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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오늘도 어김없이 '예외'를 경험했다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01.28 18:37:30
[프라임경제] 예외는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있다면, 그건 예외일 수 없다. 단지 예견하는 것이다. 예견(豫見)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짐작함으로써 예상이 가능하다. 예상할 수 있는 건 생각의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늘 함정에 빠지는 건 예외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다.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이 불쑥 우리를 흔들어 놓을 때 큰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한 혼란에는 질서가 없다. 

무질서는 예외의 상황에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미 어떤 규칙에 길들여져 살아가기 때문에 대체로 예외를 바라지 않거나 기대하지 않게 된다. 

물론, 예외가 힘이 주어진 자에게서 쓸모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칫 예외를 권력인 양 남발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 예외가 힘으로 조정되면, 상황은 불공정하게 변질되며, 머지않아 내외의 간극을 넓히고 만다. 그로 인한 안과 밖의 혼란이 잦아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예외는 바라서도 쓰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사방에 예외를 두려는 마음이다. 하나의 선택에 쓰여야 할 집중과 애씀을 예외의 상황과 나누려는 마음이 이에 해당된다. 또 다른 방편을 내세워서 온전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일에서나 대인관계에서나 일단 예외를 두고 시작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온전한 마음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누구도 제 마음을 내비치기는 힘든 법이다. 역시나 예외는 바라서도 쓰여서도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단연코 세상은 나의 예측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생각한 대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예외의 순간들로 점철된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삶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변화돼 좌충우돌하기 일쑤다.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고, 허둥대기에도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만 하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입에 달고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같은 목표와 기대를 두고도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역시나 삶은 기대하지 못한 온갖 예외의 것들이 난무하는 사이클이다.

예외를 능숙하게 대처하는 자세야말로 삶을 잘 살아가는 처세다. 그러려면 예측하지 못한 혼란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근저에는 불안을 다스리는 힘이 작용한다. 대개 불안한 감정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기폭이 크고, 의지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은 좁고도 깊은 영역이라서 신체의 움직임만으로도 한껏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불안에서 한 발자국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삽시간에 감정의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표면적인 회피라고 할지라도 의도적인 인식의 전환은 불안한 상황을 전환시키기에 필요하다. 그와 같은 행동은 부정의 영역에서 구애받지 않는 힘으로 작용해 혼란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나아가 어떤 예외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저력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예외를 경험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산다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움직이고 있으니 제자리에서 똑같은 것을 마주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삶은 처음 마주하는 것들과 기대하지 못한 일들을 겪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삶이야말로 늘 새롭고 재미있을 만하지 않은가. 예외를 겪어내는 일 또한 삶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런 경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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