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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물가잡은 미국, 한국은행이 배워야할 점은

 

장민태 기자 | jmt@newsprime.co.kr | 2022.08.16 14:49:58
[프라임경제]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월 수치인 9.1%보다 낮아진 8.5%를 나타냈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자, 0.75%p 기준금리를 올리던 미 연방준비제도의 단호함도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성적표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완화될 것이라 전망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행이 국내 물가를 잡기 위해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강력한 통화정책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미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던 이유는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서다. 미국은 물가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3월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1%대를 유지했지만 올해 3월부터 2.6%대로 치솟았다.

당시 미 연준은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은 경기 재개와 강한 회복세를 기대하고 있다"며 "기저효과 등 물가 상승 압력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제는 이런 판단과 달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끊임없이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과 7월 5.4%, 8월에 5.3%로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았다. 8월 공식 석상에서 제롬 파월 의장은 "물가상승은 일시적"이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 11월 1982년 이후 최고 수준인 6.8%를 기록했다.

물가 수준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자 제롬 파월 의장은 기존 입장을 버리고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으로 돌변했다. 미 연준은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하며, 올해 초부터 0~0.25%인 기준금리를 단 4번의 회의만으로 2.25~2.50%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결국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소폭 감소했다. 미 연준은 초기에 안일한 실수가 있었지만 뒤늦게 강력한 통화정책을 단행하면서 물가상승률을 잠시 잡은 모양새다. 

문제는 최근 한은이 미 연준이 저질렀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7월 역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한 직후 "향후 몇달은 6%를 조금 넘는 물가 상승이 일어나고, 3분기 후반부터 약간 상승세가 꺾인다는 가정"이라며 "당분간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 발언은 향후 빅스텝과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앙은행 수장의 말 한마디는 시장 자체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증시도 영향을 받으며 물가 상승 요인 중 하나인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변하게 된다.

실제 당시 이 총재 발언이 있던 직후 코스피·코스닥이 모두 상승해 장을 마감했다. 이는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해 6월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발언한 후 나스닥 지수가 장중 기준·마감가 기준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반대로 12월 물가 상승이 더 이상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 입장을 밝히자 주요 뉴욕 증시는 모두 하락했다.

이 총재는 지난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도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2~3개월 지속된 뒤 조금씩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기준금리를 0.25%p씩 올려 물가 상승세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존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물가 상승 기조가 예상에서 벗어날 경우 빅스텝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모호한 입장을 전했다.

이런 이 총재의 애매모호한 발언이 시장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향후 물가 상승률을 예상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물가 상승률이 잡히지 않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2월 1.10%로 집계돼 근 몇 년간 넘지 않았던 1% 벽을 넘었다. 이후에도 해당 통계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 지난 7월 24년만에 최고치인 6.3%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우크라이나 사태 △곡물 생산량 감소 △기대 인플레이션 등 압력 요소도 여전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폭을 낮추겠단 발언은 물가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 부족으로 치부될 수 있다.   

국내 거시경제 전문가들도 최근 이 총재 발언이 다소 부적절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총재 발언들이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친다"며 "빅스텝을 단행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0.25%p 인상이 적절하다고 하면 시장에선 실제로 물가 상승이 별로 심하지 않단 이야기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시장에 기준금리를 올리겠단 입장을 보이면서도 0.5%p 인상은 충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도 나면 안 되는데, 이자율 등 미치는 영향이 있다 보니 속에 있는 이야기를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밖에 나가 공식적인 자리에 서면 강하게 애기를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선 취재 과정에서 "미국 FOMC는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지만, 한은은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며 "지난번 (기준금리를) 0.25%p씩 올리겠다는 등의 발언은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물가 상승률을 체감하지 못했던 대다수 국민들도 이제는 급속도로 오른 밥상물가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 부실화·경기침체 우려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 위한 유일한 정책수단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를 위해 강력한 통화정책이 수반되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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