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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포스코 포항제철소, 쇳물보다 뜨거운 정상화 의지

압연 모터 47대중 33대 복구…"거대한 설비 용트림해 열기 뿜어 낼 것"

전대현 기자 | jdh3@newsprime.co.kr | 2022.11.24 11:44:19
[프라임경제] "물에 잠긴 제철소는 마치 '황하(黃河)'를 연상케 했다. 그 누구도 정상화를 쉽사리 장담하지 못했다"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물에 잠긴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바라보고 손병락 포스코 명장이 느낀 감정이다. 1977년 입사 후 평생을 쇳물만 바라보고 살아온 명장에게도 이같은 광경은 생경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50년간 수백 번의 태풍을 맞았지만, 쇳물 생산을 멈춘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철강 약 24%를 생산해내는 포항제철소가 멈추면 국내 철강 수급 차질 우려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근에 위치한 냉천. = 전대현 기자


그러나 지난 9월6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제철소 내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기록적 폭우로 인한 냉천범람으로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포항제철소 전 지역이 침수됐다. 

유례없는 재난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자 일각에서는 '차라리 제철소를 다시 짓는 게 낫다', '정상화까지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쏟아졌다.

◆500년 만 기록적 폭우…전사적 노력으로 정상화 '속도'

시간당 100㎜ 이상의 기록적 폭우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던 포항제철소를 23일 방문했다. 힌남노가 지나간 지 79일째. 포항제철소는 민·관·군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꽤나 정상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이에 포항제철소 임직원들의 눈에는 정상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철소 내부로 들어서자 쇳물을 받아 제강공정으로 옮기는 장비인 토페도카(용선운반차)가 정해진 레일을 따라 부지런히 소 내를 누비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일관제철공정 특성상 쇳물을 받아 제강공정으로 옮기는 장비인 토페도카는 매우 중요한 설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토페도카 역시 침수피해로 대부분의 장비가 사용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었다. 이에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토페도카를 긴급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토페도카 이송 작업은 단 한번도 이뤄진 적 없는 작업이었으며, 제약도 상당해 이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3고로 출선 모습. ⓒ 포스코


일반 차량과 달리 토페도카는 철도 레일 위를 달려 차체 중량만 270톤(t)에 달한다. 해체한 후 육로로 이송도 불가하다. 

이에 포스코는 초대형 크레인 500t급 2대와 300t급 1대가 투입돼 무인특수이동차량에 옮겨 실은 후 바지선에 선적돼 2주간 운송하는 어려운 절차를 거쳤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도 5대를 긴급 지원해 상생을 실천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철광석과 코크스를 녹여 쇳물을 만드는 3고로다. 쇳물을 보기 전 잠시 들린 중앙운전실에는 고로의 내부 상황부터 열풍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2500도에 달하는 열풍의 상태부터 그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로 내부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시간으로 체크가 가능했다.

3고로는 침수 피해에도 불구하고 불과 4일 만에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 이는 경영진의 빠른 휴풍 판단 덕분이라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태풍 매미 때도 고로조업을 한 만큼 처음 경영진의 휴풍 결정에 의아했던 것이 사실이다"라면서도 "만일 당일 정상조업을 했다면 고로 내부 전체가 쇳물로 다 막히고 굳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지껏 포스코를 거쳐 간 최고 경영자가 내린 수많은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 고로 가동 중지였다"며 "그간 단 한번도 내린 적 없던 결정으로 고로를 살리게 돼 한편으로는 천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설명을 듣고 마주한 3고로는 분당 3t에 달하는 뜨거운 쇳물을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이후 냉천과 인접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1열연공장을 방문했다. 1열연공장은 침수 피해 후 불과 한달 만에 복구가 완료돼 정상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연간 350만t의 제품을 생산하는 1열연공장은 주로 변압기에 들어가는 전기강판 등을 메인으로 생산한다.

공장에 들어서자 반제품 상태의 슬라브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레일을 따라 움직이면서 정해진 규격에 맞게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슬라브가 기자 근처를 지나가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반제품 슬라브가 레일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 포스코


허춘일 포항제철소 압연부소장은 "1열연공장은 냉천범람으로 완전히 침수됐으나 현재는 복구가 완료됐다"며 "길이 400미터가 넘는 공장 전체가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지역주민과 군관계자들의 도움으로 불과 한달 만에 정상화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아직까지 복구가 진행 중인 2열연공장이다. 2열연 공장은 지하유실 침수로 전기설비 역시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가동이 중단된 2열연공장에는 슬라브의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침수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2열연공장 지하유실로 향했다. 유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높이 3미터 이상의 윤활유 탱크에는 흙탕물로 인한 물때가 여전히 남아있었고, 곳곳에는 미처 빼내지 못한 소량의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한 곳에는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흙탕물을 퍼내기 위한 제설삽과 빗자루가 놓여있다. 복구작업을 위한 임직원들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있는 듯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 총 15개 공장을 재가동할 계획이다"라며 "내년 초까지는 도금공장과 스테인리스 1냉연공장 까지 재가동해 완전한 정상화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전기차에 고추 건조기까지 빛 발한 임직원 기지

이같은 포항제철소의 빠른 복구 과정에는 민·관·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특히 제철소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구 작업에 매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 가동에 가장 중요한 전력을 살리기 위해 전력계통섹션 직원들은 3일 동안 제대로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밤잠을 설치면서 복구 작업에 전력을 다했다. 복구에 나선 직원들은 전등 하나 켜지지 않는 어두운 공장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임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23일 진행하고 있다. ⓒ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복구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직원들은 침수된 전기설비 제어장치 복구를 위해 가정용 드라이기를 가져오거나 고추건조기를 공수해왔다. 전기제어장치 부식은 곧 설비 고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처 배수작업이 진행되지 못한 구역에는 직원들의 전기차를 활용해 펌프를 가동했다. "뭐라도 해보자"는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포항제철소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업계 우려를 삼았던 압연기용 메인 모터도 대부분 수리가 완료된 상태였다. 압연기용 메인 모터 성능 복원 작업은 1열연을 시작으로 3후판·2후판·강편공장을 완료하고 지금 2열연공장에 와있다. 총 47대중 33대를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하는데 성공한 상태다. 

손병락 포스코 EIC기술부 상무보는 "국내외 수많은 설비전문가와 압연기용 메인 모터 제작사조차 수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수리해서 성능을 복원하는 일은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공장 전원을 사전에 차단했기에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고 복구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수많은 밤을 잠몰 이루고 뒤척이기도 하고 복원 상태 확인을 위하여 밤중에도 새벽에도 출근하는 수고로움도 있었고, 어떤 것들은 생각대로 복원 되지 않아 고민하고 다시 작업하고 방법을 바꾸는 작업을 통해 오늘 여기까지 왔다"며 "올해 안에 이 거대한 설비는 다시 용트림해 뜨거운 열기를 뿜어 낼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냉천은 제철소 전체를 침수시키는 뼈아픈 상흔을 남겼지만, 역설적이게도 제철소 직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편, 포스코는 침수 피해로 인한 협력사 지원과 국내 철강 수급 안정화에 앞으로도 만전을 기하겠다는 계획이다. 철강 수급 안정화 대책과 철강 ESG상생펀드 및 상생협력 특별펀드를 마련해 지역사회 성원에 보답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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