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공익 가면' 쓴 산업스파이 논란, 당초 목적은 中으로 이직?

거액 포상금 지급도 사전에 파악…회사 영업기밀 자료 유출·중국어 번역 흔적 발견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1.12.02 15:38:46
[프라임경제] 공익 제보는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익 제보는 건강한 사회와 기업을 만드는데 꼭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 큰 용기를 낸 공익 제보자는 존경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제보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의롭지 않은 정황들이 있었다면, 그 의도는 당연히 의심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익 제보를 통해 2400만달러(약 284억원)의 포상금을 받게 된 김광호 씨가 논란에 휩싸였다. 김 씨의 제보 전 행적이 처음부터 순수한 의미의 공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지난 2016년 당시 현대차 품질본부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김 씨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하 NHTSA)과 한국 정부에 자신이 20여 년간 일하던 회사의 엔진결함을 공익 제보했다. 

NHTSA는 이를 토대로 세타2 GDi 엔진에 대한 리콜 적정성 조사를 진행했고, 지난해 11월 현대차·기아에 과징금 8100만달러를 부과했다. 또 현대차·기아는 NHTSA와 안전성능 측정 강화와 품질데이터 분석시스템 개발 등을 위해 5600만달러를 투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관계법령상 100만달러 이상의 과징금으로 귀결되는 정보를 제공한 내부고발자에게는 과징금의 최대 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그 결과 김 씨는 해당 법령에 따라 과징금 8100만달러 중 지급 가능한 최대 비율인 30%를 적용 받게 됐다.

ⓒ 연합뉴스


문제는 김 씨의 제보 전 행적들이 △공익 제보와 관련 없는 자료 유출 △품질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에서 영업기밀 자료 유출 △지속된 보상 언급 등 공익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에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에서 자동차명장으로 불리는 박병일 씨는 김 씨가 회사 기밀자료를 모은 이유가 산업스파이였던 전 직장상사와 모의해 중국으로 이직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김 씨보다 먼저 현대차의 결함을 밝혀낸 사람이자, 김 씨가 미국에 제보하기 전 논의를 한 사람이다. 또 박 씨는 2016년에 김 씨와 제보 의도를 둘러싼 진실공방도 펼친 바 있다.
 
박 씨는 2016년에 오토헤럴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해(2015년) 10월 초 김 씨를 만났을 때 자신이 모시는 장 상무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던 중 공항에서 구속됐다는 말을 전했다"며 "김 씨는 자신도 장 상무를 따라 중국으로 회사를 옮기려고 했는데 구속이 되면서 곤란하게 됐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김 씨가 변호사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장 상무 면회를 다녀왔다고 했다"고 첨언했다.

특히 그는 "김 씨가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었다고 말한 정황과 장 상무 구속 시점, 검찰 수사결과, 그가 현대차 품질본부에서 2015년 2월부터 장 씨가 구속되기 직전인 2015년 9월까지 근무하면서 회사 기밀자료를 모은 이유가 궁금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김 씨의 행동이 순수한 의미의 공익 제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일갈했다.

ⓒ 기아


박 씨 주장의 스모킹 건은 장 상무다. 장 상무는 현대차를 퇴사하면서 차량 쏠림 방지기술과 수동변속기 변속감 개선기술, 품질개선 자료 등 관련 자료를 무단으로 빼돌려 중국으로 이직한 산업스파이다. 

장 씨는 2015년 10월 업무상배임 및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누설 등)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1심에서 유죄판결, 2017년 항소심에서 유죄 확정을 받았다. 또 함께 모의한 직원들도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장 씨가 중국 자동차 회사 2곳으로 차례로 이직하면서 현대차에 재직 중인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이용해 빼돌린 자료는 회사 내부적으로 2급 비밀로 지정된 변속기 관련 자료를 포함 200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장 씨와 공모한 전직 간부 3명도 퇴사 후 중국 회사 고위직으로 이직했고, 현대차와 유사하게 조직을 구성해 최대한 효과를 달성하고자 추가로 현대차 부장급 출신 2~3명도 영입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김 씨의 공익 제보가 더 의롭지 않아 보이는 데는 그의 일련의 행보들 역시 산업스파이로 적발된 전 직원들이 중국으로 이직하기 전 회사자료들을 모아 회사 밖으로 유출했던 행동들과 다를 바 없어서다.

현대차에 따르면 김 씨는 공익 제보 이후에도 현대차에서 빼낸 기밀자료를 회사에 반환하지 않았다. 이에 현대차는 김 전 부장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경찰에 고발, 경찰은 법원 승인을 받아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로부터 돌려받은 자료에는 품질 관련 외에도 회사의 기밀자료들(주요 부품개발 매뉴얼·사양이 담긴 주요 기술 표준 등)이 다수 포함됐으며, 일부 자료는 중국어로 번역하려한 흔적도 발견됐다.

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 씨는 수년에 걸쳐 공익 제보와 관련된 자료 외에도 현대차 내부자료 4만여 건을 개인 이메일로 유출해 자택 내 컴퓨터에 보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씨가 진정 공익 제보만을 위한 행동이었는지, 그렇다면 왜 제보 내용과 상관없는 영업기밀 서류 다수를 유출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 씨의 제보가 공익적인 목적보다 금전적인 보상을 얻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는 김 씨가 지난달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익 제보를 진행할 경우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씨가 받은 포상금은 2015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미국 자동차 안전 내부고발자 법'에 따른 첫 번째 사례다.

아울러 박병일 씨도 김 씨가 내부고발 보상금과 관련해 상세한 절차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박 씨는 "한 번은 현대차 결함 사실을 미국 당국에 제보하면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미국 NHTSA의 리콜 기준에 대한 자료를 나에게 보여줬다"며 "미국에서는 결함 사실을 인지하고 5일 이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3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를 신고한 사람(내부고발자)에게 30%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내부고발자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직속상관과 감사팀에 시정을 요구하고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부서를 옮긴 후 관계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절차'도 그에게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