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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한류 '붐' 그리고 한류 '음식'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02.25 10:08:14
[프라임경제] 지난 2003년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겨울연가'가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다. 최고 시청률 20%를 넘긴 이 드라마는 수차례 재방송을 해야 할 정도로 여성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듬해 장편 시대극 '대장금'이 방영되자 이번에는 남성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CD와 DVD가 제작되고 관련 서적이 출판됐다. 대만과 홍콩 등 동남아에 퍼져있던 '한류'가 이렇게 일본에 상륙했다. 

한류 드라마는 대중음악과 식문화에도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보아와 동방신기 바람이 일본 가요계를 강타하고, 그때까지 대접받지 못하던 전통음식이 새롭게 조명됐다. 후지 TV와 일본 TV는 한류 문화를 소개하는 고정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욘사마' 배용준이 출판 기념을 위해 도쿄돔을 방문할 당시 9만명에 달하는 팬이 모인 가운데, 하토야마 총리 부인과 수많은 양국 정·재개 인사가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위키피디아가 정의하는 '1차 한류 붐' 시기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한류가 이번에는 K팝을 들고 나왔다. 2011년 NHK 자존심이라고도 하는 연말 '가요홍백전'에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소녀시대·카라가 출연하고, 2012년 슈퍼주니어 도쿄돔 공연에 11만 관중이 운집했다. 

하지만 이런 열기는 한국 대통령 독도 방문으로 양국관계가 냉각되고, 엔화 가치 하락으로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사그라졌다. 2014년 초까지 이어진 '2차 붐'이다.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 한류는 2017년 '한한령(限韓令) 발동'으로 활동이 어려워지자 다시 일본을 찾는다. 노래에 감성미를 더한 아이돌 그룹과 BTS를 앞세운 한류는 혐한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에서도 인기몰이를 이어간다. 침체한 일본 음악계 공백을 전략적으로 파고든 것이 적중했다. 

한국 아이돌에 매료된 일본 젊은 여성층이 미용과 정형을 위해 대거 한국을 찾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방한 열기는 코로나로 국경이 닫히는 2019년 초까지 이어졌다. '3차 붐' 시기 모습이다. 이에 앞서 약 3년간 △2NE1 걸 패션 △얼짱 메이크업 △귀요미 댄스 △셀카봉 등 한국 신세대 문화가 일본에 침투하는 '신한류' 시기가 있었다. 

4차 붐은 2020년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에서 시작됐다. '패러사이트 반지하 가족'으로 번역된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대 흥행수입을 올렸고 '짜파구리' 돌풍을 일으켰다. 이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오징어 게임 등이 연달아 히트하며, 전 방위로 팬층을 늘려나가고 있다. 

일본에는 한류 팬이 많지만, 코로나에 막혀 '성지' 한국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코쿠 로스(한국 상실감)'에 빠진 그들을 달래주는 것이 한국 음식이다. 그들은 한국 식당을 찾아 삼겹살을 굽고, 비빔밥을 먹는다. 계절에 상관없이 냉면 혹은 삼계탕을 주문하고, 떡볶이와 부침개를 찾는다. 

각 분야 선호도를 조사하는 ‘'ranking.net'은 여기에 △김치찌개 △치즈 핫도그 △양념치킨 △불고기를 넣어 10대 음식을 선정했다. 그 아래로 △간장게장 △김밥 △육회 △라면 △닭갈비 △닭백숙 △나물 △순두부찌개 △오징어 젓갈 △죽이 자리한다. 20위권 밖에 있는 △청국장찌개 △만두 △낙지볶음 △부대찌개 △감자탕 △잡채 등도 일본인이 선호하는 메뉴다. 

오랫동안 한류 대표 음식인 불고기와 잡채 등 전통요리가 밀려나고, 그 자리에 △김밥 △떡볶이 △핫도그 등 길거리표가 올라간 것이 흥미롭다. 

인터넷 조사방식인 만큼 '젊은 세대 의견이 아니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이 그들이고 향후 한류 음식은 정통보단 '빠르고 저렴한' 퓨전 스타일이 대세가 될 전망이다. 

통 삼겹살이 들어간 '베지테지야' 김밥. © 도요케이자이 온라인 캡처


최근 매체 주목을 받는 음식 중 하나가 김밥이다. 경제전문지 도요케이자이 온라인은 지난 3일 '한국 김밥이 이렇게 일본에 침투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각지에 김밥 전문점이 들어서고 편의점에서도 판매된다"라며 "그 유행은 점점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환절기와 김밥'으로 검색하면 코로나 와중에도 2018년 대비 2021년 검색량이 15.7배나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일본에도 춘분 등 계절이 바뀔 때 만드는 '에호마키'라는 김밥이 있다. 다만 "주재료인 박고지와 표고버섯을 물에 불려 삶아내는 과정이 번거롭고 맛이 심심해 아이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다"라는 것이 음식 전문 작가 아코 마리(54)씨 지적이다. 

반면 한국 김밥은 재료 준비가 비교적 수월하고, 맛과 영양 모두 나무랄 데 없다. 종주국 '에호마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김밥이 일본 통치시대 한국에 이식된 '식문화'라는 점을 상기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류 음식은 이외에도 일본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팥앙금이 가득한 '붕어빵'과 '국화빵'을 비롯해 △계피와 흑설탕 향이 유혹하는 '호떡' △노른자가 살아있는 '계란빵' △숙성 쇠고기와 양념이 조화된 '떡갈비' △오징어 다리·김말이·고구마와 각종 채소를 이용한 '튀김류' 등등. 

코로나 수습 후 국경이 열릴 때, 이번에는 또 어떤 먹거리가 저들을 사로잡을지 궁금하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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