus


이번에 다루는 '스케이트 공원' 제품 또한 WCMX와 BMX(Bicycle Motocross),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피규어를 동시에 포함시켰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모든 경사면에서 WCMX 휠체어의 구동이 가능하도록 제작한 부분이다.

휠체어를 사용한 역할놀이 과정에서 스케이트보드와 BMX와 마찬가지로 쿼터파이프와 시소 등 경사면에 피규어를 마음것 굴리고 놀 수 있도록 제작해 '노는 과정'에서 차별적 요소를 삭제했다. 아이와 함께 조립을 하는 과정에 아론을 소개하고 그의 퍼포먼스를 재현하는건 추천할만한 놀이다. 

레고 시티 '스케이트 공원(60290)', 아론과 같이 휠체어 스턴트를 즐기는 피규어가 포함됐다. = 강경식 기자


함께 조립한 '도시중심가'의 경우도 레고가 추구하는 다양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여준다. 해당 세트에 등장하는 피규어로 경험해 볼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범죄자와 경찰, 요리사와 청소부 등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을 보여주지만 다른 요소들과 더해 직업 자체의 가치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의 가치를 드러낸다.

또한 장애와 보호해야 할 대상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스케이트 공원에서 휠체어를 탄 피규어가 한손으로 쿼터파이프에서 프리즈를 보여주는 모습이 동등한 경쟁과 극복을 이야기한다면, 도시중심가에서 연출된 장애인과 아동은 불편함이 도시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시중심가에 포함된 피규어 가운데 직업이 정해진 피규어는 소방관과 청소부, 그리고 경찰과 요리사다. 그 중 청소부에 대한 이야기는 해당 세트의 핵심 스토리로 직업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유도한다. 

당연하게도 중심가는 매우 깨끗하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청소부 미니 피규어의 표정 때문이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렸다가는 혼쭐이 날듯 '쎈' 표정이다.

셜리 키퍼는 중장비와 운전에 능숙한 전문직 여성으로 표현됐다. = 강경식 기자


조립을 해 보면 공감하겠지만 청소부는 청소차를 운전하고 크레인 장비를 조종하는 전문가다. 사실 이 청소부는 '레고시티 TV' 세계관에서 '셜리 키퍼'라는 이름의 '깐깐한' 캐릭터로, 청소트럭을 몰고다니며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대부분 알고 있는 중요 인물이다. 종종 그는 사립 탐정이 되기도 하고 악당의 정체를 밝히는 히로인이 되는 등 에피소드마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한다.

셜리 키퍼는 이미 레고시티 TV를 통해 청소라는 '일'의 사회적 가치를 반복해서 보여줬다. 도시가 쾌적하기 위해 궂은일을 해내는 모습과 깨끗한 환경에 행복해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직업'이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나아가 희생정신이 담긴 직업의 함의를 존중하며 감사를 표하는 대화들은 셜리 키퍼의 사회적 역할을 자연스러운 서사로 풀어낸다. 그리고 가끔 표정에 어울리는 쎈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함께 동봉된 피자집 요리사는 가끔씩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가치관에 대한 의미부여 대신 레고시티TV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의 하나가 피자라는 정보를 전한다. 피자 요리사는 날씨가 좋은 날, 식당 옥상에서 기른 꽃을 손님과 행인에게 선물한다. 세트에 포함된 피자박스 브릭이 많은걸 보니 이집, 맛집인 듯 하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했지만 배달을 하지 않고도 버티는 것을 봐서는 분명한 진실이다.

직업이 아니라 어느정도 정해진 행동을 요구받는 피규어도 소개해본다. 우선 피자집 이층의 검도 도장부터 들러보자. 헬멧을 쓴 피규어 두개가 빨간색 매트에 마주보며 목검을 들고있는 모습이다. 재미있는건 이들의 헬멧을 벗겨야 나타나는 부분이다. 각각의 양갈래 머리와 회색 올백머리는 연령과 성별을 표현하지만, 누가 더 검도의 고수일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메디슨 예'라는 이름의 양갈래 소녀는 어른의 시각에선 사고뭉치다. 하지만 용감하고 씩씩하며 무모한 도전을 성공하기도 하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히 아버지의 상관이자 시티의 시장인 플렉에게 서로 존중과 존경을 교환하는 모습은 어른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곤 한다. 연령과 성별이 사회에서 역할을 나누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걸 설명해준다.

사실 이 제품을 다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피규어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그리고 아기띠를 맨 여성이다. 레고는 해당세트를 포함한 시티 세트에 고의로 횡단보도를 포함하고는 한다. 때문에 안내견 뒤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각장애인은 의도된 연출이다. 도로를 추가하고 신호등을 설치해 레고의 의도를 따라가봤다. 

횡단보도와 방지턱, 그리고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 강경식 기자


만들어낸 연출이지만 친근함은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레고를 통해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역할을 간접경함하는 과정을 경험한 아이들은 우리사회가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의 대외 활동을 더욱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2016년 이후 장애인 피규어 출시를 이어온 레고는 2019년 이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브릭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브릭의 스터드를 이용해 점자를 표현하지만 비 시각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브릭 하단에 알파벳과 숫자 등 점자의 의미를 각인해뒀다. 다양성에 대한 기업의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로 근시일내 국내 출시도 이뤄지길 바래본다.

나아가 아기띠를 맨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이 아닌 사회가 제공하는 환경을 보여주는 요소다. 해당 피규어는 나무와 어린이용 놀이기구가 설치된 작은 공원에 배치하도록 설계됐다. 즉, 아기가 건강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보호자의 '보호'를 받는게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조립을 마치고 유난히 아기 피규어의 만족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시티 세트들은 친환경 요소에 대한 의미도 크게 부여하고 있다. 도시 중심가는 세트 전반에 걸쳐 친환경 아이템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름은 '도시 중심가'지만 환경에 대한 요소가 빼곡히 들어갔다. 식당 옥상의 화초와 공원의 나무, 그리고 분리수거함과 전기차 충전기는 세트 전체 환경 요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친환경 요소로 채워진 레고시티 우리집(60291). = 강경식 기자


환경친화적 장치들에 대한 친밀감은 '우리집(60291)' 세트에서 보다 강조된다. 이 집은 옥상의 태양열 패널을 통해 발생한 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한다. 집 벽면에는 꽃이 핀 넝쿨식물의 벽돌과 조화를 이루며 갖은 화초와 잔디가 깔린 작은 화단은 반려견의 화장실이자 놀이터가 되어준다.

또한 앞서 각 세트의 피규어가 차별적 요소에 엄격한 레고의 입장을 확인했다면 우리집 세트의 피규어들은 보다 삶 자체의 가치에 주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 피규어를 먼저 소개하자면, 역대 피규어 가운데 가장 밝은 웃음을 지닌 보라색 홈웨어를 입은 성인 여성 피규어와 구레나룻에서 이어진 턱수염이 근사한 성인 남성 피규어, 그리고 빨간 비니모자를 쓴 젊은 여성 피규어와 닌자고 셔츠를 입은 남성아동 피규어 등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정의 구성으로 보인다.

여기에 레고는 언제라도 장난칠것같은 표정의 강아지 피규어를 추가했다. 심지어 배변의 흔적마저 브릭으로 승화시켰다. 집에 사는 '우리'의 대상에 반려견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 가족이 추구하는 삶의 질에 반려견의 견생(?)도 포함되도록 환경을 구성한 것.

사실 이런 요소들이 레고시티의 가장 커다란 장점이다. 역할놀이 과정에 행동방향을 먼저 정하지 않고 구성하는 환경과 환경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구분해 상상속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특히 레고시티TV를 시청한다면, 역할놀이의 상황을 재현하고 변수를 직접 만들어가며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세트의 백미는 각종 소품들이다. 등장하는 소품만 20개가 넘는다. 장난감 칼, 액자, 기타, TV와 게임기, 하키스틱과 롤러스케이트, 헬멧 등 취미생활을 위한 도구들과 변기와 샤워기, 가스버너와 오븐 같은 생활을 위한 아기자기한 소품은 놀이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유난히 길어진 이번회의 방점은 조립 과정에 대한 소회로 찍는다. 레고시티의 장점이자 단점인 쉬운 조립은 브릭의 양에 비해 빠른 조립시간을 보장한다. 레고에 익숙하다면, 도로를 추가해 도시의 형태를 바꿔보는 즐거움이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도시 한복판에 차고와 정원이 딸린 우리집을 세워보는건 기분좋은 경험이다. 전용 자동 세차장을 갖춘 전원 마을도 괜찮다. 어떤 상상이든 다양한 간접 경험을 통해 나만의 도시를 꾸며볼 수 있었다.

레고의 상업적 가치를 인정하며 확보할 수 있는 즐거움은 다양한 미니피규어다. 레고시티에 등장하는 캐릭터 뿐 아니라 안경쓴 아동과 같이 좀처럼 보기 힘든 피규어가 동봉돼 즐거움은 배가됐다.

오랜만에 해본 역할놀이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불현듯 찾아온 손님에 의해 '남사스럽다'는 표현의 진정성을 깨닫게 됐다. 고백하자면 피자도둑 시나리오를 구현하는 사이 누가 찾아왔는데 미처 손에든 피규어를 내려놓지 못했다. 

피자도둑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 강경식 기자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존중은 규칙과 관습을 없에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크레파스의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도록 기술표준원에 권고한지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최근의 MBC의 올림픽 개막식 보도나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보면 주류 미디어가 다양성에 대해 소비하는 행태를 볼 수 있었다. '타 인종과 국가를 깎아 내리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우수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시각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이들 미디어를 통해 후원을 받겠다며 장애와 빈곤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고도 여전하다. 스쳐 지나가는 시청자에게 불쌍함과 안타까움을 자극하려는 목적이겠지만 후원과 별도로 그들이 앞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조치는 확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얼마전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접수됐다. 학교설립을 반대했던 일부가 낸 가처분 신청이다. 

알려진바와 같이 2017년 이미 짓기로 예정됐던 특수학교 설립 대신 한방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이야기에 장애아들의 부모들은 '욕을 하면 듣겠다, 때리셔도 맞겠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수 없다'며 무릎을 꿇어야 했다. 특수학교가 '혐오시설'이라며 '집값 하락'이 일어난다는 주장과 맞선 것이다. 

기사를 마무리하며 서진학교를 막아섰던 이들에게 아론의 도전과 레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범위는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스스로 우리의 범위를 넓히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휠체어를 타고 쿼터파이프 상단에서 프리즈를 해내는 도전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가처분 신청의 배경이 명예훼손이라니, 무릎을 꿇어 학교를 세운 부모들의 명예를 더욱 치켜세워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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