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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05.10 11:30:03
[프라임경제] 하루하루가 조그만 일생인 것이다. 나날의 기상이 조그만 출생, 매일 아침의 상쾌한 시간이 조그만 청춘, 매일 저녁 침상에 누워 잠드는 것이 조그만 죽음인 것이다. (인생론, 저자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글처럼 하루하루는 사람에게 있어 조그만 일생(日生)이고, 그런 일생이 모여 인생이 완성된다. 또 인생이 일생(日生)이라 불리는 까닭은 하루에 한 번씩 다른 삶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고로 사람은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덧붙여서 기다란 선의 인생을 점의 인생으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점의 생성과 소멸은 사람의 생사와 꼭 닮아있다. 사람은 아침이 되면 탄생하고, 넘치는 에너지로 한낮을 지내게 된다. 오후가 돼 점점 기력이 떨어지면 결국 밤이 찾아온다. 그때에는 애써 두 눈을 부릅뜨려 해도 절로 눈이 감기고 만다.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때가 찾아온 탓이다. 그처럼 살아있는 모든 순환은 거역할 수 없게끔 자연스럽기만 하다. 

영국의 철학자 Francis Baco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음은 탄생만큼 자연스럽다."

뜨고 지고, 피고 지고, 오고 가는 생과 사를 겪는 만물의 영장은 그처럼 순환의 역사가 당연하다. 사람에게는 낮과 밤이 또한 생과 사가 그런 역사가 된다. 역사야말로 자연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삶을 바라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 탄생이 죽음이라는 소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죽음도 탄생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만약 조그만 일생을 생각하지 않고 딱 한 번의 인생만 좇는다면, 생의 아쉬움으로 처절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번뿐인 탄생과 죽음은 절실한 삶을 추구하게끔 한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무엇보다 빛나고 누구보다 강해질 것을 소망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그 마음이 흘러간다면야 좋겠지만, 한정된 결핍은 소유하지 못한 자에게 쉬이 욕망을 일으키곤 한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후회가 애절한 것도 그와 같을 수 있다. 노인에게는 내일의 탄생을 확신하기가 힘들다. 그리하여 생의 아쉬움으로 점철된 오늘을 맞이하게 된다. 내일의 희망을 갖는 일은 살아갈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날마다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의 일생을 살아야만 한다.

다시 쇼펜하우어처럼, 날마다 조그만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면 더 나은 내일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소 아쉬웠던 오늘의 죽음이 내일의 탄생으로 진화되는 것 말이다. 사람의 진화가 가능했던 이유도 그런 자각과 시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나 어둠이 빨리 찾아올 줄 알았다면,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아침을 맞이해야겠다는 식의 자각 말이다. 내일을 새롭게 살려거든 오늘의 아쉬움과 내일의 희망을 적절하게 버무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일생(日生)에 충실하다보면, 지나간 점의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게 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마침표를 찍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갖게 된다. 그런 점의 하루하루가 쌓여 선의 인생으로 완성될 때 한 사람의 역사는 그렇게 쓰여진다. 

그렇다보니 어느 누구의 역사라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위대한 업적을 쌓았거나 말거나 인생은 그만으로도 완전한 빛을 발한다. 그러므로 당장 오늘을 살면서 비교를 통해 우위를 가르거나 멸시하는 행위로 일생(日生)의 빛을 꺼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건 타인이건 간에 누군가의 일생의 역사를 훼손시키는 일은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된다.

저마다의 인생의 귀결이 한결같음을 유럽 카푸친 승단의 지하 납골당의 글귀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다. "what you are now we used to; what you are now will be(우리도 한때는 너희와 같았고, 언젠가 너희도 우리처럼 될 것이다)."

결국 죽음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평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하루의 조그만 죽음을 통해서 나날이 평등해지고 있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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