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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재조명 한다'

(사)동대해문화연구소, 표지석 제막과 강연회 개최

김진호 기자 | zrlawlsgh@newsprime.co.kr | 2022.11.21 09:01:07

18일 포항시 흥해읍 매산리 당수나무 앞에서 최초 동학 조직 안내표지판 설치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김진호 기자


[프라임경제] (사)동대해문화연구소는 지난 18일 오전 포항시 흥해읍 매산리 입구 당수나무에서 최초의 동학조직을 결성했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설치하고, 오후 2시 포항시 복합문화센터 덕업관 3층 대강당에서 '포항사람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해월(1827∼1898) 선생은 조선조 말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도통(교주)을 물려받은 동학 2대 교주다. 선생은 1863년부터 1898년까지 동학을 이끌면서 반봉건, 반외세를 내세우며, 근대 민중혁명을 수행했다. 

그는 제3대 의암 손병희 선생에게 교주를 물려주기까지 34년간 동학을 이끌며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다. 의암 선생은 잘 알려진 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대표다. 3·1운동이 일어난 그해 4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백범 김구 선생 등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 첫 줄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날 강의는 동학 연구의 권위자인 윤석산(75) 한양대 명예교수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는 한 종교의 교주이기 이전에 엄연히 포항이 길러낸 민족 지도자이며, 반봉건 근대화를 고취한 민중 혁명가이며, 인본주의를 실천한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외가인 경주시 황오리에서 출생했다. 조실부모한 그는 포항시 신광면과 흥해지역에서 소년가장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동학에 투신한 후 기계천을 따라 경주시 용담정으로 가 득도와 공부에 매진했다. 도통을 이어받은 후 포항에서 동학의 조직화와 확산을 추진했다. 

조선 조정의 검거령을 피해 강원도, 충청도 등지로 피신하면서도 동학의 확산과 실천에 전력했다.

신광면 마북리, 기일리, 검등골과 흥해읍 매산 일대에 해월 선생의 유적이 실재하고 숱한 스토리들이 남아 있다.

윤석산 교수는 강의에서 해월 선생이 삶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이자 실천가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이룩해왔는가를 시종 담담한 어조로 증언했다.

해월 선생이 동학을 이끌었던 조선조 말 34년 동안, 조선은 노비를 해방한 민주화, 외세의 지배를 거부한 자주화, 봉건과 무지를 물리친 근대화의 정신적 지향이 충만해졌다. 

그가 그 토대를 놓는 일에 민족 구성원들에게 외치고, 조직하고, 실천했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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