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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볼모 '민폐 시위' 난립, 무분별 '왝 더 독' 현상 어쩌나

목소리 큰 소수 의견→다수 뜻 포장…국민 73.4% "과격한 방식 필요 없다"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2.11.30 15:15:49
[프라임경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며,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이는 말 그대로 어떤 행동을 하는 주체가 오히려 그 행동에 묶여서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버린 상황이다.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가 있고, 영어로는 왝 더 독(Wag the dog)이라는 표현이 있다. 왝 더 독을 직역하면 '꼬리가 개를 흔든다'라는 뜻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무차별 시위들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왝 더 독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직화된 소수가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과잉 대표되면서 여론이 왜곡되고 사회가 극단적 대결로 치닫는 등 무분별한 시위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불법적인 집회와 시위 건수는 증가세로 전환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폭력시위 적발 건수는 251건으로, 지난 4년 평균치인 246건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297건의 집시법 위반 사건으로 549명이 검거됐던 2021년을 넘어 최근 5년 내 최다치를 경신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주 주민들이 사업과 무관한 시민들을 볼모로 일반 주택가에서 장기간 시위를 지속하며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 독자 제공


가장 큰 문제는 법 테두리 내에서 특정 사안의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3자나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고의로 야기하는 근거 없는 이기적 시위가 상당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국책사업인 GTX-C 노선의 근거 없는 변경을 요구하며 막무가내식 시위에 나서고 있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이하 은마 추진위)의 일부 주민들 행동이다.

은마 추진위 일부 주민들은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일반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즉,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2주 넘게 무리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시위에 참여하는 은마 추진위 주민은 최대 370여 명으로, 전체 4424가구 2만여 입주민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바로 왝 더 독 현상이다. 더욱이 이들은 시위 참가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 은마 추진위 일부 주민들이 시위 참가자에게 현금 지급을 제안한 정황도 드러나면서 논란을 자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마 추진위 일부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시위 방식에 대해 은마아파트 주민협의체가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는 등 내부에서도 자제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11월 초 아파트 외벽에 '이태원 참사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자, 도를 넘었다는 내부 주민들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결국 두 시간 만에 현수막을 철거했다.

은마 추진위 일부 주민들의 왝 더 독 현상과 유사하게 대우조선해양도 협력업체 일부 노조원 120명이 지난 6월 조선소 내 도크를 점거하고 불법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임금 30% 및 상여금 300% 인상을 주장했는데, 이는 나머지 98%를 차지하는 타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찬성한 4.5~7.5% 인상과는 상반된다.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하청지회가 농성 중인 현장 주변으로 경찰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전체의 2%에 불과한 이들의 주장으로 비롯된 불법파업 탓에 대우조선해양은 8000여억원의 피해를 입었고, 지난 10년간 7조원을 웃도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분기 6278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또 파업 장기화로 조선소 직원들은 50일 넘게 월급을 받지 못했고, 거제 지역 상인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에는 정부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을 거부하고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 역시 유사한 사례다. 전국 44만여 화물차량 차주 중 화물연대에 가입한 차량은 2만2000명 수준으로, 가입률은 5%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부 화물연대 노조원들은 파업 불참을 이유로 운행 중인 비노조원화물차를 향해 쇠구슬을 쏘거나, 운행을 가로막고 욕설을 하는 등 노골적인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는 모습의 영상들이 퍼지기도 했다. 

이처럼 소수에 의해 주도되는 시위는 이슈와 무관한 제3자나 일반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삼고 있으며, 목적 달성을 위해 과격한 방식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국민 정서와도 괴리가 크다.

지난해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3.4%가 '목적 달성을 위해 과격한 방식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 10명중 7명 이상이 과격한 시위에 반대하고 있다(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 대상/1:1 전화면접조사/유선 21%·무선 79%).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인 30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 운행을 멈춘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소수가 다수의 뜻을 왜곡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해 관계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논의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집회와 시위가 타인의 기본권이나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공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장하는 등 집시법 개정 등 논의를 시작할 때다"라며 "하지만 집회 자유와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20여건의 집시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 속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이 주거지역 등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dB, 기타 지역은 주간 75dB·야간 65dB를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 건수는 2만2854건으로, 일평균 62건을 상회했다.

과격한 집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북과 꽹과리 등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장송곡을 재생하는 등 악의적 소음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찰의 소음 기준 유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최근 6년 동안 형이 확정된 건 19건에 불과하고 이중 대부분은 벌금 20만~50만원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위가 예정된 종료 시각을 넘기거나 신고 장소를 벗어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아예 없어 경찰의 현장 통제에도 한계가 있다.

시위가 열린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경찰 병력이 배치돼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또 일부 시위대는 1시간에 세 번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해야 경찰 개입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악용해 1시간에 두 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내고 후 나머지 5분간 방송을 꺼버리는 식으로 단속을 회피하는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

욕설이나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성 발언을 반복해 사생활을 해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 다만, 집시법에 따르면 '사람에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규제가 가능하지만, 기준이 애매하고 자의적 해석 우려가 있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dB, 야간 3dB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은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집회 및 시위를 위해 공공전기를 사용하려 할 때 관할 지자체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등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의 생활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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