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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고통의 역치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10.27 09:39:37
[프라임경제] 고통이라는 단어는 서술어 겪다와 풀이를 같이 한다. 또 고통을 겪는 것은 통증을 수반하고 있다는 뜻이다.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간에 고통스런 순간에는 반드시 끝을 바란다. 그래서 고통은 겪는 것보다 겪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겪는 고통도 직접적으로 겪는 고통과 맥락을 같이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자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고통은 갑절이 된다. 

그렇다면 고통은 공감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공감도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탁월하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타인의 고통을 가늠할 수 없다. 고통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공감한다고 해서 완전한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라서 타자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럴 것이 직접 고통을 겪고서야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난과 상실 그리고 좌절 등이 그것이다. 한 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거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와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의 심정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무릇 타자의 처지가 안타까워 마음이 절절해지는 순간을 고통쯤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흔히 포용을 앞세워 동정과 위로를 건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공감이야말로 가장 유해한 행동이다. 고통은 절감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흡수시키는 것이라서 그렇다. 고통이란 그런 것이다. 절실히 느끼고 받아들이고 나서야 잠잠해지는 법, 그게 바로 고통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무너져 본 적 없으면서 무너지는 자의 고통을 함부로 헤아려서는 안 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행위로 타인의 아픔을 다루는 건 조금 비열한 일일 수도 있다. 

미국의 소설가 수전 손택(1933~2004)은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결국 고통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개인의 인내와 상쇄작용을 일으키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한 고통에는 저마다의 역치가 존재한다. 얼마만큼 인내할 수 있는지는 개개인의 한계에 따라 달라진다. 자칫 고통을 자신의 입을 통해 연발하는 사람은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고통스러울 때는 입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견디느라 온 힘을 쏟기에 가볍게 입을 놀릴 새가 없다. 그럴 것이 아주 작은 시련의 고통으로도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거대한 사건에 삶이 흔들릴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고통은 저마다의 역치에 따라 다르므로 타인의 고통을 쉽게 재단해서도 가늠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안다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결코 이해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이것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겸손한 방법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자감(自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어차피 고통은 스스로 견디지 못하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연민으로도 결국 완전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내를 기르는 것, 고통과 나란히 동행할 줄 아는 힘을 길러내야 한다. 그때에는 비관을 멀리하며, 남과의 비교도 가볍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대부분의 고통은 성장을 동반한다. 모든 고통이 성장을 도모하는 건 아니지만, 발전이야말로 고통 없이 이뤄진 적이 없다. 고통 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자칫 도태를 야기하는 달콤한 함정이었던 적이 많지 않았던가. 고통이 성장을 동반한다는 긍정적인 자각만으로도 얼마든지 고통을 버텨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제 안에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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