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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애인 솎아내는 대중교통, 갈 길 먼 이동권 보장

 

전대현 기자 | jdh3@newsprime.co.kr | 2021.12.31 16:21:19
[프라임경제]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이하 전장연)가 지난 12월29일 오전 8시경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시위를 벌이며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이로 인해 운행이 약 20분 지연됐다. 이달에만 세 번째 시위다.

출근 시간대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원망과 비난 섞인 날선 목소리가 장애인들에게 집중됐다. 시위 이후 보도된 기사의 댓글에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 섞인 표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득 될 것 없어 보이는 시위였다.

이렇게까지 이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다. 구체적으로 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저상버스 도입과 △장애인 콜택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 편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버스 3만5445대 가운데 저상버스는 27.7%인 9840대에 불과하다. 당초 정부가 계획한 42% 보급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격차는 더욱 도드라진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모든 도시의 버스가 저상버스다. 나아가 영국에서는 '런던택시'라고도 불리는 블랙캡을 운영하며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서울시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전임 서울시장들(이명박, 박원순)의 약속은 17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도 서울시내 22개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물론, 내년에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소수의 교통약자는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교통 시스템이다. 아무래도 '대중'이라는 단어 뜻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전장연의 시위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국회는 지난 22일 국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해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기존 계단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비롯해 국가와 지자체가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와 광역지원센터의 운영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장연의 요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걸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교통수단의 보급과 운영을 총괄하는 광역이동지원센터에 필요한 운영비를 정부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이 임의 조항으로 수정됐기 때문이다.

기존 '국가 또는 도(道)가 특별교통수단의 확보 또는 이동지원센터 설치·운영에 드는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된 원안이 '지원할 수 있다'로 수정된 것이다. 즉 정부가 예산을 한 푼도 투입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타 국가 대비 저조한 저상버스 보급률과 특별교통수단에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와 같은 '꼼수 개정안'은 매우 유감이다.  

물론 출근시간대 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전장연의 시위는 명백히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7년째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이 정당한 수순을 통해 주장했다면 과연 우리가 귀 기울였을 지는 의문이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다. 기재부는 예산 논리 잣대만을 들이대며 불통하기보다 장애인 단체와 적극적인 방안 모색을 통해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명분만 갖춘 졸속 개정안, 꼼수 개정안은 장애인을 다시 거리로 내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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