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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네버랜드] 자존심이 걸린 승부의 세계

초이카, 미니카와 확연히 다른 '재미'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1.08.13 14:58:44
[프라임경제]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전과 달리 '추억'에 기반한 제품 위주의 시장에서 '놀이'가 포함된 제품으로의 확대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SNS와 유튜브 등 스피커의 다양성과 보편성이 이끌어 낸 키덜트 시장의 확대를 따라가기 위해 마련한 코너 '방구석 네버랜드'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진심인 어른의 시각으로 장난감의 가치를 평가해 본다.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승부의 현장이있었다. 은색 모터와 두꺼운 섀시는 하수를, 블랙모터와 베터리를 고정한 얇은 머리끈은 그가 고수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차체보다 높게 올라간 형광색 링의 개수는 내공의 깊이를 의미했다. 

잠들기 전, 내일의 승부를 위해 충전기는 항상 콘센트에 꽃혀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1994년 '문방구'앞 박스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트랙 앞에서 남자의 자존심을 건 비장한 승부는 결국 몰래 '엄마'의 주머니에 손을 넣게 만들었다. 하지만 종아리의 선명한 멍자국이 다시 강호로 나서는 무사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가까운 해답은 "푸른신호다!"로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달려라 부메랑'이 당시 최고 인기만화였다는 것. 주인공 강차돌이 위기의 순간이면 헤어밴드에서 깃털을 뽑아 달리는 부메랑에 꽂는 것으로 추월에 성공하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는 아직 분명하게 남아있다. 

이후에도 미니카를 소재로 했던 만화가 연달아 흥행하며 문방구앞 트랙에서 벌어지던 결투는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최종병기 '하이퍼 스톤봄 스피드+'. 타이어 선택의 실수는 뼈아픈 후회로 남아있다. = 강경식 기자


27년의 시간이 지나 이번엔 초이카를 손에 쥐었다. 선택한 제품은 '4륜구동 썬더스톰본'. 조립을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비슷한 증상을 이야기하는 사례를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안도했다. 

사전에 초이카는 초이락컨텐츠컴퍼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바이트 초이카'를 통해 다시 선풍적 인기를 끄는 미니카의 일종으로 판단했다. 물론 오해라는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외관의 차이는 차체 하부 중심의 홈이다. 이 홈이 트랙의 가이드 레일을 물고 주행하는 방식이다. 레일의 마찰이 속도를 낮추기 때문에 롤러를 통해 저항을 줄이는게 중요하다. 트랙의 벽을 타고 도는 미니카의 롤러와 비슷한 역할이다. 초이락컨텐츠컴퍼니는 이 롤러를 '바이트 롤'이라고 부른다. 코너링 성능을 가늠하는 핵심파츠다.

독특한 주행 방식 때문에 외관에 롤러가 보이지 않아 차체의 모습이 강조된다. 실제로 주행을 해보니 차체를 트랙안에 감추는 미니카보다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크래쉬 트랙 중앙의 가이드 레일이 초이카 주행의 핵심이다. = 강경식 기자


미니카와의 차이를 더욱 크게 벌리는 부분은 새로운 놀이의 방법이다. 초이락컨텐츠컴퍼니는 '바이트 초이카'를 통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만화속 놀이방법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제품들을 내놓았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트랙은 '크래싱 트랙'이다. 타원형 트랙의 양쪽 중심에서 동시에 출발해 추돌하는 쪽이 승자다. 규칙은 동시에 출발하는 것 외에 없다. 허탈할정도로 단순하지만 모터와 타이어, 바이트 롤의 성능에 따라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또한 원하는대로 서킷을 꾸며볼 수 있는 '라인트랙'도 있다. 라인트랙을 사용하는 레이스의 룰은 선착순이다. 때문에 동일한 길이의 라인트랙을 초이카 성능에 맞게 펼쳐놓는게 중요하다. 단 직선으로 놓는 것은 금지. 또한 지면의 상태에 맞는 타이어와 바이트롤 필요하며 구동방식도 승부를 가늠하는 변수로 작용한다.

초이카와 트랙을 조립만 하면 끝일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게도 오답이었다. 기본 제공된 바이트롤의 저항이 심해 원하는 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강호에 나서기엔 부족한 실력을 체감했다.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 초이카와 트랙을 들고다니기 위한 전용차고가 필요했다. = 강경식 기자


수련을 통해 단전 깊숙히 감춰뒀던 미니카 내공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안정된 코너링과 가속력을 확보하기 위해 튜닝파츠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고, 배우고 깨우친 것들은 주행성능을 눈에 띄게 높여줬다. 

그럼에도 유튜버들이 만든 영상속 초이카와 크래싱트랙 완주 시간을 비교해보니 조금의 모자람이 보였다. 4륜구동인 썬더스톤봄으로 크래싱 트랙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기엔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썬더스톤봄을 라인트랙에 적합하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낮은 기어비와 넓은 타이어, 사이즈가 좀 더 작은 바이트롤을 선택했다. 유효한 선택이었다. 내공이 좀 쌓이는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적용한 튜닝 내역을 기록해봤다.

그리고 크래싱트랙에 적합해 보이는 새로운 초이카를 찾아봤다. 애니메이션 바이트초이카에서 주인공 차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전륜구동 블랙하울링을 선택했다. 사실 초반 악역으로 등장한 '천흑호'의 블랙하울링은 크래싱트랙에서 '도장깨기'를 하고 다닐정도로 뛰어난 초이카다.

직선구간에서의 가속보다 안정적 코너링이 눈에 띄는 블랙하울링에게 빠른 모터를 주자 금상첨화를 이뤘다. 기어 또한 높은 등급으로 바꿔줬고 고속주행에 적합한 타이어를 장착했다. 완주시간이 대폭 줄어들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강호에 나설 차례다. 든든하게 튜닝을 마친 블랙하울링과 도장깨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강호에 나서기 위해 적합한 모델이 하나 더 필요했다. 전국의 고수가 모이는 '손오공' 본사 트랙은 크래싱 트랙을 길게 이어 완주 기록으로 경쟁하기에 주행안정성과 가속력 모두 확보돼야했다.

후륜구동과 전륜의 상하좌우 움직을 갖춘 '하이퍼 스톤봄 스피드+' 모델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해당 모델은 다양한 노면을 사용하는 라인트랙에서 빠른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고성능 모터와 얇고 스터드가 선명한 타이어는 설정상 앞선 초이카의 단점을 모두 극복한 세계 최고 수준의 초이카다.

드디어 강호에 나설 차례. '웽~'하는 모터소리로 서로의 수준을 가늠하는 전쟁터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9일 오전 초이카를 들고 손오공 본사를 찾았다. 이곳에선 2회 프레임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한 고수들의 기록은 12초 대에 분포됐다. 12초 정도면 강호에 이름을 내 걸 수준이라는 의미다.

경기도 부천시 손오공 본사 사옥에 마련된 대형 트랙. = 강경식 기자


12초 이내에 골라인을 통과한다면 기록지에 빼곡한 'OO아빠'들 사이에 '호피아빠'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심박수는 치솟기 시작했다. 가문의 영광이 저 앞에 아른거린다. 정문을 통과하자 정면에 거대한 규모의 트랙이 나타났다.

이른시간이었지만 이미 몇명의 강호인들이 서로의 초식을 뽐내고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현장에서 아빠와 아들이 초이카를 들고 기록경쟁을 한다는 것. 노련한 아빠는 트랙에 초이카 굴리기를 포기하면서 건전지를 아끼는 것으로 아들과 승부에 우위를 가졌다.

온갖 장난감으로 가득찬 손오공 본사이지만,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대형 트랙에서 기록을 재기 위해 찾아왔다. 기록을 기준으로 시상하는 대회의 참가자들은 저마다 자기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기를 기대했다. 왜 미니카에 빠졌었는지 깨달았다. 그때도 재미있었고, 지금의 초이카도 재미있었다.

초이카를 바꿔가며 도전한 결과는 참담하기에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다. 가장 속도가 떨어지는 구간에 적합한 바이트롤을 사용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타이어의 선택도 실패였다. 

잘못된 타이어 선택이 훌륭한 바디와 엔진의 능력을 선보이지 못하게 만든 사례. 이날 최악의 기록으로 기록될 뻔 했다. = 강경식 기자


부족한 경험을 메우려면 실전이 필요하다. 강호의 벽은 높았고 고수들은 어딜가나 있기 마련이다. 이날의 쓰라린 패배는 트랙이 옮겨지는 장소에서 회복할 계획이다. 

은둔고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무려 6초대 기록을 보이고 홀연히 사라지는 아저씨들에 대한 목격담이다. 전설속 사대천왕과 같은 이들이 목표는 아니지만, 강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계획은 현재 진행중이다.

이렇게 미니카와 완전하게 다른 트랙을 통해 차이를 만든 초이락컨텐츠컴퍼니의 전략은 매우 훌륭했다. 라인트랙을 펼치는 곳이 바로 서킷이다. 문방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짜릿한 승부는 벌어지며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은 무한한 변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빠들이 공부하도록 만들었고, '샤이바이터(?)'들을 대회가 벌어지는 대형 트랙을 찾아 나서게 이끌었다.

또 당연하게도 어린시절 미니카를 들고 문방구를 찾던 먼지냄새 가득한 향수가 찾아왔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튜닝이 가능한 모든 부위의 파츠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현장을 방문하고 쓰라린 패배를 입었지만 마음 속 깊이 초이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순간이다.

그렇다보니 아빠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초이카에 대한 환호가 주류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레트로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 까닭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향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열정과 공감대가 드러난다. 현장은 '재미'로 가득찼다. 아저씨의 우월함은 경쟁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 쓰라린 패배 후 찾아온 감정도 아쉬움이지 자괴감은 아니다.

'놀라움을 수반한 즐거움'을 경험했다. 즐기는 입장에선 이미 레저의 형태로 소비하고 있었다. 커뮤니티 곳곳에서 다음 트랙이 설치되는 장소에서 보자는 인사는 'OO아빠'들의 정모 일정과 다름없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즐기는 취미로 자리잡은 것.

때문에 제품의 품질도 계속 향상됐다. 아빠들은 부품의 완성도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내놓는다. 자존심이 걸린 기록향상을 위한 연구도 반복됐다. 

커뮤니티 내 연구실장과 연구원들로 자칭하는 이들이 직업의 전문성을 차용한 분석은 진지함이 흘러넘친다. 손에 묻은 구리스 냄새를 풍기며 반 갑자를 쌓은 미니카 내공들이 초이카를 통해 펼쳐지고 있다.

보편적인 트랙에서 최상의 성능을 만들어보는 폐관수련을 시작할 계획이다. = 강경식 기자


경험을 해보니 이미 초이카는 미니카의 영역과 분리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또한 비슷한 외관의 미니카의 추억을 팔아 어른들의 놀이로 확장하는 시도로 풀이하기에는 새로운 시스템의 진입장벽이 꽤 높았다. 그저 잘 달리는걸로 끝낼수는 없지 않은가.

당분간 집안에 모터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질 것 같다. 폐관수련 이후에는 근처 대형 쇼핑센터에 초이카 레이스 트랙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도 확보했다. 여름 끝자락이 나쁘지 않을 전망이다. 초이카는 추억에 대한 향수보다 새로운 놀거리로 느껴졌다. 소장가치 이상의 재미를 가져다 준 초이카를 방구석 한 켠에 올려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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