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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식·코인 '빚투 탕감'에 국민은 망연자실

 

박기훈 기자 | pkh@newsprime.co.kr | 2022.07.25 12:06:15
[프라임경제] 서울회생법원이 가상화폐·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개인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손실금을 변제액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실무준칙을 지난 1일부터 시행했다. 다시 말하면 가상화폐·주식으로 인한 손실금을 채무자 재산 총액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에 국민들은 기본적 상식을 깨는 도가 지나친 결정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항간에선 "'빚투족(빚내서 투자)',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들은 서울로 가면 다 해결된다. 정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회생법원의 이번 결정을 예로 설명해 보자. 3000만원 상당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A씨는 최근 1억원을 빌려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속되는 약세장으로 인해 투자는 실패했고, 결국 A씨가 갖고 있는 주식과 가상화폐 가치는 원금의 20%인 2000만원이 됐다. 8000만원이라는 거금이 증발하게 된 A씨는 결국 별다른 방법이 없어 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A씨의 처분할 재산, 즉 청산가치는 지난 6월30일까지는 본인이 보유한 자동차와 빚 원금을 합한 1억3000만원이었다. 말 그대로 본인이 빌린 원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A씨의 청산가치는 5000만원이 됐다. A씨가 투자로 잃은 돈 전부가 아닌, 이제부터는 보유한 재산과 평가액만을 기준으로 변제금을 산정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A씨가 회생 인가를 받은 뒤 남아있는 2000만원으로 투자를 해서 6000만원까지 재산을 불렸다고 해도 개인회생을 인가받을 당시 산정된 변제금만 갚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1억원을 빌려 5000만원을 갚고 1000만원의 순익이 탄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채권자의 입장에선 억울하다. 1억원을 빌려주고 3000만원만 받기 때문이다. 이자는 커녕 본전도 못 찾고 순손실만 입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 것을 넘어 손해를 보고도 속 앓는 벙어리가 되는 셈이다. 

물론 단순히 주식 손실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거나 빚 1억원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산 합계가 내려가면 갚아야 할 돈이 줄어들 수 있으니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이번 결정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은 "갚지 못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채무자들은 불법 채권추심 등 범죄에 노출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사회구성원으로 포섭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빚 탕감 범위를 주식이나 코인 등 투자금액으로 범위를 넓혔다는 점, 서울 지역에만 한정된 정책이라 지역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의 투자 손실에 대한 빚이 많다면 기존에 비해 훨씬 유리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기존의 경우, 투자로 인한 빚이 대부분인 경우엔 개인회생 인가가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변제금도 획기적으로 낮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올해 35세인 최모씨는 "창업을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결국 폐업하게 됐고, 사정이 어려워 개인회생 신청 후 인가받아 현재 착실히 갚아 나가고 있는 중"이라며 "이번 서울회생법원의 발표에 너무 허탈하다. 차라리 나도 주식이나 코인 등으로 대박을 노리다가 안되면 개인회생 신청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법부의 '빚 없애주기' 기조가 최근 정부로까지 확산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최소 125조원 이상 규모의 금융지원 내용을 담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보고했다. 특히 김주현 신임 위원장의 1호 금융 정책이라 주목받기도 했다. 

이 중 '청년 특례채무조정'은 저신용 청년의 채무 이자부담을 최대 50% 경감해 주고, 연체이자는 전액 감면해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한 원 대출금리에 관계없이 최대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이자율을 연 3.25% 저리로 적용해 갚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현재 신용대출 금리는 연 5%대에 진입해 있어 파격적인 조치다.

하지만 이후 '주식·가상자산 투자실패자 지원책'이라며 도덕적 해이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빚을 지면서 투자자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다만 현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다 보니 발표자료에 투자 손실 얘기가 들어간 것일 뿐"이라며 "사업이 안 될 수도 있고, 가정적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투자실패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정대로 채무를 갚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수습하기에 바빴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진화에 나섰다. 지난 21일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특위 회의 이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신용회복위원회가 이미 운영하고 있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청년을 대상으로 추가하는 것으로, 별도의 정부 예산은 수반되지 않는다"며 "새로 도입하기로 한 청년 대상 채무조정 제도에 '추가 예산 소요'와 '대출 원금 감면'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올해 52세의 자영업자인 방모씨는 "직원 월급 주려 빌린 돈은 제대로 다 갚아야 하고 한탕하다 빚진 돈은 탕감해 준다는 건가"라며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는 없고 무조건 다 탕감해준다 하니 빚잔치가 여기저기서 일어날 것"이라며 한탄했다.

올해 44세의 서모씨는 "누가 빚까지 지면서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라고 떠민 것도 아니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 아닌가"라며 "'한국사회 전체가 청년들의 투자광풍을 몰아갔기 때문에 국가가 안아줘야 한다'며 열심히 피땀 흘려 번 사람들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라고 강조했다. 

모럴 해저드가 만연할수록 선의의 제3자가 입는 피해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경제의 허리축인 젊은 세대를 살려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근 서울회생법원의 발표로 촉발된 정부의 움직임은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빚을 내면서 까지 투자에 중독된 이들에게 정신과 전문의들이 가장 중요하게 하는 말은 "빚을 지지 말라"다. 보호자에게는 "절대로 빚을 대신 갚아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누가 생각해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당연한 상식에 어긋나는 행보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누구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원금을 갚아 주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말이다.

주변의 성공에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주식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례를 접하면서 느끼는 혼자만의 박탈감에 급하게 시작한 투자는 투기를 부른다. 게다가 내 돈이 아닌 빚으로 시작한다면 한탕을 노리는 도박이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투자로 인한 빚에 허덕이는 이들의 진정한 자립과 성공을 원한다면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측은지심에 호소해 빚부터 해결해주는 정책은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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