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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비되는 기시다와 아베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03.10 11:04:02
[프라임경제]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일본에서 수용하겠다. 피난민을 받아들이는 각국에 필요한 지원태세를 갖추고 언제든지 전세기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기시다 후미오(65) 총리가 지난 2일 밤 관저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주간지 'FRIDAY 디지털' 보도에 따르면(4일), 모라비에스키 폴란드 총리는 이에 대해 "일본 지원에 최상의 경의를 표한다"라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권출범 후 '판단이 늦고 존재감이 희박하다'라는 평가가 단박에 불식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난민 수용에 조건을 붙이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 데 대해 국내외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2월28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통해 1억달러 인도적 지원도 약속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사실 러시아가 전차와 항공기 등 대규모 장비를 앞세워 지난달 24일 아침,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을 당시 대다수 군사 전문가는 전쟁이 수일 안에 끝날 것으로 관측했다.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출신 초보 정치인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지난 8일 영국의회 온라인연설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젤렌스키 대통령. © 로이터통신 화면 캡처


하지만 다음 날 젤렌스키가 동영상을 통해 결사 항전 의지를 밝히면서 민심이 결집하고 전황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시로 영상을 업데이트해 가짜 뉴스를 차단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영광을 위해 영토·국가·아이들을 방어하겠다고 공언했다. 

세계가 그런 그를 주목하기 시작하고 지원 물자가 모여들었다. 이제 젤렌스키는 오렌지 혁명과 유로마이단 봉기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과 함께 '공공의 적' 푸틴(70)에 맞서는 영웅이 됐다. 이는 전쟁 승패와 상관없이 푸틴이 침공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간 겐다이' 보도(5일)에 의하면, 젤렌스키가 외국 미디어와 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우리 땅에서 나가라. 나가는 것이 싫으면 나와 협상 테이블에 나와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젤렌스키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마주하고 앉은 장면을 염두에 둔 듯 "나는 이웃이다. 멀리 떨어질 이유가 없다. 물고 늘어지지 않겠다"라고 푸틴과 대면 회담을 요구한 점을 부각했다. 

많은 매체는 시시각각 죄어오는 군사적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푸틴에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젤렌스키 용기를 칭찬하고 있다. 반면 과거 총리 시절 수많은 회담을 하고도 일본 숙원인 북방영토(쿠릴열도) 회복에 전혀 성과를 못 낸 아베 신조(68) 전 총리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아베는 재임 중 러시아를 11회 방문해 27차례 회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베는 푸틴과 경칭을 빼고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고 자랑했다. 금방이라도 소련에 빼앗긴 북방영토 중 일부라도 되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경제협력자금으로 3000억엔 투자를 약속하고, 4개 섬에서 딸기를 재배하기로 한 것이 전부였다. 

북방영토는 일본이 1855년부터 1945년까지 일부 또는 전부를 지배하던 곳이다. 이후 러시아가 일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오히려 미사일과 군대를 배치하면서 지역을 요새화하고 있다. 

일본 국민이 러시아와 아베에 대한 배신감이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배경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러시아군이 국경에 집결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 일본에서는 '절친' 아베가 나서 푸틴을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베는 파벌 모임에서 "기시다 총리가 곧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할 것이다. 그때 일본 입장을 설명하고, 이번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 건너 불 보듯 몇 마디 던졌을 뿐이었다. 

지난 8일 민방 TBS는 "아베가 외교수립 65주년 기념과 경협문제 협의를 위해 10일부터 말레이시아에 특사로 파견된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야당 측이 들고 나온 러시아 특사로 아베를 보내는 것에 대해 "현시점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는 하야시 외무대신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아베 정권에서 외무대신을 지낸 기시다 총리는 '아베가 푸틴 적수가 아니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시사였다. 즉 전 세계가 러시아 만행을 규탄하는 엄중한 시국에 한가하게 외유성 나들이나 하는 인물이 돼버렸다. 

현재 아베는 총리 사임(2019년) 이후에도 당내 영향력 유지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다카이치 정조회장 복귀를 놓고, 파벌 내 이견이 분출되고 무소속 의원들에게 영향력이 큰 스가 전 총리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극우 보수를 대변하면서 걸핏하면 주변국과 분쟁을 일삼던 아베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아베와 '거리 두기'를 시작한 기시다 내각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시기는 더 앞당겨질 것이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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