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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다같이 '할라라'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08.11 16:52:32
[프라임경제] 만능 계획의 시대다. 작금의 현대인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미리 계획된 일들을 행하느라 늘 분주하다. 행여 계획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해서 자책이나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계획을 미리 세우는 일은 당연하기라도 하듯 모두에게 익숙한 과제처럼 여겨진다. 

당신의 오늘 하루도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가.

어려서는 어른이 되는 상상을 하며 완벽한 미래의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성인이 되자 완벽함의 부재를 깨달았고, 사전의 계획은 어김없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더 예측 가능한 미래를 계획해야 했다. 중년으로 접어들자 예측했던 가까운 미래도 금이 가기 일쑤였다. 그뿐이랴. 때때로 처절히 무너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로 제정신을 차리기 힘겨울 때도 많았다. 

그로부터 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내일의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살아갈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뭔가 반듯하게 정립해야 할 인생의 도표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그것이야말로 멋대로 살아보겠다는 작심인 것인지 반문하기도 했다. 

단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인생은 자연히 흘러갔다. 대단한 목표를 갖지 않더라도 현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때로는 부족함을 그대로 느끼는 시간을 보내면서 의외로 다분한 기쁨과 안정을 얻기도 했다.
 
말마따나 인생에는 잘 짜인 계획서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는 걸 이제야 안다. 계획이란 연속성을 띄어서 하나의 계획을 달성하면 또 다른 계획을 시일 내에 세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대다수는 뿌듯함이 배가 되는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곧장 반복된 피곤함이 찾아왔고, 거기에 무기력함도 드리워지자 차라리 덜 노곤해지리라 마음먹은 것이었다. 

설령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도 일체의 실망스러운 감정이 필요 없어졌다. 

미리 계획을 세워서 달성해나가는 뿌듯함과 견주어 보면 비계획적인 삶은 어설프거나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비계획적인 삶은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양산할 수 있는 무계획적인 삶이 아니다. 삶의 근간을 이뤄나가면서 계획된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계획치 않은 곳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끼려는 삶이다. 오히려 인생을 살면서 느슨하게 틈이 보일 때야말로 제 자신을 발견하고, 오롯한 정체성을 깨닫지 않는가.

그러므로 맹목적인 계획안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지 않기를 바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투가 벌어질 때 병사들이 서로를 이렇게 격려했다고 한다. 

"할라라." 

그리스어 할라라는 느슨하다는 뜻으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으려는 그들만의 구호로 풀이된다. 오로지 적을 공격하겠다는 단호한 계획보다 '할라라'의 외침이 전장 속에서 큰 힘으로 작용됐던 것이다. 또 병사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접고, 전투를 위해 목숨을 다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전장에 나섰고, 무기를 휘둘렀으며 앞을 가로막는 적군과 싸웠다. 

내가 구태여 '할라라'의 외침을 주목하는 까닭은 행하면서도 마음을 비우고, 온 집중과 책임을 다해서 삶의 가치를 드높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라라'는 온전한 지금의 시간을 지지하는 절대적인 정신적 승리임에 틀림없다. 

지금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섣불리 그 결과를 예측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분명 인생을 호기롭게 만들고야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는 대로 계획이 될 수 있게 살아야 한다. 더 크게 '할라라'를 외치면서.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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