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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용원 변호사 "단숨에 진실 직감"…'꽃뱀 무고죄' 대법원 역전극

방송사 선배, 갓 새내기 성추행…피해자가 가해자 둔갑 '사법 정의' 절실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22.04.04 17:44:59

2018년 8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A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부산항법률사무소

[프라임경제] "그런식이면 판사하지마!"

형사 법정에서 직장 선배로부터 강제 성추행당한 피해 여성을 어이없게 꽃뱀으로 몰아가자 김용원 변호사가 준엄한 재판부에 통렬한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날린 거침없는 한 방이다. 

김 변호사는 "초등학생 수준의 사리분별력만 가지면 가능할 정도로 매우 단순한 사건"이라며, "학문적 논증이나 과학수사 기법은 커녕 초기 조사자료만 봐도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대한민국 형사 법정은 유죄추정의 법칙이 지배한다"며 "판검사들은 피고의 말은 듣지 않고 따지면 기분 나빠 한다"면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 된 오심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공영방송사 촬영기자 B 씨에 의해 강제추행 당했다는 피해자 A 씨의 고소장 2014년 6월 서울마포경찰서에 접수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고검에 항고했으나 역시 기각 당했고, 이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낸 재정신청도 헛일이었다. 

여성 A 씨가 실의에 빠져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2016년 1월 선배 B 씨의 역습이 시작됐다. 되려 A 씨를 '무고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소장에는 A 씨가 자신의 재산을 노려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기습키스를 당한 쪽은 오히려 본인이라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검찰은 이를 증거불충분으로 보고 재판에 넘기지 않았고,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뚜렷한 증거도 없고 입사한 지 겨우 4일밖에 안 된 신출내기 꽃뱀에게 당했다는 B 씨의 주장이 그리 신빙성 있게 와 닿지 않았을 터. 

그러나 B 씨는 집요했다. 대형 로펌을 통해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한 재정신청이 인용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2017년 1, 2심 재판부는 여성 A 씨가 적극적으로 신체접촉을 거부하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무고 유죄' 근거로 삼고 B 씨 손을 들어줬다. 기대를 모은 7인제 배심원 국민참여재판조차 무고죄에 힘을 실어 A 씨를 절망케 했다.

대법원판결이 남았지만 뒤집힐 확률은 거의 0%다. 이대로면 꿈 많던 20대 여성 A 씨는 평생 꽃뱀이라는 치욕의 멍에를 쓴 채 살아야 한다. B 씨 측이 재기한 1억5000만원 손해배상은 물론 거액의 상대 변호사 비용도 떠안게 된다. 

각계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격렬해 졌고, 비난 여론이 들끓자 언론들은 판결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렸다. 

김용원 변호사는 '한겨레21' 기사를 접했다. 단숨에 진실을 직감한 그는 무료변론을 자청하고 나섰다. A 씨는 그간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거대 법무법인을 상대로 힘겹게 맞서 왔다. 

김 변호사는 앞서 '일본여학생 미나미 강간 사건' 항소심 재판도 무료변론을 맡아 기각된 1심을 뒤집고 승소한 경험이 있다. '브레이크 없는 벤츠' 저자로 서슬 퍼런 5공 시절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권력 비호 아래 버젓이 자행돼 온 비인간적 수용시설 '형제복지원'을 파헤치며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쌓았다. 

김용원 변호사. ⓒ 부산항법률사무소

그는 "사건의 발단은 선배 직원 B 씨가 먼저 입사한 지 겨우 사흘 된 A 씨를 회식 자리라고 둘러대며 불러냈고, 값 비싼 와인 시켜 먹었다"며 "그간에 경험치로 볼 때 꽃뱀은 표적을 찾아 헤매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법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가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꼬박 1년 4개월이 경과 된 2019년 7월11일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A 씨 '무고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그 순간 법정은 환호와 탄식이 뒤섞이면서 희비가 교차했고, A 씨는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유명 법무법인 전관 변호사들 상대로 패색이 짙던 재판을 극적으로 뒤집은 김 변호사는 내친김에 반소(소송)를 제기하고 피해보상금 8000만원 지급 승소 판결을 이끌었다. 지난 2022년 1월13일 대법에서 B 씨 부부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2030일간의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법정 다툼은 비로소 종결됐다. 

김용원 변호사는 "이 사건은 판검사가 성추행범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1. 2심 재판부는 성추행 피해자애게 무고죄를 씌우기까지 했다"면서 "우리나라의 판검사들이 너무나 안일하고 손쉽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꿔치기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사법 당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A 씨가 2018년 3월8일 산더미 같은 재판기록을 손수레에 싣고 내 사무실에 들어섰다"며, "4년 동안 악몽을 꾼 사람답게 충분히 지쳐있었고, 그 눈빛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을 가득 담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법적용과 법집행이 최소한의 공정성을 갖출 때까지 나의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며, "최소한의 공정성만이라도 생긴다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김용원 변호사는 이 사건의 무료변론 투쟁기를 담은 '진실과 거짓, 2030 전쟁'을 출간했다. 피해 여성 A 씨는 책 글머리에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확신했고,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며, "그러던 와중에 김 변호사님을 만났고 그때가 바로 저에게 천사의 동아줄이 내려온 날이었다"고 썼다.

이어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했던 일을 해냈고, 저에게 정의가 있음을 보여주셨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진실을 가릴 수 없다는 걸 증명해 주셨다"라고 지난 소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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